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스포츠 - 일본
스포츠로 새로운 일본 이미지 창조… 2002 월드컵은 신군국주의 부활의 신호탄인가
메이지유신 때부터 서양을 따라잡기 위한 일본의 열망은 시작되었고, 이른바 부국강병정책의 일환으로 스포츠도 크게 장려했던 모양이다. 특히 전통무예인 검도와 유도를 확산했고 북유럽 의사를 통해 서양의 체조도 이 무렵 전파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스포츠를 통해 강한 군대를 창조하고 자본주의의 발판을 닦아 추후 아시아 침략을 준비했던 셈이다.
아, 그 이름 역도산!
그러나 2차 세계대전에 패한 뒤 일본은 모든 고급정보를 점령자 미군에 넘겨주며 생존을 모색했고, 이어지는 한국전쟁을 계기로 ‘조선특수’를 만나면서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새로운 자본주의 국제질서에 편입당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정치가들은 텔레비전을 통해 반전·반정부 기운을 잠재우는 우민화에 성공했고, 그 텔레비전의 꽃들로 장식했던 것이 스포츠였다.
내가 6살 때 처음으로 이 텔레비전이란 것을 보았는데, 당시 도쿄의 한 신사 주변에 차려놓았던 대중용 텔레비전 앞에 구름처럼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처음으로 스모 선수에서 프로레슬러로 변신한 슈퍼스타 리키도우잔이 미국 챔피언을 무찌르는 걸 텔레비전에서 보았다. 적인 미국 선수를 제압하는 리키도우잔 앞에서 패전국 일본 시민들은 열광했고, 그이를 통한 대리복수전이야말로 유일한 희망이 아니었던가 싶다. 그러나 당시 나는 일반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리키도우잔이 북한 국적을 지닌 역도산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고, 또 그이가 인종차별 탓으로 스모의 최고 경지에 오를 수 없어서 프로레슬러로 변신했다는 사연도 몰랐다.
어쨌든 그 무렵을 회상해보면, 가히 스포츠 홍수시대라 할 만큼 난리를 피웠다. 전쟁을 선동했던 우익신문 요미우리가 니폰TV를 만들어 전국민을 야구에 미치도록 만든 것도 바로 그 무렵의 일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일본은 1960년 미-일안보조약 비준을 놓고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기를 맞았고, 집권 자민당은 정치·사회적 난기류를 조종하기 위해 이른바 국민체육대회를 이용했다. 그 즈음 특히 야구에서 수많은 슈퍼스타가 등장했던 기억이 난다. 나가시마, 오우(중국계)에다 가네다와 하리모토라는 두명의 한국계를 비롯해 불세출의 야구 영웅들이 나타나 그야말로 시민들의 감각을 마비시켜 놓았다.
이렇듯 2차대전에서 아시아 시민들의 피를 빨고,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통에 살아난 일본은 텔레비전과 스포츠를 통해 악마의 얼굴을 지우며 새로운 사회적 이미지를 창조해 나갔다. 깨끗한 일본, 귀족스런 스포츠, 이런 것들이 새로 주입된 일본상이었고, 적당한 성공을 거둬 나갔다. 그로부터 스모, 프로레슬링, 야구, 마라톤, 배구, 수영, 탁구 같은 스포츠들이 새로운 일본 이미지 창조의 전위대 노릇을 하며 서서히 국제사회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가장 불명예스러운 행사, 도쿄올림픽
그리고 일본의 스포츠는 도쿄올림픽을 통해 만개했으나, 인류 스포츠사에 가장 불명예스런 행사로 기록되어 마땅한 사건으로, 아시아인의 가슴을 다시 한번 후벼파고 말았다. 일본은 도쿄올림픽을 통해 2차대전의 범죄행위에 대한 국제적인 면죄부를 받은 셈이지만,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민사회에는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일본의 전쟁 범죄행위가 피눈물로 맺혀 있다. 진실한 사죄 한번 없었고, 일본군이 저지른 성노예 문제도 징용 문제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피폭 외국인- 주로 한국인- 희생자 문제도 또 전쟁배상 문제도, 어느 것 하나 말끔히 풀어진 것 없이 그렇게 세월만 흘러갔고, 그 세월은 올림픽과 스포츠의 광란 아래 고스란히 묻히고 말았다.
이렇게 스포츠는 전후 일본의 정치판을 지탱한 버팀목으로 전락했고, 스포츠는 수치심 없는 경제대국 일본의 자위도구로 타락했다. 그리고 이제 또, 팽팽한 긴장이 잠복해 있는 한-일전선의 새로운 정치적 계절을 예고하고 있다. 스포츠의 이름 아래.
자, 월드컵은 또 어떤 형태로 일본 정치판을 위해 봉사할 것인지 눈여겨 보기로 하자. 월드컵을 바라보는 내게는 일본 신군국주의 부활의 신호탄 같은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역사를 수레바퀴에 비유해 왔으니.

사진/ 나오키 마부치(Naoki Mabuchi). 전 카메라맨·종군기자

사진/ 스모선수에서 프로레슬러로 변신하여 미국 챔피언을 꺾었던 리키도잔. 그의 원래 이름은 역도산이었다. (한겨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