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헌 인물’들의 각축장

401
등록 : 2002-03-20 00:00 수정 :

크게 작게

2002, 권력을 향한 한판 승부

7년 전처럼 시라크-조스팽 대결로 압축된 프랑스… 좌우의 구별보단 이미지의 싸움 될 듯

대통령선거를 한달 남짓 앞두고 파리3구 구청 ‘선거사무실’에서 유권자를 자처하며 물었다. “올해 투표를 해야 하는 사람입니다만 누구를 뽑을지 모르겠군요. 후보자들에 관한 정보 좀 주시겠어요?” “후보자들에 관한 정보는 4월 중에 일률적으로, 우편으로 유권자들의 집으로 보내집니다.”

4월21일과 5월5일로 예정된 프랑스 대통령선거는 3월14일 현재 공공기관에서나 거리에서 그 ‘열기’를 찾기 힘들다. 후보자 등록마감(4월4일)이 끝나지 않아 아직은 포스터나 공식적인 유인물 배포가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이즈음 후보자들의 동향이나 누구에게 투표를 할지는 생각하고 있을 터이다.


지지율 차이 없는 박빙의 승부

사진/ 95년 대선 유세 당시 군중의 환호에 답하고 있는 시라크 대통령. (SYGMA)
프랑스의 대통령은 평균적으로 10여명이 후보로 나서는 1차 선거에서 1, 2위를 차지한 후보 두명만이 출마하는 2차 선거에서 가려지게 된다. 거기서 우리식의 여야 연합이 이루어지며, 1, 2차 모두 직접국민투표로 치러진다. 플로랑스(교사·대졸·30대)는 지난번 선거에서 1차 때 녹생당을 찍었고, 녹생당이 빠진 2차 때는 무효표를 던졌다. 이번 선거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투표할 가능성이 높다. 카롤(상인·고졸·30대)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1, 2차에서 한결같이 사회당을 지지할 생각이다. 레이몽(은행원·대졸·50대)은 공화국연합을 지지하는데, 그 후보인 시라크의 승리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는 1차 선거에는 참여하지 않더라도, 2차에는 꼭 참여할 생각이다. 이렇듯 4300만명을 헤아리는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에 대한 나름의 생각이 있다.

사진/ 프랑스 라디오 방송사의 홍보엽서(오른쪽), 두 인물의 특성을 재미있게 풍자하고 있다.
지난 3월11일 여론조사 기관인 SOFRES에 따르면, 이미 정식후보자로 등록되었거나 예정인 11명의 후보자 중에서 자크 시라크(공화국연합)가 23%, 리오넬 조스팽(사회당) 22%, 장 마리 르팽(국민전선) 11%, 아를레트 라귀에(노동당) 9%, 장 피에르 슈벤망(시민운동당) 7.5%, 로베르위(공산당) 5.5%, 노엘 마메르(녹색당) 5% 등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후보등록 여부는 미정이지만, 이번 선거를 위해 자기 당의 후보를 내걸어 인터넷사이트를 운용하고 있는 당은 총 30여개가 넘는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후보로 선정된다고 장담할 수 없다. 왜냐하면 후보로 등록하기 위해서는 중앙이나 지방의원 500명 이상에 의한 공식적인 추천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론조사에서 3위를 차지하고 있는 르팽은 3월15일 현재 아직도 100여명의 추천인이 모자라는 실정이다.

위의 여론조사에서 2차 선거 지지율은 조스팽이 51.5%, 시라크가 48.5%을 보여, 조스팽의 승리가 예측되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일주일 전에 이루어진 또 다른 여론조사(IPSOS)에서는 시라크가 51%, 조스팽이 49%로 그 반대의 결과를 보이기도 했다. 여론조사에서는 우승후보와 거리가 멀었던 시라크가 당선된 지난번 선거를 감안할 때, 예상치 않은 결과가 생길 수도 있다.

“누구에게 표를 던질 것인가”라는 문제는 대개 새로운 인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의미를 지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2002년 프랑스 대통령선거의 양상은 그와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 왜냐하면 2차 선거 진출이 예상되는 후보 두명이 현 대통령인 자크 시라크와 현 총리 리오넬 조스팽이기 때문이다. 이 둘은 7년 전 대통령선거에서도 나란히 출마하여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인 인물들이다. 7년 전과 두드러진 차이점을 찾으면, 그때보다 훨씬 늙었다고나 할까. 시라크 69살, 조스팽 64살. 이웃의 클린턴, 블레어, 슈뢰더가 정상으로 당선될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노령이다. 그런데 이런 ‘대통령의 노령화 현상’ 은 올해만의 특이현상이 아니다. 프랑스의 역대 대통령 대다수가 60살 이후에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앵글로색슨 사회와는 다르게 프랑스 대통령이 가지는 이미지는 ‘연륜’이라 볼 수 있다.

7년은 너무 길어…

사진/ 시라크가 국회를 해산하며 총리직에 오른 조스팽. 그와 시라크는 동거기간 내내 별다른 충돌을 빚지 않았다. (SYGMA)
그 원인으로 국민들의 경험자 선호, 선거참여자들의 노령화 등이 거론될 수 있는데, 7년의 대통령 임기가 대통령의 노령화 현상에 기여하기도했다. 노동당 후보 라귀에는 올해로 5차례라는 최대의 출마경력을 가지며, 르팽이 4회, 시라크는 4회, 조스팽은 2회로 많은 후보자들이 재출마 경력을 가지고 있다. 재출마로 연임을 할 경우엔 14년간의 역임이 가능한 것이 프랑스의 대통령 자리이며 작고한 미테랑 대통령(1981∼95)이 바로 그 예다. 비록 국민투표에 의하여 선출되는 대통령이지만, 14년의 세월은 민주독재(?)라고도 할 수 있는 긴 세월이다. 이에 지난 2000년, 7년을 5년으로 줄이자는 법안이 정치인들에 의해 만장일치로 동의되고 국민투표로 가결되어, 올해부터는 5년의 임기가 적용된다. 당시 국민캠페인의 요지가 바로 “7년은 몰라도, 14년은 너무 길다”였다.

