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마리 안 보이는 필리핀 이슬람 반군의 인질 석방 협상… 해결의 열쇠는 빈곤문제 타결
필리핀 이슬람 반군 아부 사이야프(Abu Sayyaf)가 세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외국 여행객을 집단 납치한 데 이어, 최근 미국인 제프리(24)를 다시 인질로 억류하는 등 ‘대형 사고’를 저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반군들은 제프리가 미국 CIA에서 파견된 요원이라고 주장하며 리비아, 이라크, 중국 그리고 북한이 함께 협상에 참여하기를 요구해 국제사회에 파장이 일고 있다.
민다나오의 파장이 전세계로
아부 사이야프는 필리핀의 전통 모슬렘 조직인 모로국민해방전선(MNLF)에서 1991년 일부 급진적인 모슬렘인들이 결성한 단체이다. 이 조직은 지난 4월23일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의 인근 휴양지 시파단섬에서 필리핀 2명과 외국여행객 19명의 관광객을 납치해 필리핀 남부 최대의 섬인 민다나오 부근의 조로섬에 감금했다. 인질 중에는 부활절 휴가를 즐기던 독일, 핀란드, 프랑스인 등 서양인 19명이 포함돼 있었으며 반군은 이들의 몸값으로 240만달러를 요구하는 한편 세계무역센터 빌딩 폭파사건 연루자를 포함해 미국 교도소에 수감중인 반군 3명의 석방을 요구했다. 이에 필리핀 정부는 인질석방을 위한 협상에 나섰으나 실패로 돌아가자 즉각 민다나오에 병력을 파견해 인질구출작전에 나섰다. 하지만 게릴라전에 익숙한 반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지금까지 수십여명의 정부군 희생자만을 냈을 뿐이다.
사태는 모로국민해방전선에서 1978년 갈라져 나온 최대의 반군조직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이 가세하면서 더욱 악화됐다. 이들은 민다나오 남부도시 제너럴 산토스 시청사 등에 대한 폭탄테러를 동시다발적으로 감행, 20여명의 시민이 희생됐다. 민다나오의 일부지역은 과거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 모슬렘인을 중심으로 이슬람 독립국가를 이루고 있었다가 미국 점령이후 1946년 필리핀이 독립하면서 통합된 곳이다. 이곳은 정부의 경제적 지원이 없어 필리핀에서 가장 낙후한 지역이다. 전통적으로 가톨릭이 85%를 차지하고 있는 필리핀은 종교적 분쟁으로 인한 갈등이 계속됐다. 필리핀은 지형상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작은 섬들이 많아 반군이 활동하기에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이 작은 섬들에는 마르코스 독재에 저항했던 좌익신인민군(NPA)의 세력도 아직 남아 있고, 약 2만여명으로 추산되는 모로이슬람 해방전선 무장병력의 근거지가 되고 있다. 인질 사건이 발생한 이후 올란도 메르카도 필리핀 국방장관은 모로이슬람해방전선과 아부 사이야프 등 2개 이슬람 반군이 반정부 투쟁에 공조를 취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만약 휴전을 원한다면 먼저 무기를 버리고 인질을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인질 석방을 위한 유럽의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반군들이 억류하고 있는 인질들 중 대다수가 유럽인이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의 각국 외무장관들은 지난 4월 포르투갈에 모여 대책을 논의했고 EU 안보 및 대외정책담당 고위 대표를 인질 석방 중재를 위해 필리핀에 파견하는 방안이 검토됐다. 사태가 이즈음에 이르자 필리핀 정부는 반군과의 협상에 적극 나서면서 7월 초순부터 일부는 몸값을 치루고 석방되기도 했다. 그러나 필리핀 정부는 협상 도중에도 무력을 사용했다. 한쪽에서 협상이 진행되는 시각에 군대를 동원해 반군의 지도부에 대한 접전을 벌이고, 반군 지도부의 가족들을 일부 체포하기도 하였다. 이들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저항하는 주민들에게 총격을 가해 살상하는 충격적인 장면이 그대로 방송에 보도되면서 정부군에 대한 비난의 여론도 일었다. 협상 도중 무력을 사용하다니…
