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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누가 룰라를 꺾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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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3-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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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권력을 향한 한판 승부

변수로 떠오른 전직 대통령의 딸… 노동자당 누를 후보를 찾기 위한 브라질 우파의 몸부림

사진/ (GAMMA)
한국에 대선이 치러지는 2002년 지구촌 곳곳에서도 정권의 향방을 결정짓는 선거와 권력교체가 진행된다. 5월 프랑스 대선을 시작으로 올 가을에는 브라질, 독일에서 대선과 총선이 치러지고 중국은 공산당대회를 통해 권력 승계가 이뤄질 전망이다. 브라질은 최초의 노동자당 정부를 받아들일 것인가, 중국의 후진타오는 구세대와 어떤 관계를 유지할 것인가, 유럽의 좌파정당들은 어떤 돌파구를 마련할 것인가. <한겨레21> 통신원들이 이 모든 궁금증을 풀어준다. 편집자

7개월 앞으로 다가온 브라질 대통령 선거전의 관심사는 역시 남미 최대 좌파 정당인 노동자당 룰라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해서 집권 세력을 구성하는 여당 연합에서 룰라의 당선을 저지하기 위해 누구를 후보로 내세울 것인가에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여당 연합은 현 대통령 페르난두 엔리케 카르도수의 소속 정당인 사회민주당(PSDB)과 자유전선당(PFL)의 제휴로 이루어졌다. 현재 사회민주당에서는 카르도수 대통령의 오랜 정치적 동반자이자 현 보건복지부 장관인 조제 세하를 차기 대통령 후보로 내세우고 있으며 자유전선당에서는 조제 사르네이 전 대통령의 딸이자 현 마라냥주의 주지사인 호제아나 사르네이를 밀고 있다. 조제 세하와 호제아나 사르네이 가운데 누가 사회민주당과 자유전선당 연합의 단일 후보가 될 것인가가 현재로서 가장 중요한 관건이다.

불안한 1위, 노동자당

지난해부터 시작된 차기 대통령 선거전 여론조사에서 노동자당 룰라 명예총재의 지지율은 꾸준하게 30% 안팎을 보이면서 현재까지 흔들림 없는 1위를 지키고 있다. 2위에는 자유전선당의 호제아나 사르네이 주지사가 15%에서 18% 사이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주목할 점은 룰라 후보의 지지율이 오름세도 내림세도 없이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호제아나 사르네이의 경우, 대통령 후보 출마를 선언한 지난해 9월 이래로 12%에서 18%대로 계속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뿐이 아니다. 브라질 선거법은 1차 투표에서 과반수 이상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2차 선거에서 1, 2위 당선자가 승부를 가리도록 돼 있다. 호제아나 사르네이 후보는 2차전에서 룰라 후보와 맞붙을 경우, 여러 대통령 후보 중에서 유일하게 그를 이길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여론조사 결과 나타났다. 이런 이유로 해서 자유전선당에서는 자기 정당 후보인 호제아나 사르네이 주지사를 단일 후보로 추대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자유전선당의 호제아나 사르네이 대통령 만들기 작업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꾸준하고 치밀하게 진행되었다.

호제아나 사르네이는 올해 49살. 80년대에 대통령을 지냈던 아버지 조제 사르네이가 상원의원이던 시절부터 보좌하면서 일찍이 정치계에 몸을 담았다. 94년에는 브라질에서 처음으로 여성 주지사로 당선되었으며 재선에 성공해서 지금 두 번째 임기 중에 있다. 자유전선당에서는 ‘젊고 능력 있고, 남성 천하의 정치세계에서 투지와 실력으로 이겨온 여성 지도자’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호제아나 사르네이를 다음번 대통령감으로 일찌감치 점찍고 힘을 몰아주면서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자유전선당에 할당된 정당홍보 TV 프로그램의 상당부분을 파격적으로 호제아나 사르네이의 몫으로 책정해, 북부의 이름 없는 작은 주의 주지사인 그의 얼굴과 이름이 브라질 전국 방방곡곡에 널리 알려지도록 했다. 호제아나 주지사의 지지율이 계속 올라간 데에는 이 TV 홍보 프로그램의 역할이 컸다.

그러나 카르도수 대통령의 정당인 사회민주당에서는 그렇게 쉽사리 단일후보 자리를 내줄 생각이 없었다. 호제아나가 최초의 여성주지사가 된 것은 자신의 실력과 리더십으로 인한 것이라기보다는 아버지 사르네이 전 대통령의 후광과 근거지인 마라냥주에서 일종의 지방 호족처럼 오랫동안 군림해온 가족들의 영향력 덕분이었다면서 그의 대통령 자질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사실상 호제아나 사르네이는 브라질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방의 낙후된 주를 8년간 통치하면서 이렇다 하게 내세울 만한 치적을 보인 것이 없다.

부패 스캔들로 타격입은 사르네이

사회민주당에서는 카르도수 대통령의 오랜 정치적 동반자였으며 현 정권의 기획부 장관을 거쳐 현재 보건부 장관인 조제 세하(60)야말로 대통령감이라고 제안하고 있다. 조제 세하는 60년대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세대로 카르도수 대통령과 더불어 군사정권 시절인 60년대와 70년대에 거쳐 14년간 망명생활을 했다. 22년 만에 직접선거가 실시되었던 지난 1986년에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정계에 복귀했다.

