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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베레좁스키, 푸틴을 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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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4-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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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맹공에 쫓겨난 언론재벌의 반격…체첸 반군의 테러는 연방안전국의 조작이다?

사진/ 푸틴(왼쪽)과 베레좁스키의 2차전은 누가 이길까. 푸틴에 밀려 영국으로 피신한 언론재벌 베레좁스키가 이번엔 ‘테러조작설’을 들고 나왔다. (GAMMA)
지난 3월5일은 스탈린 사망 49주년이다. 바로 이날 오전 러시아 현지 방송들은 현재 각종 비리 혐의를 받고 런던에 피신해 있는 러시아 언론재벌 보리스 베레좁스키가 현 정부를 규탄하는 공개 기자회견을 런던 중심가에서 가질 예정이라고 보도함으로써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베레좁스키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1999년 가을 모스크바와 볼고돈스크 등 러시아 주요 지역의 민간인 밀집지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폭파참사사건에 러시아 연방안전국(FSB)이 긴밀하게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원래 이 사건의 배후에는 체첸 반군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또한 그는 증거로 ‘러시아 암살기도’라는 제목의 기록 필름을 대외에 공개했다. 기자회견장에는 조작극을 증명할 수 있는 전 연방안전국 요원이 함께 출석해 필름이 보여주는 내용을 확인하는 발언을 했고, 모스크바에서는 당시 폭파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유가족 대표가 함께 참석해 이날 회견에 참석한 서방언론들의 동정심을 자극했다.

문제의 테이프는 공개되지 않아

원래 조작극 폭로를 위한 기자회견은 2월 말에 있을 것이라고 베레좁스키 자신이 밝힌 바 있다. 그러다 지난 3월5일 하필 스탈린 사망일에 맞춘 데는 특별한 까닭이 있는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베레좁스키의 평가에 의하면 현재 푸틴 치하의 러시아에 살고 있는 국민 대다수는 자신이 권위적인 정권 아래 살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정치적 노예정신상태에 있다. 이 상황은 스탈린 치하의 상황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탈린 사망일을 계기로 러시아 일부에서 반스탈린주의 정서가 무르익는 것에 발맞춰 일종의 반푸틴 움직임을 유도하겠다는 것이 그의 속셈이다.


기자회견 이후 대부분의 서방언론들은 베레좁스키가 주장하는 ‘연방안전국 테러조작설’의 신빙성이 별로 없다고 평하고,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국제적 지명도를 올려보려는 일종의 정치적 쇼로 간주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 같은 일부 언론은 비록 베레좁스키의 주장들이 서로 논리적 연결이 희박함에도, 이를 바라보는 러시아 정부가 이렇다 할 뾰쪽한 응징을 하지 못하는 점을 지적하고 상황이 단순한 쇼 이상의 것임을 암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런던 기자회견 당일 회견을 몇 시간 앞두고 러시아 공안당국은 베레좁스키에게 선제공격을 가했다. 그날 오전 러시아 대검은 이미 지난해 ‘아에로프로트 항공사 공금횡령사건’과 관련, 러시아 내에서는 전국수배의 대상이 되어 있는 베레좁스키가 최근 일어난 러시아 내무부의 체첸공화국 전권대표인 겐나디 슈피군 장군의 암살에 개입되어 있고, 1999년 모스크바 등지의 테러 이후 체첸 반군에 자금지원을 해왔다는 혐의가 포착되었다고 발표했다. 공안당국은 수사 결과 정황 증거가 더욱 확보되는 대로 인터폴에 국제수배를 의뢰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이날 체첸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사이에 두고 러시아 공안당국과 베레좁스키가 한판 벌인 싸움은 양자 모두 아직까지는 뾰쪽한 증거 없이 설전만 벌인 셈이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러시아 언론은 서방언론 보도를 재보도하는 것에만 그치는 등 사건의 의미 자체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황은 조금씩 복잡해졌고, 러시아 여론에도 과연 필름의 내용이 무엇이었을까에 관심이 고조되었다.

런던 기자회견에 직접 참여했던 러시아 국가두마(의회) 의원이자 베레좁스키와 함께 현 푸틴 정부 노선에 반기를 든 새로운 정치모임 ‘자유 러시아’의 공동의장 세르게이 유셴코는 이날 공개된 필름 복사본 수천개를 모스크바로 보냈다. 그는 의회의 결의를 얻어 러시아 현지 방송 채널을 통해 이 필름을 공개할 것이라고 향후 행동계획을 밝혔다. 또한 필름이 반정부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점을 감안해 만약 텔레비전 방송이 여의치 않을 경우 ‘자유 러시아’ 지역조직을 최대한 동원해 각 지역의 영화관에서 무료 상영할 의도도 있음을 시사했다. 필름의 내용과 관련해 그는 “이 필름에는 1999년 9월 모스크바와 볼고돈스크 일대의 테러 진행과정을 밝히는 정황증거들이 담겨 있고, 같은 달 미수로 끝난 모스크바에서 그리 멀지 않은 라잔시 폭파기도사건에 연방안전국이 깊히 개입하였다는 확증이 기록되어 있다”며 “이런 점들은 현 푸틴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는 결정적인 근거가 된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강조했다.

