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이후 각종 범죄에 시달려…사법당국의 인종차별도 도를 넘었다
“에이드 무바라크”(복된 명절입니다). 오전 8시 명절 기념 아침 기도회를 마친 이들이 저마다 인사말을 나눈다. 어른들은 예쁜 옷으로 단장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대신하여 1달러짜리 지폐를 건넨다. “오늘이 명절이라는 것도 새까맣게 잊고 지냈답니다.” LA의 한 이슬람 사원에는 지난 2월22일(현지시각) 이른 아침부터 수백명의 아랍계 이민자들과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다른 지역 출신 무슬림이 모여 있었다. 9·11 이후에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험악해진 분위기 탓에 사원 예배에 오는 것조차 조심스럽던 때도 있었다. 여성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의 한 표현인 베일을 쓰고 외출하기도 조심스럽던 때가 있었다.
안부를 묻고 답답한 현실을 토로하고 명절맞이 기도를 하고 묘소를 참배하러 길을 떠난다. 이슬람 최대 명절인 ‘이둘 아드하’는 이슬람력 12월10일부터 메카를 찾는 성지순례가 절정을 이루면서 세계 곳곳의 이슬람 공동체에서 3일 동안 이어진다. 그 명절을 맞이했지만 이곳에 모인 아랍과 이슬람권 이민자들의 얼굴에는 예년과 달리 마음 한쪽에 자리한 답답함이 엿보인다. 그 긴장감의 단면은 공항이나 주요 시설을 경계중인 무장한 군경과 공항 출입시 신발을 벗어들고 검색대를 통과해야 하는 분위기에서 엿볼 수 있다.
살인, 폭행, 방화…
“전쟁이 싫고 테러가 싫어 이곳까지 정든 땅을 떠나왔는데 왜 우리가 테러리스트로 취급받아야 합니까?” 아랍계 미국인들이 9·11 이후 인종 혐오 범죄의 목표물이 되고 있다. 단지 아랍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무슬림이기에 겪고 있는 여러 형태의 인종차별과 따가운 눈초리들은 전혀 낯선 것이다. “일부 개인이 저지른 일을 두고 아랍계나 무슬림 전체를 테러 용의자로 몰고가는 것은 문제”라고 레바논계 미국인 나지 샤반(36)은 말한다. 미국 내에 불어닥친 이슬람 바로 알기 붐으로 아랍과 이슬람 관련 정규 강좌를 비롯한 세미나와 포럼 등에 수강생이 몰려드는 것은 아랍계 미국인이나 이민자들이 증오 범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인 풍경이다. 미국에서 아랍인은 누구나 테러 용의자이다. 미 연방수사국(FBI)나 미 중앙정보국(CIA) 등에서 공개하는 테러 용의자들 모두가 아랍계라는 점도 아랍계 미국인들에게 고통스런 대목이다.
아랍계 미국인 인권단체인 ‘아랍계 미국인 인종차별 반대운동’(ADC)의 자료에 의하면 9·11 이후 캘리포니아주 200여건을 비롯하여 미 전역에서 600건이 넘는 혐오 범죄가 발생했다. 아랍계와 무슬림들을 대상으로 하는 폭행과 구타, 방화와 살해 기도 등으로 최소 6명 이상 숨졌다. 적지 않은 이슬람 사원이 훼손되거나 방화되고 공격을 받았다. 그렇다고 아랍계 무슬림들만 테러에 시달린 것은 아니다. 아랍계 교회도 공격의 대상이 되기는 마찬가지이다. 아랍인 거주지들은 테러의 온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형체없는 인종 범죄의 잠재적 타깃이니 거리를 활보하는 것도 자유롭지 않다.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한 이슬람 사원은 이슬람에서 금기시하는 돼지의 피로 범벅이 됐다. 캘리포니아주 샌 가브리엘에서는 이집트계 미국인 아델 카라스(48)가 총에 맞아 사망했다. 일리노이주 시카고 교외 브리지뷰에서는 300명의 주민들이 성조기를 흔들고 “USA”를 외치며 이슬람 사원으로 행진하다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3명이 체포됐으나 부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시카고의 아랍-미국공동체센터에는 소이탄 공격이 발생했다. 팰로스 하이트 교외에서는 한 남자가 모로코계 종업원이 일하고 있던 주유소를 공격했다.