조제 세하의 약점은 오랜 기간에 걸친 민주화 투쟁 경력에도 불구하고 엘리트 정치가의 이미지가 강해 대중으로부터 인기와 표를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90년대 들어서 상파울루 시장 선거와 주지사 선거에 두번 도전해서 모두 패배했다. 이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실시되고 있는 여론조사에서도 조제 세하의 지지율은 호제아나 사르네이보다 한참 떨어지고 다른 유력후보들인 안토니 가로칭요 리우데자네이루 주지사, 이타마르 프랑코 전 대통령 등보다도 뒤떨어지는 6%대에 머물고 있었다.

이러한 지금까지의 판도를 뒤집어 놓는 대사건이 3월 첫주 들어 발생했다. 마라냥주 검찰이 호제아나 사르네이 주지사와 그의 남편 소유인 경영컨설팅 회사를 공금 유용의 혐의로 수색했는데, 사무실 금고 안에서 무려 134만헤알(53만달러)의 현금이 발견됐다. 마라냥주의 주도인 상루이스에 있는 모든 은행의 하루 거래액을 다 합친 것보다 많은 현금이 주지사 남편 사무실 금고에 쟁여져 있었다는 건 누가 봐도 석연치 않았다. 이 밖에도 검찰은 문제의 호제아나 주지사 소유의 회사가 다른 건설회사와 함께 진행시킨 프로젝트를 통해 아마존지역개발청으로부터 공사를 수주하고 이 과정에서 1500만헤알(600만달러)을 빼돌렸다는 혐의를 발표했다. 아마존지역개발청이라는 기구가 지방 세력가들이 정부 공금을 손쉽게 ‘들어먹기’ 위해 존재한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검찰수사를 통해 일반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호제아나 주지사 소유의 회사는 바로 호제아나 주지사가 주재하는 지역사업심의회의를 통과해서 자동차 부품공장 설립허가를 받고 13억8천만헤알의 정부 지원금을 받았다. 이 돈의 절반이면 부품회사가 아니라 자동차 조립공장을 지을 수 있다.

스캔들 폭로의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2월까지 25% 정도였던 호제아나 주지사의 지지율이 그 주에 당장 20%로 떨어지더니 다음주에는 15%로 내려갔다. 덕분에 호제아나에게 야금야금 빼았겨 내려갔던 룰라 후보의 지지율이 2% 올랐고 사회민주당의 조제 세하의 지지율은 17%로 ‘현기증 나도록’ 솟구쳐올라 2위 자리에 이르렀다.

호제호제아나 주지사는 이 모든 스캔들이 사회민주당의 정치적 모략이라면서 분개해 마지않았다. 주지사와 자유전선당은 바로 반격에 들어갔다. 우선 수사권을 마라냥주 검찰이 아니라 연방대법원으로 옮기도록 손을 썼다. 자유전선당에서는 호제아나 주지사에 대한 ‘정치적 탄압’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사회민주당과의 정당연합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사회민주당보다 더 많은 국회 의석을 갖고 있는 자유전선당의 이러한 태도는 카르도수 정부에 매우 부담스럽다. 또 자유전선당과 연합을 이루지 못하고 단독으로, 안 그래도 허약한 조제 세하 후보를 대통령 선거에 내보낼 경우 노동자당의 룰라를 꺾을 수 없으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밀월관계는 오래 간다

자유전선당으로서는 일단 결별의 제스처를 취하기는 했지만 집권당의 일부로서 누리는 이득과 유리함을 포기할 집단이 아니다. 아니, 자유전선당은 브라질 정치사에서 언제나 집권세력 그 자체로서 항상 존재해왔다. 호제아나 사르네이라는 카드를 그렇게도 애지중지하는 이유는 사회민주당과의 연합으로 다음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승산이 높다고 예상하면서도 이 연합에서 유리한 입장을 확보하고 배짱을 튕기는 데 필요한 막강한 후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직 사회민주당과 자유전선당의 밀월관계의 ‘결정적인 파탄’은 아니라는 것이 현지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카르도수 대통령이 집권한 지난 8년은 오랜 세월의 인플레에 시달리면서 정체되다 못해 뒷걸음질치던 브라질을 다시 성장가도에 올려놓았다. 국민복지와 사회정의, 소득의 분배라는 차원에서는 그토록 치적이 보잘것없는데도 94년에 이어 98년 대통령 선거에서 브라질 국민이 현 정부를 선택한 이유는 안정된 성장이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자유전선당의 ‘늙은 여우’들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노동자당의 룰라 후보라는 ‘공공의 적’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사회민주당과 잡은 손목을 절대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다.

반세기에 걸쳐 브라질 정치를 휘어잡고 있는 자유전선당은 정경유착의 뿌리깊은 고리로 얽혀 묶인 집권세력이다. 그 고리 사이사이에는 브라질을 좀먹는 부정부패의 사슬이 미세하고 완고하게 달라붙어 있다. 노동자당의 대통령 선거전 승리는 어쩌면 이 사슬을 풀고 고리를 끊어내는 첫걸음이 될지도 모른다.

상파울루=오진영 통신원 ohnong@ig.com.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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