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라켓으로 때려주고픈 싱가포르?

400
등록 : 2002-03-13 00:00 수정 :

크게 작게

아시아의 스포츠- 인도네시아

배드민턴 스타 ‘타우픽 히다얏’의 이적 둘러싸고 국민감정 폭발하다

사진/ 아흐마드 타우픽(Ahmad Taufik), 시사주간지 <템포> 기자.
스포츠, 약간의 오락성을 곁들인 건강한 생활의 일부로 이해하면 어떨까? 고대 그리스인들도 ‘건강한 육체, 뜨거운 영혼’을 외치며 스포츠를 즐기지 않았는가. 그런데 요즘 이런 말들을 하노라면, 무슨 ‘바보’ 취급을 받는 기분이 든다.

90년대엔 말레이시아와의 충돌


사진/ 스포츠 종목 가운데 인도네시아가 유일하게 세계를 주름잡는 배드민턴. 국민들은 싱가포르가 재력을 앞세워 선수와 코치들을 빼간다고 믿고 있다.
스포츠의 대결화, 스포츠 경기의 결투장화, 이건 따지고 보면 올림픽까지 거부하며 상대를 죽여야 살 수 있다는 논리를 살포한 냉전의 산물이라고 믿었는데, 이미 냉전이 끝났다고 주장하는 시대에 접어들어 더 극성을 부리고 있으니 어인 일인지! 냉전의 다극화가 스포츠를 통해 여실히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그 전에는 ‘빨갱이’ 국가만 물리치면 된다는 비교적 단순한 논리가 통하더니, 이제는 이웃끼리도 죽자살자 겨루고 있다. 전통적인 의미의 적도 동지도 없어졌다는 말을 스포츠판이 잘도 증명해주는 현실이다.

인도네시아는 그 잘난 배드민턴이 늘 문젯거리다. 스포츠 종목 가운데 인도네시아가 유일하게 세계를 주름잡는 것이 바로 배드민턴인데, 1990년대 초부터 말썽이 심해졌다. 인도네시아 시민들이 배드민턴 시합을 놓고 말레이시아 시민들과 틀어지면서 사태가 꼬이기 시작했다.

말레이시아와 충돌 사태의 전말은 이렇다. 당시 말레이시아가 인도네시아의 가까운 경쟁자였던 셈인데, 말레이시아 관중들이 경기장의 인도네시아 선수들에게 돌을 던지면서부터 긴장이 높아가더니, 결국 말레이시아에서 현장노동자들로 일하고 있던 인도네시아 관중들에게까지 돌이 날아들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돌이켜 보면,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 할 만큼 심각했다. 1963년 수카르노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대 말레이시아 공격 선언을 했던 사실이 있던 만큼, 두 나라 사이에는 늘 묘한 긴장이 감돌고 있던 터다.

요즘은 또 배드민턴을 놓고 싱가포르와 관계가 뒤틀려 버렸다. 이 긴장은 정치에서 출발해 급기야 배드민턴으로 옮겨붙은 경우다. “인도네시아는 테러리스트의 소굴이다.” 싱가포르의 노회한 독설가 리관유 장관의 한마디가 불을 지폈다. 인도네시아 시민들이 유쾌할 리 만무했고, 특히 이슬람 그룹들은 자신들을 알카에다 테러리스트 네트워크로 지목한 리관유의 발언을 놓고 벌써 몇주째 카르타의 싱가포르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인도네시아 배드민턴계의 떠오르는 샛별 타우픽 히다얏의 싱가포르 이적문제가 불거졌다.

타우픽이 인도네시아 배드민턴협회가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싱가포르로 이적하겠다는 결심을 밝히자, 배드민턴협회는 그와의 계약금 50%를 깎으며 감정적 대응을 했다. 타우픽은 이 일로 마치 ‘적’ 같은 존재로 대접을 받게 되자, 즉각 싱가포르 배드민턴협회의 구애를 수락해버렸다. 타우픽의 이적은 2002년 1월부터 유효한 선수 이적법에 명백히 위배되는 경우지만, 인도네시아 배드민턴협회는 타우픽의 행동을 증오해 이적을 인정해버렸다. 그러나 타우픽의 신분은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고, 당장 3월부터 벌어질 스위스오픈에 어느 나라 선수로 참가할 수 있을지부터가 고민거리였다. 인도네시아 배드민턴협회는 타우픽의 싱가포르 대표선수 자격이 불법이라며 국제배드민턴협회에 통고했고, 결국 타우픽은 참가 자격을 박탈당하고 말았다.

타우픽만 ‘낙동강 오리알’ 되다

사실 인도네시아 배드민턴협회의 분노는 인도네시아 배드민턴 코치 인드라 위자야가 싱가포르로 이적할 때부터 쌓여온 것이라는 걸 알 만한 이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정부도 싱가포르 정부가 재력을 앞세워 선수와 코치들을 빼간다고 믿어왔다. 특히 인도네시아의 부호들이 은행 돈을 인출해서 모조리 싱가포르로 도망쳐 안락한 생활들을 하고 있다는 사회적인 질시까지 한꺼번에 묶여 반싱가포르 감정이 폭발한 셈이다. 인도네시아 경제학자들도 질세라, 싱가포르의 ‘외환 장난’으로 인도네시아의 경제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반감에 불을 지피고 있다.

정치, 경제, 그리고 스포츠 모두가 한통속이다. 결전의 날을 향한 도구로써. 자 어디서 ‘건강한 육체에 뜨거운 영혼’을 찾을 것인가?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