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4일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송환법 폐기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3개월이 넘는 동안 1천 명 넘는 시위 참가자가 체포되면서 시위에 나서는 사람도 눈에 띄게 줄어갔다. 시위가 위축되는 것을 우려한 시민들은 “물이 되자”(Be Water)는 구호를 외쳤다. 이 구호는 물처럼 유연하고 빠르게 흘러서 체포되는 인원을 최소화하자는 다짐을 담았다. 물처럼 융통성 있게 다양한 형태(오프라인·온라인)로 게릴라식 시위를 이어가자는 의지이기도 했다. 함께 집회에 참여했던 동료들의 복권 없이 시위를 멈추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힘들다는 것이다. 입법회-행정장관 직선제 요구 마지막 요구사항인 ‘직선제를 통한 입법회 구성, 행정장관 선출’을 골자로 하는 홍콩의 정치 개혁도 시위대가 양보할 수 없는 조건이다. <한겨레21>이 홍콩에서 만난 시위 참가자들은 다섯 가지 요구사항 중 ‘직선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홍콩 정부는 2003년 중국 정부에 반대하는 활동을 금지하는 내용의 국가보안법 제정을 추진하려다 시민사회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중단했고, 2012년엔 중국에 애국을 강조하는 과목을 필수로 지정하려다 여론이 악화하자 물러섰다. 2019년 송환법 철회도 이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홍콩 시민의 의사에 반해 시민권을 제한하는 입법 시도가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저변에는, 참정권을 보장하지 않는 홍콩의 정치체제가 있고, 이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데 시민들의 의견이 모이고 있다. 간선제로 뽑는 행정장관뿐만 아니라 홍콩의 입법회도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총 70석 의석 중 반만 직선으로 뽑고 나머지는 직능대표로 구성되는데, 직능대표 중 대부분이 재산이 많고 친정부적 성향을 갖고 있다. 다수의 홍콩 시민이 반대하는 법안도 입법회에서 통과되는 일이 빈번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네이선 로 전 데모시스토당 주석을 비롯해 우산혁명에 참여했던 주역 중 일부는 2016년 입법회 선거에서 당선돼 제도정치에 진출했지만, 선서 과정에서 반중국 태도를 보였다는 이유로 업무를 시작도 못하고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이처럼 현 홍콩 제도 안에서는 시민의 요구를 관철할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무력시위를 택했다고 생각하는 홍콩 시민들은 다시 홍콩에서 우산을 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정치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믿는다. 장정아 인천대 교수(중어중국학)는 “경찰에 체포된 인원이 너무 많은데, 이들을 모두 기소하면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시위대에 돌아온다. 직선제를 쉽게 얻기는 어렵겠지만 근본적 정치 개혁이 없다면 앞으로도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면서 시민권이 위축될 것을 알기 때문에 시위는 쉽게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인민해방군 투입 가능성 작아 홍콩 시위대는 중국의 건국 70주년이 되는 10월1일까지 시위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일부에서는 중국이 홍콩 시위 진압을 위해 인민해방군을 투입하는 것을 언급하지만 실제 가능성은 작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홍지연 홍콩과학기술대학 교수(사회과학부)는 “인민해방군 투입으로 소요 사태가 종료될 수 있다고 해도 중국이 정치·경제적으로 입을 손해가 막대하다. 홍콩 정부가 자체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긴급법(한국의 계엄령)처럼 다른 선택지가 있기 때문에 군사 개입으로 바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