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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도둑질보단 납치가 짭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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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2-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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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간에 합의보는 브라질판 ‘번개 납치’ 성행… 불평등과 부패가 낳은 높은 범죄율

요즘 ‘번개’라고 하면 한국 사람들은 ‘영판 모르는 사이의 남녀가 채팅이나 전화방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 일종의 블라인드 데이트’를 연상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브라질 사람들에게 ‘번개’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연상시키는 건 ‘길거리 신호대기 중이나 주차장 안에서 갑자기 총을 들이대고 납치해서 현금인출기로 데려가거나 식구들에게 연락해 돈을 가져오게 하는, 24시간을 넘기지 않고 합의를 보는 납치범죄’이다.

시장까지 납치·살해

사진/ 빈민가를 수색하는 브라질 경찰. 범죄의 가장 큰 원인은 극단적인 빈부격차다.
납치 대상자를 미리 점찍어놓고 은신처를 마련하는 등 치밀한 범행계획을 세우고 엄청난 목돈을 요구하며 장기간을 끄는 방식의, 고전적인 스타일의 납치도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아울러 ‘통장에 못해도 돈 100만원은 있을 것 같은’ 중산층 시민을 대상으로 잽싸게 해치우는 ‘번개 납치’가 갈수록 극성을 부리고 있다.


상파울루 같은 대도시에서는 차를 몰고 다니면서 거리에 주차할 일이 있을 때 아무도 카스테레오를 차 안에 놔두지 않는다. 반드시 꺼내서 들고 다니는 것이 습관이 된 지 오래다. 최근 들어 카스테레오 좀도둑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시시하게 카오디오나 떼어서 파는 것보다 사람을 잡아가는 게 수입이 좋기 때문에 번개 납치쪽으로 종목을 변경하는 이들이 많다.

지난 1월19일에는 상파울루 인근의 공단도시인 산토 안드레의 시장이 납치당했다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해서 브라질 전국을 충격에 몰아넣었다. 발생한 지 한달이 넘은 지금까지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이 사건이 일으켰던 파장은 엄청났다. 날로 대담해지는 범죄집단이 이제는 공권력과 정부 행정력을 공공연히 무시하고 우롱하고 있다는 위협이었다. 카르도수 대통령과 룰라 노동자당 대통령 후보가 만나서 손을 맞잡고 ‘범죄와의 전쟁’에 여야 구별없이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는 시민단체의 항의농성은 물론이고 검·경찰과 사법부의 고위층에서 심각한 자성과 개혁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산토 안드레 시장 피살사건의 여파가 가시기 전인 2월 초에는 53일간 억류돼 있던 한 사업가가 구출되면서 범죄 전모가 밝혀졌다. 콜롬비아와 칠레에 근거지를 둔 게릴라단이 브라질로 원정을 와서 유명한 광고회사의 사장을 납치해서 1천만달러의 몸값을 요구했던 사건이었다.

상파울루 대도시 지역 거주민이 범죄사건에 의해 피살될 확률은 유럽 국가에 비해 40배가 높다는 통계가 있다. 상파울루대학 공중보건의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선진국의 경우 사망원인 중 범죄 및 교통사고 등의 외부 원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5%인데 브라질의 경우는 15%나 된다.

내일은 없는 빈자들의 선택

사진/ 지난 2월 18일 브라질 카란지루 교도소 폭동 진압 장면. 사법시스템의 비능률성이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렇듯 높은 범죄율을 가져오는 사회적 원인을 들여다보면 아주 평범하고 교과서적이다. 바로 불평등과 빈곤과 무능한 정치가 꼬리를 물고 계속되기 때문이다. 국가 정책으로부터 버림받은 듯 내팽개쳐져 있는 빈곤 인구의 상황은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이다. 경찰과 검찰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무능력과 부패에 빠져 예산만 낭비하는 골칫덩어리다. 발생하는 범죄사건 100건 가운데 혐의자를 잡아들이는 비율이 24건에 불과하고 살인사건의 경우 범인이 붙잡히는 비율이 2.5%에 머문다. 사법 시스템도 이에 못지않게 비능률적으로 돌아간다. 일반 살인사건 범죄재판이 법원에 계류되는 기간이 10년까지 걸린다. 교도소에서 형 집행을 끝까지 사는 경우는 전체의 1%에 불과하다. 갖가지 방법으로 가석방을 얻어내거나 탈옥하기 때문이다.

지난 2월18일에는 바로 1년 전에 대규모 폭동으로 상파울루주의 29개 교도소를 마비시켜 전세계 해외토픽 뉴스를 탔던 그 조직범죄단이 다시 주도권을 다투면서 연쇄 폭동을 일으켰다. 9개 교도소에서 동시 발생한 이 폭동 과정에서 수감자 17명이 사망했다. 사회의 부유층 엘리트에서부터 범죄자 수감시설인 교도소 안까지, 꼭대기부터 바닥까지 전반에 걸쳐 범죄의 위협과 파괴력에 부닥친 브라질은 지금 ‘국경은 없고 총성은 있는’ 전쟁을 겪는 중이다.

상파울루=오진영 통신원 ohnong@ig.com.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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