안전국 요원의 신빙성 있는 증언

사진/ 1999년 가을 볼고돈스크에서 발생한 폭파사건. 과연 이 사건은 베레좁스키의 주장대로 공안정국을 조장하기 위한 연방안전국의 사기인가. (GAMMA)
그러나 지난 3월15일 러시아 국가두마에서 필름의 공개는 필요한 정족수 225표 중에서 단지 75표만을 얻어 기각됐다. 이에 대해 유셴코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당시 테러사건에 대한 명확한 조사”라며 이를 러시아 정부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으면 유럽의회에 제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국가두마가 공개를 결정하지 않은 이유가 현 정부에게서 모종의 압력을 받았거나 이와 비슷한 개입이 있었기 때문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이스베스티야>가 지적하듯 베레좁스키, 유셴코가 제작한 필름의 ‘문서적 성격’이 희박하다는 점이 더 큰 이유로 알려졌다. 때문에 지난 3월15일 표결 이후 가진 논평에서 두마 국제문제위원장 드미트리 로고진은 “이 필름을 최소한 두마 안보위원회 소속 위원들은 볼 필요가 있으며, 상황에 따라 허위정보 전파의 기도가 있는지를 면밀히 밝혀내야 한다”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었다.

필름의 증거능력, 문서적 성격에 대해 제작자 쪽은 전혀 반대로 확신에 찬 어조다. 필름을 구성하고 있는 내용 전부가 명백히 연방안전국의 테러 조작을 입증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이를테면 베레좁스키의 후원 아래 필름제작을 해온 프랑스 언론인 장 샤를 드니오는 필름제작을 시작한 동기가 2000년 2월 당시 러시아 민영 텔레비전 에 방영된 한 프로그램이라고 말한다. 드니오는 이 프로그램에서 이미 정보국의 고위관리들이 테러사건에 관련되어 있었다는 정황들을 발견했고, 현재 자신의 필름에는 더욱 구체적인 증거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와 함께 테러조작 공작에 직접 관련했다는 니키타 치쿨린의 발언들도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치쿨린은 3월5일 기자회견 전까지는 감추어졌던 연방안전국 테러조작설의 유력한 증인이다. 치쿨린은 러시아과학아카데미 계열의 폭약제조전문연구소 소장직을 역임한 인물로 1999년 연방안전국에 전격 초빙됐다. 이해 여름부터 군수용으로만 극히 제한되어 있는 헥소젠이라는 엄청난 파괴력이 있는 폭발물질을 군사기지에서 외부의 무명 조직으로 이전시키는 계획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9월 초순 모스크바 등지에서 일어난 폭발사건 이후에도 계속 연방안전국 내에 ‘T’라고 불리는 대 테러팀에서 일했던 치쿨린의 증언에 의하면 9월22일 라잔시에서 이상물질을 발견해 현지 경찰이 폭파사건을 미연에 막는 개가를 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 사건의 수사가 연방안전국으로 이관되었을 때 안전국장의 지시로 수사가 급격히 종결되었다. 치쿨린은 그 사실이 일련의 테러 사태에 연방안전국이 깊숙이 개입하였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소강상태, 그러나 폭풍전야

사진/ 러시아에서 호평을 받고 있던 민영 를 정부가 강제적으로 폐쇄했다. 이 사건은 부틴에 대한 국제적인 우려와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GAMMA)
지난해 초에는 베레좁스키 계열로 알려진, 그동안 러시아에서는 상대적으로 중립적 보도태도로 호평을 받던 민영 가 폐쇄됐고, 올해 초에는 실 소유자가 베레좁스키로 알려진 방송국이 청산됐다. 구소련 시절 이후 러시아 정부가 전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제하면서 국제적으로 러시아의 언론자유가 없어졌다고 비난여론이 들끓었다. 이번 베레좁스키 기자회견을 둘러싸고 정치적 쇼, 자신의 망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포석 등 개인적 야심의 발로로 보는 견해가 팽배하다. 하지만 한편으론 한때 연방안전국의 주인이던 푸틴이 체첸을 대통령에 오르기 위한 희생양으로 삼으려 했다는 베레좁스키의 주장도 설득력을 완전히 잃지는 않았다. 사실 베레좁스키는 당시 연방안전국의 공작명 ‘히로시마’에 참여했던 요원과 라잔시에서 1999년 9월22일 이상물체를 발견해 긴급전화로 신고한 현지주민 등 꽤나 적지않은 증인들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사건이 흐지부지해진 상태이고 현지 공안당국이나 베레좁스키 쪽 모두 관망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사건의 복잡성과 무게를 보면,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다시금 제기될지 주목된다.

상트페테르부르크=박현봉 통신원 parkhb_spb@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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