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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대륙을 방황하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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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2-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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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속히 번지고 있는 중국 조기유학 열풍…베이징 유흥가를 헤매는 한국 아이들의 실태

중국의 명문대학이 밀집되어 있는 베이징 서북쪽에 자리한 하이뎬취(海淀區)에 가면 한국 청소년들을 쉽게 만날 수가 있다. 최근 몇달 사이에 부쩍 늘었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들까지 한국 유학생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게다가 겨울방학을 맞아 단기 연수를 온 학생까지 더하면 ‘한국인 촌’을 방불케 한다. 미처 단기연수반에 등록하지 못한 초등학생들은 사설학원으로 밀려든다. 일부 학원에선 ‘방학특별반’을 운영하고 있는데 여기에 등록하는 학생들은 모두 한국에서 온 유학생들이다. 한국 유학생들이 가장 많이 모여사는 하이뎬취 우다커우 거리로 나가, 깨끗해 보이는 학생 차림의 아이들에게 “너 한국인이니?”라고 물으면 백이면 백 거의 틀림없다.

기숙사 안에서도 음주·흡연

사진/ 방학을 맞아 해외연수를 떠나는 학생들. (한겨레 탁기형 기자)
모 대학 부속 초등학교에 다닌다는 김모(12)양은 지난해 9월 베이징에 왔다. 이곳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닐 거라며 용감하게 홀로 조기유학을 떠나왔다. “중국말도 재미있고, 아이들도 모두 착해요.” 중국생활에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짓는 김양의 얼굴이 밝아보여 다소 안심이 되긴 했지만 왠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김양의 중국 유학은 물론 부모의 선택이었다. 더 나은 장래를 보장받기 위해 아이를 홀로 낯선 땅으로 떠나보낸 부모의 선택에 박수만을 칠 일이 아니라는 게 이곳 교민들의 의견이다.


중국이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나라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세계 각국에서 투자자들과 유학생들이 밀려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중국 또한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개방의 문을 조금씩 넓히고 있으며, 대학들은 외화획득을 위해 외국유학생들을 적극 유치하고 있다. 심지어 지난해부터 초등학생에게까지 유학비자를 내주는 등 외화벌이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유학생들에게 학비는 만만치 않다. 대학생의 경우 1년 학비가 미화 2500달러, 기숙사비와 생활비를 합하면 1년에 4천달러는 잡아야 한다. 이 금액은 중국 대학생의 5배에 달한다. 중·고등학교는 외국인 입학이 허용되는 학교가 아직 많지 않다. 대개 중국에서도 부잣집 자녀들이 다니는 사립학교에 한정되며, 학비가 대학교 수준을 훨씬 능가한다. 한 학기에 미화 1200달러에서 2100달러 수준이며, 기숙사비 등을 합하면 최소 2천달러에서 최고 4천달러 수준이다. 1년이면 최소 4천달러에서 최고 8천달러 수준이 되는 셈이다. 게다가 일부 중·고등학교에선 입학금으로 받는 기부금이 2만위안(약 300만원)을 넘어선다.

중국 학교는 자체 기숙사 시설을 완비하고 있다. 부모를 떠나 조기유학을 온 학생들은 대개 기숙사 생활을 한다. 그러나 기숙학교의 문제점은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노출되었다. 주말이 되면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간섭과 통제에서 벗어난 청소년들이 가는 곳은 당연히 술집과 노래방이다. 중고등학생이 출입하지 못하는 유흥가는 베이징의 어디에도 없다. 우다커우 거리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술집과 카페가 많다. 카페나 술집에서 만화책을 보며 밤을 새다가 아침이 되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유학생들. 10대 청소년들이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있는데도 그들에게 집으로 돌아갈 것을 경고하는 사람은 없다. 그들에겐 돌아갈 집이 없기 때문이다.

부모의 보호에서 벗어난 아이들의 무절제한 행동은 한국 학생들 전체의 이미지를 흐린다. 기숙사 안에서조차 학생들의 흡연과 음주는 공공연히 이루어진다. 심지어 혼숙을 하는 사태까지 빚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같은 무질서한 행태를 지켜보던 중국의 모 중학교에서는 부모를 동반하지 않은 유학생은 입학을 불허하겠다고 해, 많은 학생들이 집단 전학을 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홈스테이도 믿을 수 없다

