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악할 만한 스포츠위원회의 쥐꼬리 예산… 스포츠는 ‘배고픈 시민들의 희망’이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이 여섯달 앞으로 다가왔다. 지금쯤이라면, 각국 대표선수들은 최적의 몸 상태에다 최고 기록에 도달하고 있을 때라 여겨진다.
그러나 필리핀은 예외다. 지난 1월말까지도 필리핀 올림픽위원회는 대표선수의 명단조차 밝히지 못한 상태다. 그렇다고 달리 흥분할 만한 일도 못된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필리핀 시민들은 이런 류의 일들에 익숙해져 왔다. 물론 올림픽위원회의 변명 같은 걸 들어볼 필요조차 없다. ‘앵무새 따라 외우기’일 게 뻔하니까. “부족한 예산, 정치활동, 내분 탓으로 준비가 부족했고….”
깎이고 깎인 26억원
그렇더라도 지난 수십년간 스포츠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필리핀의 스포츠맨들은 자신의 노력과 인내로 빛나는 금자탑을 쌓아왔다. 아시아 육상의 슈퍼스타 리디아 데 베가, 수영의 세계 챔피언 에프렌 바타 레에스, 볼링 챔피언 라파엘 파엥 네포무세노 그리고 복싱 챔피언 프라쉬 에롤데 같은 이들의 이름이 그 영광의 주인공들이다.
그러나 모두가 그들처럼 스포츠의 재능을 타고나거나 출중한 인내력을 소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현대 스포츠에서 정부의 지원과 체계적인 교육의 중요성이 크게 강조되고 있다. 수많은 스포츠맨들이 결국 충분한 재원과 훈련을 거친 다음에야 빛을 낼 수 있었다는 것이 그 동안의 경험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거꾸로 가는 세상이 있으니, 그게 바로 필리핀이다.
필리핀의 스포츠를 총괄하는 필리핀스포츠위원회에 할당된 올해 총예산이 1억7백만페소(약26억원)란다. 그마저도, 남세스럽지 않게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고 적정한 훈련을 위해 필요하다고 위원회가 요구했던 1억4천1백만페소에서 깎이고 깎여 얻은 액수다. 서글픔을 넘어 차마 남부끄러워 글을 쓰지 못하겠다며 각 언론사의 스포츠 담당기자들 사이에는 사실을 공개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일 정도였다.
게다가 이 열악한 예산마저 도둑질해 가는 부패까지 곁들여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기가 막히고도 남을 일이다. 팀훈련을 간 스포츠맨들에게 방을 쪼개 여러 명이 함께 묵도록 했고, 심지어는 화장실에까지 자리를 펴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즈음에는 분개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또 일부 선수들에게는 방값과 훈련비용을 자비로 담당하게 했단다.
정부가 못하면 개인이나 단체라도 나서야 하는 것이 사회 스포츠의 기본이고 저력인데, 필리핀에는 그마저도 없다. 기업가들은 부의 사회적 환원이나 자선 같은 전통적인 박애주의에 대한 훈련도 없었고 경험도 없었다.
스포츠 투자? 쓸데없는 소리라고 나무라는 이들도 있다. “무엇 때문에 막대한 돈을 스포츠판에 쏟아붇나? 그런 돈이 있으면 차라리 빈곤문제 해결을 위해 끼니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밥이라도 배불리 먹이는 게 옳지.” 그렇다. 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스포츠가 엄연히 사회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고 있으니, 어이하리오! 또 인류의 역사 속에서 스포츠에 투입할 돈을 아껴 빈곤문제 해결에 보탰다는 거룩한 증거나 경험을 눈꼽만치도 찾아볼 수 없다. 어차피 그 돈은 빈곤문제 해결 쪽으로 흘러갈 돈줄들이 아니라는 뜻이다. 적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부패로 새는 돈줄만 차단한다면…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아무리 필리핀이 개발도상국이라 해도 그렇게 전면적으로 가난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건 결국 사회적 시스템의 문제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부의 공정한 분배에다, 해마다 수억달러씩 부패로 새나가는 돈줄을 차단한다면, 빈곤 문제고 스포츠 문제고 골치 아프게 따질 일도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욕먹을 각오로 한마디 하자면, 배고픔의 문제는 단지 우리 현실 속의 그 ‘돼지죽’같은 먹을거리에만 있지 않다. 개발도상국 필리핀의 한 시민으로서 살아갈라치면, 현실의 속박을 벗어던져 버릴 수 있는 최소한의 정신적인 해방도 함께 있어야 한다. 스포츠, 그 이름은 그 배고픈 시민들의 희망이라고 감히 말해 본다.

사진/ 마리테스 시손(Marites Sison), 전 <마닐라타임스>기자·칼럼니스트.

사진/ 지난 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개막식. 올해 부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필리핀 선수들은 정부의 인색한 지원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한겨레 곽윤섭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