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밤에 바에서 놀지 마!”

396
등록 : 2002-02-06 00:00 수정 :

크게 작게

아시아 네트워크 2002 아시아의 뉴 트렌드 캄보디아

훈센 총리의 야간업소 폐쇄전쟁에 “무식자들과 당뇨병 환자들이 늘어난다”는 조롱

2002년의 유행, 참 곤혹스러운 주제다. 세상이 첨단기술을 말하고 있는 동안, 아시아의 최빈국으로 소문난 캄보디아는 봉건사회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올 한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이고, 무엇이 가장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 것인지를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게 없진 않다.

마사지홀과 사창가는 남겨두고…


야간업소 폐쇄. 지난해 말 훈센 총리의 명령에 따라 시작된 이 충격적인 현상이 올 한해 캄보디아를 달굴 주제고 따라서 시민들 사이에 가장 중요한 화젯거리가 될 것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업소 주인들과 수천명의 종사자들 그리고 야간업소를 즐겨 찾았던 사내들이 강력한 저항감을 표출하는 것으로 올 한해가 시작된데다, 그런 곳을 별로 즐기지 않는 이들 사이에도 강제폐쇄 조처에 대해서만은 동의할 수 없다는 태도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런 거부감은 가히 전국적이다. 공산주의의 부활이라고 하는 이도 있고, 독재자의 발악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다. 그럼에도 훈센 총리는 범죄를 줄이고 마약과 인신매매를 없애는 방법은 이 길뿐이라고 밝히며 강제로 야간업소를 폐쇄하기 시작했다.

여성들의 반응은? 처음부터 훈센 총리는 천사와 마귀라는 두개의 얼굴로 여성들에게 다가간 셈이다. 프놈펜의 가정주부들로부터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반면, 야간업소 여성들에게는 저주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쯤 되고 보니, 전 국민이 직·간접적으로 야간업소 폐쇄에 영향을 받고 있는 기분이다. 크메르루주 전범재판과 같은 역사적 중요성을 지닌 현안은 멀찍이 밀려나버렸다. 비정부단체들도 나섰다. ‘캄보디아 여성위기센터’가 최근 조사보고서를 통해 “100%의 업소 주인들과 종사자들이 야간업소 폐쇄명령을 일할 권리와 자유를 박탈한 잘못된 조처라 믿고 있다”며 즉각적인 명령 철회를 주장했다.

정확한 파악은 불가능하지만, 정부 통계에 따르면 프놈펜과 지방에서 각각 1053개와 3093개의 가라오케바가 철퇴를 맞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자리를 잃고 쫓겨난 종사자들은 상식적인 선에서만 보아도 수만명이 족히 넘을 것이다. 한 업소 주인인 청부아(46)는 “가라오케바에 기생하는 범죄율보다는 일반 시민들의 유일한 오락장으로의 긍정적인 기능이 더 크다”며 반발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데 이견을 달 수는 없는 실정이다. 인신매매니 마약이니 또 각종 범죄의 온상 노릇을 해온 마사지홀과 사창가는 그대로 남겨 두었기 때문이다.

다시 문 열면 탱크로 밀어버린다?

사진/ 훈센 총리는 야간업소와 전쟁을 시작했다. 가정주부들은 폭발적인 환호를 보내고 있고, 야간업소 여성들은 저주를 보내고 있다.(Puy Kea)
왜 이런 일이 갑자기 벌어졌는가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의문을 달았고 아직도 추측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내가 만난 한 정부의 고위 공직자는 자기 이름을 절대 밝히지 말 것을 신신당부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사실은 훈센 총리의 목표가 몇몇 나이트클럽이었는데, 총리 주변의 인척들이나 집권당의 인사들까지 다리를 걸치고 있어서 결국 전국적인 일제 폐쇄로 갈 수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빈대 잡으려고 초가산간 태운 꼴이 되고 말았다는 뜻이다. 일부에서는 해외 투자가들이 발길을 돌릴 것이라며 명령 철회를 요구하고 있지만, 현재 훈센 총리의 의지는 갈 데까지 간 듯한 기운이다. “절대로 명령 철회는 없다. 누구든 다시 문을 연다면 이번에는 탱크로 뭉개버릴 것이다.”

2002년 들머리부터 시작된 이 야간업소 폐쇄명령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올 한해 동안 최대의 주제가 될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볼썽사나운 설전이 거듭되면서, 희한한 유행어를 만들어내고도 있다. “가라오케바, 남성들의 천국이라면 여성들의 지옥이다.” 훈센의 이런 말이 유행어가 되었다면, 시민들의 반격적인 유행어도 만만찮다. “최근 무식자와 당뇨병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건 가라오케바의 화면에 떠오르는 노래말을 읽을 기회가 없는데다, 춤을 출 수가 없어 운동부족 탓이라는 뜻을 담은 것이다.

머리가 복잡해지는 2002년의 출발이다.


푸 키아(Puy Kea)
<교토뉴스> 프놈펜 특파원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