사진/ 우다커우 거리를 돌아다니는 한국 청소년들. 밤이면 유흥가에서도 어렵지 않게 이들을 볼 수 있다. (한겨레 하성봉 기자)
일부 중·고등학교에선 외국인반을 따로 개설해놓고 있는데, 과반수 이상이 한국 유학생들이다. 어떤 기숙학교는 아예 한국학생반을 따로 개설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교민들 사이에서 굳이 중국에 와서 유학할 필요가 있겠냐는 반문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숙학교의 ‘오염’에 불안을 느낀 일부 한국 부모들은 홈스테이를 선호한다. 중국에 상주하고 있는 가정에 아이를 맡겨 보호를 요청한다. 특히 우다커우에 살고 있는 유학생 가정에는 최근 조기유학 온 아이를 맡고 있는 곳이 많아졌다. 자영업자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는 차오양취(朝陽區) 왕징(望京)에는 아예 전문적으로 홈스테이를 하는 한국 가정이 생겨나고 있다.

부모들은 그래도 일반 가정에서 아이를 보호하는 것이 기숙사보다는 낫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홈스테이도 ‘정서결핍’은 마찬가지다. 특히 사춘기를 겪는 청소년들은 부모조차 감당하기가 어려운데, 어떻게 생판 모르는 사람이 아이를 관리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실제 홈스테이를 하고 있는 베이징대 박사과정 김모씨는 “유학생들에게 홈스테이는 절대 권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생활비라도 벌어보자는 욕심에 시작하긴 했지만 아이들 돌보는 것이 시부모님 모시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라고 토로한다.

베이징에서 4년째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박모씨는 “한창 정서적으로 부모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아이들을 혼자 떼어놓는다는 것은 극히 위험한 일”이라며 “중국어를 얻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잃는 결과를 낳고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감추지 않았다.

중국의 교육열은 한국을 능가한다. 중학교 때부터 일류, 이류가 나뉘고, 매년 입시 때가 되면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학생들에 관한 기사가 나온다. 실제 도시 가정에선 교육비가 전체 지출의 70%를 웃돈다. 특히 중국인은 한 자녀만을 두고 있기 때문에 부모들의 교육열은 걷잡을 수 없는 불길과 같다.

이런 중국의 교육환경 속에서 한국 학생들이 그들과 똑같이 경쟁을 하기에는 취약점이 너무 많다. 실제 모 선교사 자녀 중의 하나는 공부에 대한 부담이 가중돼 뇌종양이 걸려 한국으로 돌아갔다. 간혹 한국 학생이 중국 학교에서 1, 2등을 했다는 기사가 교민신문을 통해 들려오지만 이런 경우는 특수한 사례이다. 수만명 중에 한명 나올까 말까 하는 확률에 기대를 거는 것은 아이들에게 너무 심한 고통을 주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래서 최근 조기유학의 병폐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중국어를 배우는 데 걸리는 시간 동안 중·고등학교 과정에서 배워야 하는 중요한 공부들을 놓치게 되고, 중국인들과의 경쟁에 밀리면서 자연스레 공부보다는 노는 분위기에 젖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조기유학생 경쟁력도 떨어져

유학원을 통해 조기유학을 문의하는 부모들은 중국의 명문대학에 자녀를 입학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물론 현지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닐 경우 대학 진학률은 높아진다. 그러나 대학 진학 이후의 교육은 단연코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중국 대학생들과는 물론이고, 중국어 이외의 다른 부문에서는 한국 대학생들과 비교했을 때 경쟁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 명문대학의 본과를 졸업한 한국 학생들이 한국 기업에 취직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세계적으로 ‘주가’가 올라가고 있는 중국에 대해 미리 관심을 갖고, 중국을 배우려고 하는 자세가 틀렸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중국어만을 목표로 어린 아이들을 낯선 땅으로 내몰고 있는 한국의 왜곡된 교육관은 청소년들의 앞날을 암울하게 하고 있다.

영어와 중국어를 못하면 경쟁에서 뒤질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치열한 경쟁의식이 우리 아이들의 발걸음을 계속 이국땅으로 향하게 하고 있다. 게다가 유학원과 중국인들의 상술에 편승해서 안전성과 정확성을 담보하지 못한 채 끓어오르는 ‘중국열’을 타고 있는 사람들도 만만치 않다. 이 와중에 유학원의 덤핑 사기에 걸려 갈 곳을 몰라 하는 청소년을 만나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부모들은 현지에 살고 있는 지인들에게 “알아서 잘 맡아 주십시오”라는 전화 한 통화로 자식을 맡기기도 한다. ‘꿈나무’는 정성스레 물을 주고 잘 가꾸고 보살필 때 ‘미래의 기둥’이 되는 것임을 되새겨보아야 할 때인 듯싶다.

베이징=황훈영 통신원 kkccjjh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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