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수용한 것은 그의 승부사적 기질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REUTERS 연합뉴스
중간선거 주요 변수로 작용 그림을 더 크게 확대해본다면 11월 열리는 중간선거라는 중대 변수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중간선거 때는 대통령선거가 치러지지 않고 상·하원 의원들만 뽑기 때문에 유권자의 표심은 당장 피부에 와닿는 국내 현안에 흔들리기 쉽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더라도 중간선거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데 한계가 있는 이유다. 그러나 중간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주요 국외 현안은 국내 정치라는 프리즘을 통해 비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여당인 공화당과 경제 참모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한 것도 철강과 석탄 산업을 기반으로 하는 펜실베이니아주 하원 보궐선거를 겨냥했다는 해석이 중론이다. 2016년 대선 때 확인했던 자신의 지지층을 다시 결집시키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이란 핵합의 폐기와 중국에 대한 대규모 무역·투자 규제 등 그동안 미뤄온 대선 공약을 이행하는 데 힘을 다시 기울이려는 조짐도 보인다. 이렇게 되면 대북 제재와 압박을 위해 중국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던 기존 전략을 수정하는 게 불가피하다. 상황이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특사단이 전달한 김정은의 메시지를 읽고 북-미 정상회담을 굳이 늦출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북한 문제에서 일시적으로나마 일본과 중국을 소외시킬 위험이 있지만 동맹국들마저 당황시키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5월 정상회담 비판론자들의 주요 논거는 트럼프 대통령이 검증되지 않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만 믿고 핵보유국 북한에 국제적 위신과 정통성을 안겨주려 한다는 것이다. ‘불량국가’로 낙인찍힌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미국 대통령과 만나 악수한다면 두 나라가 동등한 핵보유국이 됐음을 국제적으로 인정해주는 셈이 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협상의 달인’임을 자처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렇게 쉽게 북한에 선물을 안겨줄 리 없다. 오히려 정상회담 자체를 협상의 지렛대로 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과거 6자회담 참여와 복귀의 대가로 미국에 양보를 요구하던 북한이 오히려 회담 성사를 위해 일정 부분 양보를 고민해야 할 수도 있다. 트럼프 깜짝쇼에 대비해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의 전격 경질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동안 틸러슨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과 불화로 인해 경질설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백악관은 정상회담 준비팀을 제대로 꾸리기 위해 서둘러 틸러슨 장관을 마이크 폼페이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 교체하기로 했다고 설명한다. 트럼프 대통령과 박자를 맞추지 않고 자신의 ‘대북정책’을 공개적으로 밝혀 질책을 받던 틸러슨 장관보다는, 대통령의 의중을 읽고 그에 맞춰 기민하게 움직이는 폼페이오 국장이 정상회담 준비팀의 리더로 더 적합하다는 판단인 것이다. 틸러슨 장관은 지난해 말 북한이 핵개발에 이미 너무 많이 투자했기 때문에 핵포기 용의를 회담의 전제조건으로 삼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트럼프 대통령도 이런 현실을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협상도 하기 전에 이렇게 패를 보인 틸러슨 장관이 ‘예측 불가성’을 협상의 핵심으로 삼는 트럼프 대통령의 눈에 곱게 보일 리 없다. 문제는 틸러슨 장관의 경질로 인해,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충동적 외교정책을 제어해왔던 ‘신중한 어른들’(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틸러슨 국무장관,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사이의 연대의 한 축이 무너지게 됐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전통적인 정상회담 준비 절차를 건너뛰고 북한과 톱다운식 협상을 하면서 보여줄 깜짝쇼와 혼란을 각오해야 할지 모른다. 김연호 존스홉킨스 국제대학원(SAIS) 한미연구소 선임연구원·《USKI 워싱턴 리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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