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7일 인도네시아 대통령선거 투표를 마친 조코 위도도 대통령 부부가 투표 증명으로 손가락에 찍은 잉크를 취재진에게 보여준다.
조코위는 투표 직후 소감과 계획을 묻는 인도네시아 취재진에게 특유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낙관적이다. 몇 시간만 있으면 결과를 볼 수 있으니 기다리자”고 했다. 2014년 대선 당시와 비교해 언론을 대하는 태도에 여유가 엿보였다. 지난 5년간 쌓인 최고위급 정치인으로서의 경험과 국정 운영에 대한 확신, 거기에 꾸준한 지지율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자신감으로 보였다. ‘누가 더 오른쪽인가’ 두고 경쟁한 후보들 조코위는 중부 자바섬의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난 가구 수출 사업가 출신 정치인이다. 지난 대선에서 시민사회의 열렬한 지지를 등에 업고 철권통치자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사위이자 군사령관 출신 프라보워를 눌렀다. 이날 정오께 자카르타 도심 거주지역인 캄풍 발리(발리 마을) 제40투표소 인근 그늘에 시민들이 모여 앉아 다과와 식사를 나누고 있었다. 투표가 끝나는 오후 1시에 곧바로 시작되는 현장 집계 결과를 함께 지켜보기 위해서다. 2014년에 이어 올해도 기호 1번 조코위를 뽑았다는 주민 트리(30)는 “그가 해온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려고 또 선택했다. 조코위가 5년간 만든 변화와 개혁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2014년 대선에서 조코위의 승리가 곧 시민사회의 승리로 해석됐던 것과 달리, 올해 대선에서 일어난 ‘민심 이반’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조코위가 정치적 조직 기반을 얻기 위해 엘리트 정치 공학에 편승했다는 비판이 높기 때문이다. 조코위의 새 임기 5년 내내 시민사회가 매달려온 경제적 불평등, 소수자 박해, 인권침해 문제의 해결을 외면했다는 비판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지난 대선에서 조코위를 지지했던 캄풍 발리 주민 펜디(40)는 이번 대선에서 기호 2번 프라보워를 선택했다. 그는 “경제 사정이 전혀 나아지질 않고 있다. 물가는 오르는데 돈 벌기는 더 힘들다. 루피아 환율도 형편없고. 이렇게 자원이 풍부한 나라 사람들이 가난한 것은 리더십의 문제다. 문제를 해결하고 변화를 주려면 새로운 사람으로 바꿔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동의하듯 오토바이 택시기사, 일용직 노동자, 임금노동자로 일하는 1만여 명이 거주하는 이곳 캄풍 발리의 빠른 집계 결과는 대부분 프라보워의 득표가 우세한 것으로 나왔다. 싱가포르 싱크탱크 ‘ISEAS-유소프 이삭 연구소’의 방문연구원인 마데 수프리아트마는 이번 선거를 ‘자유시장주의자로서 경제정책에 별 차별성이 없는 두 후보가 정체성의 정치, 즉 누가 더 이슬람 보수주의자인가를 두고 경쟁한 오른쪽으로의 질주’라고 평가했다. 그는 5차례의 대선 후보 생방송 TV토론에서도 빈곤, 소득분배, 지역 간 불평등 문제를 다루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조코위 대통령의 첫 5년 임기는 인프라 사업이 활발하게 이뤄졌다는 성과가 있지만, 실업 문제, 질 낮은 교육, 사회정의 등을 개선하지 못했고, 인권 문제는 “완전히” 외면했다고 봤다. 인도네시아 민주주의 인권운동가 마리아 수마르시(67)는 아예 “군인들이 시민들의 삶 곳곳에 침투한 수하르토의 신질서 시대로 돌아갔다. 조코위가 신질서 시대에 정당성을 부여했다”고 말한다. 5년 전 조코위를 지지했던 그는 올해 시위로서의 기권, 혹은 적극적인 투표 거부를 뜻하는 ‘골풋’(Golput·총선투표 거부자)을 택했다. 조코위가 2014년 대선 당시 “당선되면 인권침해 문제를 조사하고 ‘불처벌’을 종식하겠다”고 약속해놓고, 당선되자마자 국가폭력의 핵심 가해자인 퇴역 장성들을 정부 요직에 임명한 탓이다. ‘총선투표 거부자’ 된 인권운동가 그는 거리집회를 하며 국가폭력과 인권침해 가해자 처벌, 정의와 진실을 향한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1998년 11월13일, 대학생 아들 와완이 민주개혁 시위 중 군경의 총에 맞아 숨진 스망기 제1사건 이후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이어온 목요집회는 오늘도 오후 4시 대통령궁 앞에서 열릴 예정이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글·사진 이슬기 자유기고가 skidolm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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