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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킥복싱의 ‘사기도박’ 강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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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3-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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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스포츠 - 타이

승부조작·선수매수로 부패한 타이의 상징처럼 굳어져… 축구도박도 상상 초월

사진/ 프라윗 로자나프룩(Pravit Rojanapruk), <더 네이션> 기자.
스포츠와 사기도박, 타이복싱과 축구를 놓고 보면 가히 대중적인 주제다. 월드컵 같은 큰 판에는 20억바트(6천억원)나 되는 돈이 걸린다고 할 정도다. 타이의 스포츠 열기는 시민들의 핏발 선 눈에서부터 읽을 만하다. 그런데 요즘 언론에서는 이 유명한 주제를 별로 다루지 않는다. 내기와 판돈이 오가는 이 부정한 놀음을 스포츠의 한 과정처럼 인정해버린 탓일까.

시합 전 격리되는 복싱선수들


사진/ 타이의 국기처럼 여겨져온 킥복싱. 불법 사기도박으로 얼룩진 스포츠판의 대표주자다. (GAMMA)
타이복싱부터 뜯어보자. 타이복싱은 도박꾼뿐만 아니라 선량한 관중들 사이에도 수세기 동안 타이의 국기처럼 여겨져왔고, 방콕의 룸피니와 라즈담넌에 자리잡은 대형 경기장의 혈투는 매주 일요일 오후 어김없이 텔레비전을 통해 생중계되면서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어 놓는다. 신문과 잡지들도 뒤질세라, 거대한 지면을 아낌없이 바치고 있다. 돈이 흘러 다니는 탓이다.

그렇다면 이 타이복싱 도박판은 어떻게 돌아갈까? 모든 도박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현행법을 따돌리기 위해 친구들 사이의 입과 입을 통하고, 주로 전화를 이용해서 내기판을 벌이는데, 일부 도박조직은 참여자들의 신분증 복사를 요구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거금을 잃고 도망치는 이들을 제압하기 위한 조처란다.

내기는 누가 이기고 지는가라는 가장 초보적인 단계에서부터, 판정승이 될지 KO승이 될지를 따지는 단계, 또 몇회에 판가름이 날지를 가리는 단계 그리고 심지어는 발에 맞아 꼬꾸라질 것인지 주먹에 맞아 뻗을 것인지를 가리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벌어진다. 이쯤 되면 확률은 1:50, 1:100, 1:500, 1:1000으로 점점 낮아지고, 예측불능의 사태가 벌어지면 일확천금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선다.

여기서 전통적으로 문제가 되어왔던 것이 이른바 ‘승부조작’이다. 이러다 보니 큰 경기의 복서들은 시합 몇주 전부터 삼엄한 경호 아래 격리되곤 한다. 물론 전문도박조직들은 양쪽 선수를 매수하기 위해 혈안이 되고, 이런 과정에 갖은 협박과 금전공세가 난무해왔다. 만약 도박판을 주도한 인물이 결과를 잘못 내거나 또 배당금의 지불을 거절이라도 할라치면 총잡이들이 나타나 난장판을 만들어버리기도 했다.

반대로 도박개장꾼들도 불법 수금원들과 총잡이들을 고용해서 도망치는 이들을 사냥해왔다. 경찰들은 대개 타이복싱판에서 벌어지는 불법 사기도박을 눈감아왔다. 경찰이 도박판에 고용되어 뒷돈을 챙겨왔다는 사실이 전혀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아닐 정도다. 타이복싱은 이렇게 불법 사기도박으로 얼룩진 스포츠판을 대변할 뿐만 아니라, 부패한 타이사회의 상징처럼 우뚝 서 있다.

“스포츠도박 합법화” 폭발적 논란

축구는 어떤가? 이건 타이복싱과 달리 제법 배웠고 돈깨나 있다고 자부하는 중산층 사이에 맹위를 떨치는 종목이다. 또 부패지수에서도 조금 차이는 난다. 국내팀의 경기보다는, 가령 영국 프로축구판을 놓고 내기를 걸거나, 다가온 한국과 일본에서 벌어질 월드컵 같은 국제경기를 놓고 벌이는 도박이다보니 직접적인 승부조작이 난무하는 타이복싱에 비길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렇더라도 판돈의 경우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으로 알려져왔다. 특히 영국의 에프에이컵과 프리미어리그는 타이뿐만 아니라 홍콩의 도박꾼들도 열광하는 대상인데, 심지어 막대한 자금을 앞세운 타이와 홍콩의 신디케이트들이 승부에 영향을 끼치려고 한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실용주의자를 자처하는 한 정치가가 “차라리 스포츠도박을 합법화시켜 세금이라도 더 거두자”고 주장해 폭발적인 논란을 빚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타이의 스포츠도박에 대한 시민들의 일반적인 감상은 어떨까? “제기랄, 거저 스포츠를 놓고 우리는 즐길 뿐인데, 웬 잡소리들이….” 적어도 자신들이 승리자 쪽에 있는 한 아무것도 문제될 게 없다는 듯하다. 이래서 타이에서 스포츠를 말한다는 것은 좀 부끄러운 주제가 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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