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권력을 향한 한판 승부
독일 총선에 흥미를 더하는 관전포인트… 좌파의 퇴조와 ‘슈토이버 열풍’을 어떻게 볼 것인가
1989년 3월, “콜 정부 끝나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라는 노골적이고 선동적인 문구가 이미 독일의 유력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표지를 장식한 바 있다. 그러나 콜이 이끄는 ‘기민·기사련’ 연합이 1990년, 94년 선거에서도 연달아 승리하면서, 콜 자신은 16년 집권이라는 ‘기록’을 이뤄낼 수 있었다. ‘통일 총리’라는 굵직한 역사적 입지도 그를 만족시키지는 못했을 듯하다. 독일 역사에서 ‘통일 총리’라는 영광스러운 제호는 그의 것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20년 장기집권 속에 통일된 최초의 근대국가를 이룬, 이른바 ‘철의 제상’ 비스마르크가 그의 앞에 놓여 있었다. 따라서 1998년에 치러진 통일 총선은, 제2의 비스마르크에 도전하는 콜과 이를 막고자 하는 사민당간의 한판 승부로 볼 수 있다. 당시 각종 여론조사는 정당에 대한 지지도와는 별도로 평균 70%가 넘는 국민들의 정권교체 열망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두텁고 광범위한 독일 국민의 정권교체 열망을 많은 전문가들은 98년 사민당 선거 승리의 제1의 원천이라고 지적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98년 슈뢰더를 앞세운 사민당은 ‘새로운 중도’라는 좀처럼 정의 내리기 힘든 구호로 선거운동을 이끌어 나갔고, 이는 영국 노동당의 ‘제3의 길’과 함께 90년대 후반 유럽의 좌파 정부 물결의 상징어가 되었다. 여기서 ‘새로운 중도’라는 구호를 탄생시킨 당시 사민당 내의 독특한 구조와 선거운동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은, 다가오는 2002년 총선의 관전에 재미를 더할 것이다.
관전 포인트 (1)
사민당 선거운동본부 ‘캄파’(Kampa)
독일 최대규모의 당원을 자랑하는 사민당에 있어 선거운동은 전통적인 ‘조직운동’의 총화였다. 98년 선거운동 과정에서 사민당 당원들 사이에서는 “바꿔야 한다”와 “바꿀 수 있다”는 열기가 뜨거웠다. 최근 사민당 사무총장이 언론에 공개한 보고서에서도 ‘새로운 중도’라는 선거전략보다는 당원들의 열정이 98년 선거 승리의 힘이었다고 고백되어 있다. 사실상 당내의 커다란 논쟁이나 토론을 거치지 않고 채택될 수 있었던 ‘새로운 중도’는 당원보다는 오히려 언론의 관심사였다. 당시 슈뢰더 총리 후보는 개인적 친분을 통해 100여명의 언론인과 광고 전문가들을 불러모아, ‘캄파’(Kampa)를 조직했다. 캄파라는 이름은 캠페인이라는 단어에서 착안하여 조어된 것이다. 미디어 전문가로 구성된 이들은 곧 당사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최첨단 기자재가 구비된 사무실에 자리를 잡고, 언론을 상대로 매체의 성격에 따라 입체적이고 차별화된 선거전략 홍보에 나섰다. ‘새로운 중도’라는 전략도 이 과정에서 처음으로 공개되었고, 정작 사민당 당원들은 뒤늦게 언론을 통해 자신들의 선거구호를 경험하게 된다. 이후 캄파는 능숙하게 각종 언론에 효과적인 ‘기삿거리’를 제공하며, 사실상의 여론 흐름을 주도해 나갔고 승리의 1등 공신이 되었다. 이처럼 당의 핵심 선거운동본부가 당 외곽에 설치된 것은 독일 정당 역사상 최초의 일이고, 또한 전형적인 미국식 선거운동 방식인 ‘참모 선거운동’이 조직운동의 전통을 자랑하는 독일 정당 내에 자리를 잡은 것도 눈에 띄는 변화이다. 지난해 12월 사민당은 2002년 9월 총선을 대비한 ‘캄파2’를 구성하여 베를린의 젊은이의 거리에 선거운동본부를 꾸렸다. 그리고 캄파2는 지난 2월 ‘중심은 빨갛다’라는 선거구호를 선보였다. 검정, 빨강, 노랑 세 가지 색으로 구성된 독일국기를 뒷배경으로 하여 대대적인 선거포스터 발표회도 가졌다. 98년의 ‘새로운 중심’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혁신과 정권교체의 희망을 표현한 것이라면, ‘중심은 빨갛다’라는 구호는, 사민당 사무총장의 입을 빌린다면 “중산층을 위한 정치”를 사민당 정책의 중심에 놓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사민당을 상징하는 색 역시 붉은색이다. 그러나 전작의 히트와는 대조적으로 새로운 구호 ‘중심은 붉다’는 이러저러한 비판과 외면 속에 해프닝에 머무를 듯하다. 지난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독일이 우승을 차지하면서 독일 국기가 연일 텔레비전 화면을 장식했고, 이와 함께 새로운 구호가 이러한 물결에 동승하려는 조잡한 ‘이미지 작업’이라는 비판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는 사민당 지지율의 추락을 막는 데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마침내 2월 마지막 주, 독일 제2공영방송과 <슈피겔>이 각각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야당인 ‘기민·기사련’과 ‘자민당’의 지지율이 50%를 넘어서면서, 사민당과 녹색당의 4년간의 연정이 끝날 수도 있다는 여론이 확산되었다. 관전 포인트 2)