이런 피해사례를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텍사스주 덴튼에서는 이슬람 사원에 화염병을 던져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텍사스주 어빙시의 캐롤턴 이슬람센터는 최소한 6발의 총격을 받아 창문이 부서지는 등 건물 일부가 손상됐다. 뉴저지에서는 터번을 쓰고 있던 인도의 시크교도 한명이 오물과 투석 공격을 받았다. 뉴욕 헌팅튼에서는 75살의 노인이 한 쇼핑몰 주차장에서 파키스탄 여성 한명을 자동차로 들이받으려 했다. 미수에 그치자 “내 나라를 파괴한 데 대한 보복으로” 죽여버리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뉴욕 서포크카운티에서도 아랍계 주유소 직원에게 가스총으로 위협을 가한 뉴욕 출신 남자 한명이 체포됐다. 인디애나주 게리에서는 스키 마스크를 한 한 남자가 예멘계 미국인 하산 아우다가 일하고 있는 주유소에 총격을 가했다. 워싱턴 린우드에 있는 이슬람 사원은 완전히 파괴됐다. 무슬림 여성들이 머리에 쓴 히잡(스카프)을 낚아채이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이 밖에 버지니아, 오클라호마 등지에서도 아랍계 주민들이 크고 작은 인종 범죄 위협에 시달렸다.
이 과정에 아랍계 업소들이 받은 타격도 컸다. 고개 숙인 아랍계의 사회적인 활동이 심각하게 위축되면서 받은 타격과 아랍계에 대한 편견이 구매자들의 발걸음을 돌리게 한 것이다. 고용 차별도 심화되어 수백명의 아랍계가 일자리를 잃거나 직장에서 차별대우를 받아야 했다. 아랍인이라는 이유로 항공기 탑승이 거부된 사례도 60여건에 이르렀다. 더욱 힘들었던 것은 사법당국에 의한 인종차별이다.
‘보호’라는 이름의 감시
미국 사법당국에서는 아랍계에 대한 보호 명목의 감시도 직간접적으로 이뤄졌다. 일시 체류자들이나 유학생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본국이나 다른 아랍지역으로 학교를 옮겨야 했다. <뉴스위크>에 따르면 9·11 테러 이후 연행되거나 조사를 받은 아랍계 미국인들은 모두 1200여명. 이중 알 카에다와의 관련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은 12명에 불과했다. 미 법무부는 불법체류 아랍인을 색출하기 위한 수색에 착수했다. “테러분자가 되기에 적합한 인물을 우선적으로 추방”하려는 의도였다. 이미 최근 2년 동안 중동지역에서 합법적으로 입국한 5천여명의 아랍인 명단을 확보해 이들을 대상으로 테러 관련 여부를 가리는 심문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FBI나 이민귀화국(INS)은 9·11 테러 이후 전국 200여개 대학을 돌며 아랍 학생들의 전공, 거주지와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견해 등을 청취했다.
말이 아랍계일 뿐이지 미국에 귀화해 살고 있는 미국인. 아랍계 미국인으로서 새로운 조국 미국에 대한 애국심과 아랍인으로서의 민족적 긍지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는 큰 문제이다. 미국의 정책에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바라는 40개 이상의 아랍계 미국인 단체들이 전국적인 아랍계 미국인 협의기구 결성을 추진하고 있다. 아랍계로 부시 행정부의 최고위직에 올라 있는 레바논계 미국인 아브라함 스펜서 에너지장관은 “관용과 수용은 의무일 뿐만 아니라 우리 자유의 특징”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적지 않은 아랍계 미국인들이나 미국 이민자들은 전쟁과 테러를 피해 조국을 등진 이들이다. 이스라엘의 독립을 전후하여 중동지역에 긴장이 고조되면서 미국 땅을 찾은 적지 않은 아랍계 미국인들의 선조들과 그 후손들을 포함하여 대략 600만명 정도의 아랍계가 미국에 살고 있다. 그나마 9·11 직후 급격하게 확산되던 반아랍 분위기가 최근 가라앉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랍계와 무슬림을 향한 증오 범죄들도 모든 미국인들이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일부의 극단적인 행동일 뿐이다.” 레바논계 미국인 칼리데(36)는 앞으로의 상황을 낙관한다. 분명한 것은 모든 아랍인이 테러범이 아니듯, 모든 미국인이 인종주의자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로스앤젤레스=김동문 통신원 yahiya@hanmail.net

사진/ 아버지와 함께 이슬람 사원 기도회에 참여하여 아랍어 설교에 주목하고 있는 파키스탄 꼬마들. 미국 땅에서 태어나자랐기에 영어가 더 익숙한 세대이다.

사진/ 이드 알아드하 명절을 맞이하여 기도하고 있는 무슬림들. 국적은 달라도 돈독한 신앙심만은 똑같다.

사진/ 명절을 맞아 묘소를 찾아 코란을 읽고 기도하며 고인을 추모하는 무슬림들. 9·11이후 아랍인들의 명절은 예전같이 활기를 띠지 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