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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바닥에서 활동가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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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3-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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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시민운동

공동체 운동을 위한 활동가 학교 CO-M 사무총장이 이야기하는 필리핀 사회운동의 힘

‘움직이는 세계’는 이번호부터 해외 시민운동단체 소개, 활동가 인터뷰, 문제점 진단 등을 담는 고정난을 연재합니다. ‘세계의 시민운동’은 이렇게 다른 세계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작은 연대의 손을 내밀고자 합니다.

세상의 온갖 사회단체들이 다 모여 있다는 필리핀의 비정부기구(NGO)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자칫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일 수 있다. 우리와 비슷한 엄혹한 독재사회를 거쳤고 여전히 같은 종족간의 분쟁이 있는 필리핀,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번이나 거리에서 여성 대통령을 선출하고 우리에겐 절대 금기시되는 미군 철수를 10여년 전에 이룬 필리핀 NGO들의 저력.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주민 모두가 참여하는 민주주의

사진/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과정이 중요하죠." 명문 대학을 나와 빈민들의 공동체 운동에 뛰어든 바가사오.
필리핀의 지역사회를 한번쯤 방문한 사람이라면 엄청난 빈부격차에 한번 놀라고 가난한 지역에도 주민들의 자치조직이 잘 구성되어 있음에 다시 한번 놀란다. 어느 지역, 어떤 시민사회단체를 방문하더라도 자연스럽게 듣는 말이 있다. 바로 공동체 조직화(CO: Community Organization)라는 말이다. 아시아에서 공동체 조직운동은 미국의 솔 알린스키의 조직운동 방식과 브라질의 파울로 프레이리의 의식화 교육을 함께 결합하면서 7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었다. 한국은 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사회구성체 논쟁을 계기로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받다가 최근 들어 시민사회단체들 사이에서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반면 같은 시기에 출발한 필리핀의 공동체 조직화 운동은 30여년 동안 끊임없이 이어져왔고 이제는 전체 사회운동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피데스 바가사오(48·여)가 명문 필리핀대학교를 졸업하고 농촌지역 가난한 마을에서부터 사회운동에 뛰어든 모습은 한국의 70, 80년대 운동가들이 겪었던 과정과 비슷하다. 결혼을 안한 건지 못한 건지 말하기 피곤한 나이가 되었지만 그는 필리핀의 6만여개 시민사회단체 중에서도 주로 단체 활동가를 대상으로 교육을 하는 CO-M(Multiversity)의 사무총장이다. 우리나라 말로 풀면 ‘공동체 조직 활동가 학교’다. 교육부 인가를 받는 학교는 아니지만 다양한 활동가들에게 조직화 방법을 전하거나 직접 현장에서 그들을 돕는 일을 하는 것이 이 단체의 주요 활동이다. “우리 단체에는 정책실이란 것이 없어요. 몇몇 사람이 만들고 제안하는 정책보다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여 만드는 과정을 좀더 중요시하기 때문입니다.” 피데스와의 대화 중 수도권 중심부를 흐르는 파시그 강 주변에 사는 주민들의 모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아침 일찍 40여명이 모여 시작한 모임의 내용은 이랬다. 필리핀 정부가 아시아개발은행(ADB)으로부터 환경개발이란 이름으로 막대한 융자를 받아 주거지역을 철거하면서 정작 오염의 주범인 공장에 대한 이전 계획은 없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철거 중지 요구와 함께 자신들이 나름대로 준비한 대안을 만드는 중이었다.

CO-M은 계획안을 만드는 과정에 “고기를 잡아주기보다 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주고자 한다. 지역조사 과정도 ‘참여조사방법’(PAR)을 통해 주민들이 직접 설문지를 만들 뿐 아니라 조사와 분석까지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우리처럼 “빨리, 빨리”라는 말을 입에 달거나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결과에 목숨 거는 사람들에게, 주민 모두가 참여하고 의견을 내도록 하는 이런 공동체 조직 방법이 얼마나 설득력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피데스는 “지난 30여년간 이런 방법을 통하여 사회, 정치 영역에 참여 민주주의 훈련이 잘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 단체에서는 경제정의와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함께 하고 있다. 라모스 정권 때 구성된 반빈곤대책위원회(NAPC)는 정부와 시민사회단체 각각 150명씩, 300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특별위원회 위원장은 대통령이며, 부위원장은 정부를 대표하는 사회복지부장관과 민간대표인 피데스가 맡고 있다. 밑바닥 대중의 참여를 이끌어온 CO-M 같은 단체가 필리핀 사회 변화를 이끌어가고 있다.

(CO-M 이메일:fides@comultiversity.org.ph 전화: 632-926-6755)

마닐라=나효우 통신원 nahyowoo@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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