그렇다면 5년이라는 새로운 임기의 장을 열게 될 인물은 과연 누구일까? 대부분 시라크와 조스팽의 팽팽한 공방전을 예상하는 가운데, 지난번 선거에서의 시라크처럼 예상을 뒤엎을 수 있는 인물로 장 피에르 슈벤망이 가끔씩 거론되고 있다. 시민운동당(MDC)을 새롭게 창설하여 출범하는 슈벤망은 조스팽 정부에서 내무부 장관을 역임한 인물로, 시라크처럼 드골주의를 주창하고 있어서 좌우익의 표를 얻을 수 있는 중도파로 분류된다. 그래서 색깔이 분명치 않다는 비판도 듣고 있는데, 그 자신은 “문제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상황을 진척시키려는 의지를 가진 정치인”이라고 주장한다.

지난번 선거에서 조스팽이 사회당의 당수로 새롭게 등장했고, 공화국연합의 시라크가 또한 예기치 않게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시라크와 조스팽이 정치운명을 같이하는 인연을 맺은 것은, 1997년 시라크에 의한 ‘국회해산권’ 행사 때문이었다. 시라크는 복지예산 삭감에 반대하는 시위 등 당시에 일었던 사회동요의 책임을 물으며 우파 다수의 국회를 해산하여 새롭게 총선을 실시했다. 그 결과 예상 밖으로 좌익 정부가 들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조스팽이 바로 그 정부의 수반이다. “시라크가 오늘의 조스팽을 만들었다”는 표현이 정계에 나돌고 있는 원인도 여기에 있다. 동거정부 5년 동안의 동료인 시라크와 조스팽의 행적은 프랑스 정치문화의 한면인 <기뇰>(<카날플러스>라는 방송사에서 인기리에 방영하는 정치풍자 인형극)이 풍자적으로 잘 요약하고 있다.

시라크: 직업- 공화국 대통령/ 향후 계획- 계속 하는 것/ 취미- 옷 벗기/ 특징- 기분파, 팬티가 하나뿐임, 조지 부시의 휴대폰 번호를 알고 있음(조스팽은 모름)/ 좋아하는 것- 비행기여행, 나체일광욕, 부시와 함께 세계를 구출하는 것/ 싫어하는 것- 조스팽, 거짓재판, 진짜재판.

조스팽: 직업- 실업률 인하하기/ 학력- 트로츠키스트/ 취미- 일하기/ 특징- 신경질적/ 좋아하는 것- 일하기, 3시간30분 동안 TV연설하기/ 싫어하는 것- 계산가, 변조가, 선동가, 무능한 자와 함께 일하기/ 향후 계획- 계산, 변조, 선동가, 무능한 자를 대신하는 것/ 선호하는 책- <냉정을 찾는 법> <주 35시간 근무 서서히 실시하는 법>

위는 그간 있었던 사건들을 종합하여 두 인물의 정책과 스캔들 및 특성을 풍자하여 잘 요약한 내용이다. 근 1년간 대통령후보 맞수로 알력을 펴고 있기는 하지만, 시라크와 조스팽의 동거기간 5년 중 4년간은 예전의 어느 동거내각에서도 그 예를 찾기 힘들 정도로, 별다른 충돌 없는 기간을 보내기도 했다.

시라크와 조스팽, ‘그 밥에 그 나물’

선거전의 주요 안건으로는 폭력 문제, 세계화 문제, 경제성장과 근무조건, 퇴직 및 정년 문제, 세제인하 문제, 코르시카섬의 해방군들과의 갈등 문제 등이 부각되어 후보자들의 논쟁이 펼쳐지고 있다. 5년 좌우 동거내각의 결과가 빚어내는 기본공약들에 대해, 조스팽쪽에서는 그동안의 성과를 부각시키려 하고, 시라크는 그 기간 동안 드러난 사회문제를 부각시키려 하는 것은 당연하다. 시라크는 현 정부의 치안정책을 비방하는가 하면, 5년 안으로 33%의 세율인하를 내걸면서 ‘함께하는 프랑스’를 구호로 외치고 있다. 한편 조스팽은 ‘다르게 다스린다’는 슬로건을 내걸어 지난 5년간의 성과와 실패를 발판으로 새로운 장을 열 것이라고 다짐한다. 이런 가운데 3월 초 <리베라시옹>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전체의 70%가 “시라크와 조스팽의 공약에 큰 차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으니, 유권자들이 후보자들의 속성을 잘 파악하고 있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적지 않은 유권자들이 우파와 좌파 후보간의 큰 차이를 찾을 수 없다고 말하는 2002년 대통령선거. 그 결과를 좌우하는 것은 후보자 개인의 이미지라는 설이 강력히 일고 있는 가운데, 프랑스 대통령선거의 ‘서스펜스’는 더욱 짙어가고 있을 뿐이다.

파리=이선주 통신원 oseyo@libertysurf.f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