한동안 하나둘씩 인질들이 풀려나오며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다 정부군의 무리한 공격으로 다시 분위기가 경색되자 그동안 필리핀 정부에 협상권을 인정했던 서방쪽에서도 필리핀 정부의 협상력에 의심을 갖게 되었고, 지난 8월 중순부터 리비아쪽이 협상대표를 파견할 것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최근 몇주간 모슬렘 국가 리비아에서 협상대표가 파견되면서 8월26일부터 상당수 인질들이 석방돼 지금은 6명의 외국 인질들과 몇몇의 필리핀인들만이 남아 있다. 그러나 지난 8월28일 반군 기지 부근에서 미국인 제프리가 반군에 의해 인질로 억류되면서 문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번 인질사건이 4개월이 넘도록 장기화되는 데는 여러 가지 배경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모로이슬람인들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원하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필리핀의 전통적인 모슬렘조직인 모로국민해방전선은 필리핀 국민으로서 모슬렘의 전통적인 가치를 인정받기를 원하고 그들의 자치정부를 통한 경제적 지원과 평화를 바란다. 그러나 무장투쟁을 하고 있는 모로이슬람해방전선과 아부 샤이야프는 이슬람 독립국가를 주장한다. 이들이 자치정부 또는 독립국가를 주장하는 배경에는 과거 이슬람 독립국가였던 필리핀의 역사가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1946년 통합 이후 가톨릭과 이슬람간의 종교적 갈등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정부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실질적으로 받지 못한 데 대한 불만도 계속 누적돼 왔다. 특히 그동안 계속된 몇 차례의 평화협정을 통해 정부로부터 끌어낸 약속이 충실히 이행되지 않자 정부에 대한 반군쪽의 불신이 깊어지면서 무장 테러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본심’은 무엇인가
둘째, 이번 미국인 인질문제는 필리핀과 미국간의 새로운 관계를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1991년 필리핀의 클라크 공군기지와 수빅의 해군기지 등에서 미군이 철수한 이후 한동안 동남아 지역의 미국의 지위와 역할은 상당히 축소되는 듯했다. 그러나 1998년 에스트라다 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미국과의 새로운 관계를 주장하고 나섰다. 미국의 경제적인 지원과 군의 현대화를 위해 미국과 새로운 협정을 맺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필리핀 정부에 의한 이 새로운 협정이 바로 미군시찰협정(VFA)인데, 그 속에는 필리핀 전역에 7개의 훈련장을 세우는 것도 포함돼 있다. 문제는 그 중에 하나가 민다나오섬이라는 점이다. 그즈음에 민다나오섬 인근지역에는 대단위 양질의 석유가 발견됐다.
이 계획과 관련해 민다나오에서는 이번 납치사건의 진상에 대해 여러 가지 의심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부 사이야프 내부에 미국과 모종의 협력을 하고 있는 세력이 있다는 이야기다. 미국이 1991년 필리핀으로부터 철수한 이후 필리핀 정부와 이슬람 반군 사이의 내전에 개입할 명분을 찾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 내통한 아부 사이야프 세력이 미국인을 납치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근거없는 소문일 뿐이지만 이번 사태에 어떤 식으로든 미국이 개입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민다나오의 석유는 미국으로선 아주 구미당기는 것이기 때문에 납치사건 협상에 적극 개입하면서 민다나오에서 일정 정도 주도권을 장악하려 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셋째, 근본적으로 정부와 모로이슬람간에 평화와 경제발전에 대한 약속이행과 신뢰가 회복되지 않는 한 이러한 문제는 계속 재연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번 인질극은 현 대통령 에스트라다 정부 집권 2년 만에 가장 큰 타격을 주고 있다. 지난 4개월간 매일같이 이 문제를 다뤄온 이곳 현지언론들은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을 라모스 정권 시절에 약속했던 평화협정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고 있는 에스트라다에게 돌리고 있다. 최근 에스트라다 대통령은 이러한 여론을 의식한 듯 민다나오섬 다바오시를 방문해 경제지원을 약속했다. 그는 필리핀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대규모 경제적 지원이라고 연설하였으나 여론은 여전히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1978년부터 있었던 몇 차례의 약속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에스트라다, 시험대에 오르다
