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원 NG 리포트
스물네살 나이에 한국을 떠나 브라질로 오면서 짐보따리에 담아온 것 중에는 눈이 깊숙하고 얼굴 윤곽이 뚜렷한 서양남자와 멋진 연애사건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은밀한 기대와 환상이 있었다. 결국에는 두루뭉술한 얼굴에 동양인 평균보다 작은 눈을 한 토종 한국남자와 결혼해 살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와서는 서양남자라면 그냥 준대도 별로 탐탁지 않을 것 같은데 그때는 그랬다. 사춘기 시절 넋을 잃고 읽어치우던 순정만화와 가슴 졸이며 보던 할리우드영화의 영향이었다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다.
영화배우처럼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인디언 혈통이 섞인 듯한 까무잡잡한 얼굴이 적어도 내 눈에는 섹시하게 보였던 브라질 남자친구가 한명 있었다. 하루는 같이 앉아서 빵에 바르고 얹을 것들을 늘어놓고 간식을 먹던 참이었다. 무심코 사용하던 포크를 마요네즈 병 안에 넣었더니 이 친구가 뜨악한 얼굴을 하는 거였다. “왜 네 입에 넣었던 걸 같이 먹는 음식에 집어넣느냐”면서 정떨어진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먹는 일을 가지고 사람을 무안하게 만드나 싶어서 정작 상대방에게 정이 떨어진 건 나였다.
그 일 때문만은 아니었고 이런저런 다른 사연들로 인해 그 브라질 총각과의 로맨스는 몇달 못 가 종을 쳤다. 새삼 그 해묵은 일을 떠올리는 건 먹는 일을 둘러싸고 이루어지는 싫어하고 좋아하는 느낌, 거부와 수용의 모양새가 얼마나 다른지를 말하고 싶어서다.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에게는 신발을 벗고 책상다리로 밥상에 앉는 것이 제일 편하고 좋은 밥 먹는 자세다. 특히 집안에서 신발을 신고 돌아다닌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브라질 사람들에게 식구가 아닌 남과 양말 바람으로 마주앉아 밥 먹는 것은 고역스러운 일이다. “남의 집에 가서 신발을 벗는단 말인가요? 구두를 벗으면 발에서 냄새나잖아요. 그런데 신발을 벗고 그것도 방바닥에 앉아서 밥을 먹는다고요?”라는 말도 들어봤다.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날 때>를 보면 여주인공이 식당에 갈 때마다 샐러드 양념을 요렇게 저렇게 해달라는 둥 시시콜콜 세부적으로 주문을 하고 남자주인공이 그런 모습을 시큰둥하게 바라보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속 샐리만큼은 아니지만 밥을 사먹을 때 ‘내 먹을 음식은 이렇게 해달라’는 내용의 주문을 덧붙이는 건 한국사람들에게서는 보기 힘들고 브라질 사람들 사이에서는 흔한 일이다. 아무리 허름한 식당에서 값싼 음식을 시켜 먹을지라도 ‘내 돈 주고 밥을 사먹는 일’에 따라붙는 당연한 권리다.
가끔 친정 나들이 삼아 한국을 방문하면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과 같이 밥 먹으러 가곤 한다. 한번은 한정식 집을 갔는데 그곳은 코스식으로 반찬 음식을 조금씩 날라서 주다가 마지막에 밥과 국을 주는 곳이었다. 내 개인 취향으로는 한국 음식은 처음부터 밥과 국과 반찬을 다같이 늘어놓고 먹는 게 좋다. 우리 상은 한꺼번에 봐달라고 했더니, ‘우리 식당에서는 그렇게 안 하는데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대표적인 서비스 산업인 외식업에서도 ‘손님을 왕처럼’ 모시지는 못할지언정 ‘해주는 대로 먹어라’의 심성이 깔려 있는 것 같다고 느낀 건 나의 지나친 비약이었을까.
상파울루=오진영 통신원 ohnong@ig.com.br

일러스트레이션/ 설은영
책으로 보는 세계 l <자유에 대한 공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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