새로운 짝짓기와 녹색당의 퇴조
의원내각제인 독일에서는 연방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정권의 성격을 결정짓는 우리식의 대선을 의미한다. 어떤 정당도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현재 독일의 정치구조에서는, 의회에 진출해 있는 총 5개 전국정당들간 정치연합, 즉 정당간의 짝짓기가 가능하다. 98년 총선 당시 여론조사 결과와 동일하게 이번 2002년 총선을 염두에 둔 여론조사에서도, 독일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짝짓기는 정치색이 판이하게 다른 두 거대정당, 사민당과 기민·기사련간의 연립정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행정부의 주요 정치세력이 사민당과 기민·기사련으로 양분되면서, 심각한 행정 및 입법의 지연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한편 정통 좌파의 색이 탈색되어버린 사민당을 대신해 좌파정당을 대변하고 있는 녹색당의 연합정부 참여는 여러 면에서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98년 총선에서 약 8%의 득표율을 나타낸 녹색당은 당시 선거공약이었던 핵발전소 폐기 법안을 마침내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비록 30년 이후라는 불안정성을 포함하고 있지만 이는 하나의 역사적 성취가 분명하다. 또한 68운동의 맥을 이으며 80년대 반전·평화운동의 전통 위에 서 있는 녹색당의 본질적인 ‘야 성향’이 어떻게 집권당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가 많은 이들의 관심이었음은 물론이다. 기성 권위에 도전하면서 정장을 입고 국회에 등원하는 것을 거부했던 녹색당 의원들의 복장은 점차 세련되어 갔다. 정치적 견해와 신념을 대변하는 것과 국가를 대표하는 것이 다르다고 말하는 듯 외무부, 환경부 장관의 목에는 넥타이가 매어졌다. 독일군의 코소보, 유고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드러난, 녹색당 내 실리파와 좌파의 갈등은 점차 당내 좌파세력의 패배로 마무리되었다. 녹색당은 당내 좌·우파, 여성·남성간의 공평한 권력분점으로 민주적 당 운영방식의 선례를 보여주기도 했다. 당 대표 및 많은 직책들은 2명에게 공동으로 위임된다. 그러나 올해 1월부터 진행되고 있는 지역별 연방의회 후보선출 과정에서 당권을 장악한 실리파에 의한 좌파의 배제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계속되는 지지율의 하락으로 녹색당은 사민당에 점차 연정파트너로서 가지는 매력을 잃어가고 있다. 특히 최근 여론조사에서 연방의회 진출의 경계선인 불과 5%의 지지율만을 기록했고, 이는 곧 다른 형태의 정치조합을 사민당에게 강요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여기에서 과거 기민·기사련의 연정 파트너였고, 최근 약 9%의 단단한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자민당에 대한 사민당의 강한 구애의 배경을 엿볼 수 있다
관전 포인트 3)
슈토이버 효과
16년 집권기간 동안 꾸준히 당내 경쟁자들을 무력화시켜 온 콜이 마침내 당권을 잃자, 보수당인 기민련 당 대표는 옛 동독 출신이자 여성인 메어켈에게 넘어갔다. 한편 기민련과 자매정당이면서, 좀더 강력한 보수성을 대변하는 정치세력인 바이에른주의 기사련은 전후 독일 최대의 보수정치인으로 평가받는 슈토이버가 당권을 장악하고 있다. 기민·기사련의 총리 후보를 둘러싼 슈토이버와 메어켈간 한바탕 힘겨루기가 지난 1월 슈토이버의 승리로 끝이 났다. 여기서 사민당과 녹색당은 여성이며 비교적 온건한 이미지의 메어켈보다는 강경보수의 슈토이버를 선호하는 태도를 보였는데, 이는 현재 사민·녹색당의 무력한 단면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정권교체 이후 당원 결집력의 약화를 경험하고 있는 사민당과 당내 좌파의 퇴조와 함께 사실상 사민당과의 차별성을 잃어가고 있는 녹색당에게, ‘강력한 보수’ 슈토이버의 등장이 다소 덜 위협적인 것으로 느껴지는 듯하다. 사민당과 녹색당은 슈토이버의 분발이 유권자들에게 ‘우익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베를린=강정수 통신원 jskang@web.de

사진/ 현 독일 총리 슈뢰더(오른쪽)와 기사련의 총리 후보 슈토이버. 사민·녹생당 연합은 오히려 '강력한 보수'인 슈토이버를 상대하고 싶어한다.