필리핀의 외교관계자뿐만 아니라 모로국민해방전선 지도부들 역시 이번 인질사태로 인해 이슬람의 분리독립이 이루어지리라고는 보지 않고 있다. 특히 모로국민해방전선 관련자 대다수는 필리핀 정부가 평화와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성실히 보인다면, 과격한 행동은 오히려 대중으로부터 서서히 분리돼 소수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만성적인 가난을 누가 해결해 줄 것인가이다. 전문가들은 에스트라다가 이번 인질문제를 잘 처리하고 현지 민심을 추스릴 경우 의외의 인기를 얻을 수도 있으나 그 반대일 경우는 더욱 심각한 어려움에 빠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마닐라=나효우 통신원nahyowoo@hotmail.com

(사진/필리핀은 지형상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작은 섬과 밀림이 많아 게릴라군들이 활동하기 좋은 여건을 제공하고 있다.사진은 모슬렘 잔군조직중 하나인 아부 사이야프대원들이 근거지 근처 밀림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장면)
사태는 모로국민해방전선에서 1978년 갈라져 나온 최대의 반군조직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이 가세하면서 더욱 악화됐다. 이들은 민다나오 남부도시 제너럴 산토스 시청사 등에 대한 폭탄테러를 동시다발적으로 감행, 20여명의 시민이 희생됐다. 민다나오의 일부지역은 과거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 모슬렘인을 중심으로 이슬람 독립국가를 이루고 있었다가 미국 점령이후 1946년 필리핀이 독립하면서 통합된 곳이다. 이곳은 정부의 경제적 지원이 없어 필리핀에서 가장 낙후한 지역이다. 전통적으로 가톨릭이 85%를 차지하고 있는 필리핀은 종교적 분쟁으로 인한 갈등이 계속됐다. 필리핀은 지형상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작은 섬들이 많아 반군이 활동하기에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이 작은 섬들에는 마르코스 독재에 저항했던 좌익신인민군(NPA)의 세력도 아직 남아 있고, 약 2만여명으로 추산되는 모로이슬람 해방전선 무장병력의 근거지가 되고 있다. 인질 사건이 발생한 이후 올란도 메르카도 필리핀 국방장관은 모로이슬람해방전선과 아부 사이야프 등 2개 이슬람 반군이 반정부 투쟁에 공조를 취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만약 휴전을 원한다면 먼저 무기를 버리고 인질을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인질 석방을 위한 유럽의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반군들이 억류하고 있는 인질들 중 대다수가 유럽인이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의 각국 외무장관들은 지난 4월 포르투갈에 모여 대책을 논의했고 EU 안보 및 대외정책담당 고위 대표를 인질 석방 중재를 위해 필리핀에 파견하는 방안이 검토됐다. 사태가 이즈음에 이르자 필리핀 정부는 반군과의 협상에 적극 나서면서 7월 초순부터 일부는 몸값을 치루고 석방되기도 했다. 그러나 필리핀 정부는 협상 도중에도 무력을 사용했다. 한쪽에서 협상이 진행되는 시각에 군대를 동원해 반군의 지도부에 대한 접전을 벌이고, 반군 지도부의 가족들을 일부 체포하기도 하였다. 이들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저항하는 주민들에게 총격을 가해 살상하는 충격적인 장면이 그대로 방송에 보도되면서 정부군에 대한 비난의 여론도 일었다. 협상 도중 무력을 사용하다니…

(사진/필리핀 정부는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시각에도 정부군을 투입해 반군 지도부와 접전을 벌이고 그들 가족 일부를 체포하기도 했다.이 과정에서 저항하는 주민들을 사살하는 장면이 그대로 방송에 보도되어 여론의 비난을 샀다)

(사진/인질들이 서서히 풀려나면서 점차 평화적 해결의 기미가 보였던 이번 납치극은 아부 사이야프가 미국인 제프리(오른쪽)를 납치하면서 다시 미궁으로 빠져 들어갔다.현재 반군들은 제프리가 CIA요원이라 주장하고 있다)

(사진/에스트라다현 필리핀대통령은 젊은 시절 액션영화에 출연한 배우이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