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상업주의·부패·선동의 드라마!

400
등록 : 2002-03-12 00:00 수정 :

크게 작게

범죄보고서를 방불케 하는 아시아 스포츠의 정치경제학을 말한다

“한데 꼴난 메달 하나가 뭐 그리 중요하다고, 한국 전체가 발칵 뒤집힐 정도지?” 오랜만에 선술집에 둘러앉은 외신기자들 가운데 동계올림픽 같은 게 있는지도 몰랐다는 인도기자가 느닷없이 화제를 돌렸다. 이날 술자리는 최근 언론과 심각한 마찰을 빚고 있는 탁신 타이 총리의 폐쇄적인 언론관을 도마에 올려놓고, 그 비굣거리로 말레이시아의 독설가 마하티르 총리를 등장시키기도 하면서 그저 빈정거리는 정도의 분위기였다. 그러다가 독일기자가 마하티르의 야심작 ‘위대한 말레이시아’용 프로젝트였던 1997년의 에베레스트 원정과 극지 도달을 했느니 못했느니로 말썽이 많았던 1998년 북극탐험 같은 것들을 우스개로 올렸는데, 결국 동계올림픽의 메달사건으로까지 이어졌다.

궁금하지만 부담스런 주제

정직하게 말해, 1면 머리 정도의 스포츠 기사가 아니라면 신문의 스포츠면은 건너뛰고, 고등학교 1학년을 때려치운 뒤 여지껏 100m 달리기도 한번 해본 적이 없는 나는 스포츠로 화제가 옮겨붙자 이내 나른해지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찌부둥한 눈을 뜨자마자 전날 밤의 화제였던 스포츠가 다시 되살아났고, 천장을 쳐다보며 나와 스포츠의 관계를 생각해 보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와 스포츠 사이에는 어떤 사연이 있었고, 그 스포츠란 대체 무엇이었던가?

초등학교 때까지는 또래 아이들과 야구나 축구를 즐겼던 기억이 나는 걸로 봐서 스포츠와 제법 인연이 있었던 것 같은데, 사춘기를 지나면서부터 나는 아예 스포츠와 관계를 끊고 만 경우다. 종합해보니, 중학교 때 학교 대표로 스케이트 대회에 한번 출전해서 결승점 앞에서 넘어졌던 일, 대학 시절 하프코트 농구 3분을 뛰고 하늘이 노래져 그만두었던 일, 프로야구를 담당했던 선배기자를 따라 야구장에 한번 놀러갔던 일, 이런 정도가 스포츠와 맺었던 인연의 전부라 할 만하다. 스포츠에 대한 의지 같은 게 하나 있다면, 죽기 전에 마라톤 풀코스를 한번 신나게 달려 보았으면 하는 꿈같은 생각을 해왔던 게 있고.

스포츠맨들과 스포츠팬들에게는 매 맞을 소리지만, 고백건대 지금껏 나는 스포츠가 늘 불쾌한 정치의 앞잡이 노릇을 해왔다는 편견 탓으로 스포츠를 적당히 무시하거나 빈정거리는 대상으로만 여겨왔다. 몸을 움직이는 걸 달갑게 여기지 않는 유교주의적 폐습 같은 것에 물들어왔는지도 모르겠고.

그러다가 궁금해졌다. 내친김에 ‘아시아에서 스포츠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쪽으로 화제를 옮겨본 것이다. 결국 <아시아네트워크>의 필자들과 궁리를 시작했고, ‘스포츠의 정치경제학’이라는 그럴듯한 제목이 붙자 “한번 해볼 만한 주제다”라는 대답들이 돌아왔다.

필자들은 새로운 영역에 대한 호기심이 컸던 만큼 부담감도 컸다고 실토해왔다. 그동안 스포츠면은 대개 경기 중심의 뉴스가 큰 비중을 차지했고, 스포츠 칼럼도 주로 경기 내적인 부분을 다루어왔던 터라, 아시아 전체를 스포츠라는 단위로 그것도 정치적인 시각으로 조합해 본다는 게 쉬운 일일 턱이 없었던 탓이다.

처절하게 착취당한 시민대표, 스포츠맨들

이번 기사를 자세히 읽은 독자들이라면, 그야말로 무슨 범죄보고서를 받아든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스포츠의 이름 아래, 목숨을 건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경쟁도, 도박과 부패로 얼룩진 상업주의도, 정치적 도구로 전락한 선동주의도, 모두 아시아의 험상궂은 자화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대가들은 스포츠가 지닌 역동적인 기운을 노략질용 펌프로 활용했고, 국가이기주의의 앞잡이들은 스포츠를 침략의 총칼로 변모시켰고, 부정과 부패는 스포츠의 온전한 기능마저 마비시켜 버린 것이, 바로 아시아 스포츠의 현실이었다.

그래서 스포츠를 향유할 아시아 시민들의 고유한 자유는 설 땅을 잃어 버렸다. 올림픽도 월드컵도 또 아시안게임도 모두, 우리의 것이 아닌 그들의 잔치가 되고 말았다.

고결한 땀과 눈물을 뿌린 선수들은 처절하게 착취당한 아시아 시민들의 대표였다. 이번주 <아시아네트워크>는 스포츠에서 소외당한 시민들에게, 스포츠를 사랑하는 시민들에게 ‘아시아 스포츠의 정치경제학’을 올린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아시아네트워크 팀장

asianetwork@news.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