사민당 선거운동본부 ‘캄파’(Kampa)
독일 최대규모의 당원을 자랑하는 사민당에 있어 선거운동은 전통적인 ‘조직운동’의 총화였다. 98년 선거운동 과정에서 사민당 당원들 사이에서는 “바꿔야 한다”와 “바꿀 수 있다”는 열기가 뜨거웠다. 최근 사민당 사무총장이 언론에 공개한 보고서에서도 ‘새로운 중도’라는 선거전략보다는 당원들의 열정이 98년 선거 승리의 힘이었다고 고백되어 있다. 사실상 당내의 커다란 논쟁이나 토론을 거치지 않고 채택될 수 있었던 ‘새로운 중도’는 당원보다는 오히려 언론의 관심사였다. 당시 슈뢰더 총리 후보는 개인적 친분을 통해 100여명의 언론인과 광고 전문가들을 불러모아, ‘캄파’(Kampa)를 조직했다. 캄파라는 이름은 캠페인이라는 단어에서 착안하여 조어된 것이다. 미디어 전문가로 구성된 이들은 곧 당사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최첨단 기자재가 구비된 사무실에 자리를 잡고, 언론을 상대로 매체의 성격에 따라 입체적이고 차별화된 선거전략 홍보에 나섰다. ‘새로운 중도’라는 전략도 이 과정에서 처음으로 공개되었고, 정작 사민당 당원들은 뒤늦게 언론을 통해 자신들의 선거구호를 경험하게 된다. 이후 캄파는 능숙하게 각종 언론에 효과적인 ‘기삿거리’를 제공하며, 사실상의 여론 흐름을 주도해 나갔고 승리의 1등 공신이 되었다. 이처럼 당의 핵심 선거운동본부가 당 외곽에 설치된 것은 독일 정당 역사상 최초의 일이고, 또한 전형적인 미국식 선거운동 방식인 ‘참모 선거운동’이 조직운동의 전통을 자랑하는 독일 정당 내에 자리를 잡은 것도 눈에 띄는 변화이다. 지난해 12월 사민당은 2002년 9월 총선을 대비한 ‘캄파2’를 구성하여 베를린의 젊은이의 거리에 선거운동본부를 꾸렸다. 그리고 캄파2는 지난 2월 ‘중심은 빨갛다’라는 선거구호를 선보였다. 검정, 빨강, 노랑 세 가지 색으로 구성된 독일국기를 뒷배경으로 하여 대대적인 선거포스터 발표회도 가졌다. 98년의 ‘새로운 중심’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혁신과 정권교체의 희망을 표현한 것이라면, ‘중심은 빨갛다’라는 구호는, 사민당 사무총장의 입을 빌린다면 “중산층을 위한 정치”를 사민당 정책의 중심에 놓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사민당을 상징하는 색 역시 붉은색이다. 그러나 전작의 히트와는 대조적으로 새로운 구호 ‘중심은 붉다’는 이러저러한 비판과 외면 속에 해프닝에 머무를 듯하다. 지난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독일이 우승을 차지하면서 독일 국기가 연일 텔레비전 화면을 장식했고, 이와 함께 새로운 구호가 이러한 물결에 동승하려는 조잡한 ‘이미지 작업’이라는 비판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는 사민당 지지율의 추락을 막는 데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마침내 2월 마지막 주, 독일 제2공영방송과 <슈피겔>이 각각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야당인 ‘기민·기사련’과 ‘자민당’의 지지율이 50%를 넘어서면서, 사민당과 녹색당의 4년간의 연정이 끝날 수도 있다는 여론이 확산되었다. 관전 포인트 2)
새로운 짝짓기와 녹색당의 퇴조

사진/ 2002년 총선을 이끌 녹생당 지도부. 점점 떨어지는 지지율 때문에 사민당과의 연정도 위협받고 있다.
슈토이버 효과

사진/ 기민련 당사의 전경. 정면에 "슈뢰더에 의한 경제성장-그러나 유럽 꼴찌"라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