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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페니히와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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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3-0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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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사람들은 담뱃불을 붙이기 위해 성냥을 하나 켜더라도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나 켠다고 우리는 배웠다. 1996년 벽두 근검과 절약의 나라, 독일 땅에서 처음 유학생활을 시작할 무렵 우리 부부의 각오도 비장하기 짝이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독일에서 처음 만난 유학생 선배는 “드디어 페니히(2001년까지 사용된 독일 화폐 중 가치가 가장 작은 동전으로 1페니히는 약 6원에 해당한다)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말로 우리의 전의에 불을 지폈다.

일러스트레이션/ 설은영
서울생활에서 산전수전 다 겪어온 사람에게 뭐 그리 새로울 것도 없으련만 슈퍼마켓에만 들어서면 왜 그리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던지…. 생활비와 전쟁을 선포하고도 솟구치는 구매욕에 겁나던 시절이었다. 배낭 하나 둘러메고 이민가방 하나 옆에 끼고서, “공부하러 가지 살림하러 가는 것이 아니다”라고 큰소리 뻥뻥 치고 한국 땅을 떠났던 나는, 사람이 목숨을 부지하려면 얼마나 자질구레한 물건에까지 의존해야 하는지 절실히 느꼈다. 냄비, 프라이팬, 쌀, 생수…. 우리 부부가 가슴 한 아름 담아들고도 모자라 옆구리에 끼고 그 넓은 대형슈퍼를 휘젓고 다닐 때면 늘 독일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와 꽂혔다. 처음에는 동양인이라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했으나 그렇다고 하기엔 그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왜 그럴까? 우리는 단지 슈퍼마켓 내부에서 장보는 동안 이용하도록 되어 있는 카터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카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1마르크짜리(약 600원에 해당) 동전을 넣어야만 했고, 우린 이 돈을 아끼면 한달이면 얼마고, 다음에 어딘가에 요긴하게 써야지라는 장기적 계획까지 세워둔 터였다. 결코 호의적으로는 느껴지지 않았던 독일인들의 눈빛이 점점 더 우리를 괴롭히면서 우리는 급기야 그들을 원망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독일인들이 알뜰하다는 말은 다 새빨간 거짓말이야. 그까짓 빵 한 봉지, 우유 한통을 사면서까지 저렇게 카터를 이용해야만 하나?” 그렇게 두달이 흘렀을 무렵 우리는 보지 말아야 할 광경을, 아니면 진작에 봐야만 했을 그 광경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물건이 비워진 카터를 제자리에 반환하면 그 속에 있던 1마르크 동전을 고스란히 되찾는 것이 아닌가!

이후 대학에 입학하면서 독일 대학생들과 부엌과 거실을 공유하는 공동주거 형태의 기숙사에 거주할 때의 일이다. 일정금액의 생활비를 모아서 기본식료품, 생필품을 공동으로 구매하여 사용하고 화장실, 욕실 청소는 물론 설거지까지도 계획표에 의해 분담했다. 내 차례가 돌아올 때면 행여나 흠이라도 잡힐까 청결에 완벽을 기하며 지내던 어느날, 하마터면 독일에 입국한 이후 먹었던 모든 음식들이 한번에 솟구칠 뻔했다. 접시를 흐르는 물에 마지막으로 헹구던 나를 환경파괴범인 양 몰아세우며 한수 가르쳐준 그들의 설거지법 때문이었다. 이른바 ‘그들식’ 설거지는 세제를 넣은 물에 그릇을 넣고 수세미는커녕 손잡이가 달린 솔로 살살 문지르고, 옆에 받아놓은 물에 한번 넣었다 건지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어린 시절 충격으로 다가왔던 포장마차 떡볶이 그릇 설거지보다 한술 더 뜨는 수준 아닌가. 그 이후로 난 그들에게 적발될까 숨죽이며 밥그릇을 흐르는 물에 헹구며 늘 생각했다. “지독한 놈들. 그래 아껴야 잘살겠지.”

책으로 보는 세계 ㅣ<러시아에 학자가 필요한가?>

러시아 학문의 위기

러시아 현대 개혁사가 학문, 교육 및 학자의 영역에 남긴 상흔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 답하면서 <러시아에 학자가 필요한가?>(A.V. 유레비치, I.P. 차펜코 공저)는 현대 러시아 개혁사가 남긴 폐해의 가장 큰 희생양이 학문분야라고 지적한다. 저자들은 이를 러시아 학문의 물질적 위기, 심리적 위기 및 기능적 위기로 나누어 위기의 총체성을 고발하고 있다.

물질적 위기의 징후들로 저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은 학자 수의 현저한 감소, 고등 실업자군 문제, 현직 학문종사자들의 심각한 저임금 현상이다. 국가재정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러시아 학문의 육성문제에서 위기의 근본원인은 국가재정의 빈약으로 요약되고 있다. 각종 통계자료를 인용, 저자들이 상징적으로 내놓고 있는 분석에 의하면 오늘날 국가재정에서 학문 육성의 몫으로 할당된 금액은 보드카 소비와 같은 비필수품 구매에 1인당 책정된 예산의 3분의 1 정도에도 못 미치는 대략 5달러 선의 형편없는 금액이다. 그 결과 현대 러시아사회에서 학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가장 빈곤한 계층의 일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고자 학자들은 죽어가는 러시아 학문을 부흥하고 자신의 생존조건을 확보하려고 학문 이외의 타 영역에 원조를 요청해왔다. 첫 번째 원조요청 대상은 해외자본에 근거한 각종 재단이다. 저자들은 러시아 학문이 해외자본과의 관계에서 학자들의 러시아 학문살리기 시도가 역으로 러시아 학문의 파괴를 재촉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 첫째 원인은 학문연구보다 보조금을 타내기 위해 할애하는 시간소모가 막대하다는 것이다. 둘째는 이른바 ‘두뇌유출’로 불리는 러시아 학자들의 해외이주 현상이다. ‘두뇌유출’로 러시아가 입은 손해는 얼마일까? 인용된 러시아 국내통계에 따르면 학자 1인의 해외유출로 러시아가 입는 손실은 평균 30만달러 선에 이른다고 한다.

정치계, 관계는 학자들이 변신 혹은 동업을 기대하는 매력적인 분야이다. 저자들이 학문과 정치계와의 관련성 속에서 가장 우려를 갖고 분석하고 있는 대상은 학문의 덤핑판매이다. 친정부 성향의 연구소에 많은 연구 인력이 종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이 양산하고 있는 학문적 지식이란 결국 유사학문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최근에 정치인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져왔던 정계인사의 단기 박사학위 수료와 같은 ‘덤핑구매’도 문제다. 저자들은 국가차원의 대대적이고 근본적인 재정지원 없이 임기응변적 재정 끌어들이기 조치로는 러시아의 학문 부흥이 요원하다고 결론내린다.

상트페테르부르크=박현봉 통신원 parkhb_spb@yahoo.com



베를린=강정수 통신원 jskang@web.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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