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적 문구로 그친 WEF 반대 시위… 실질적 변화는 장내의 ‘로비’와 협상으로
세계경제포럼(WEF)은 30여년 전에 창설되어 세계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기업가들과 정책입안자들이 참여해 당면한 경제적 문제를 논의하는 토론모임이다. 형식은 비공식적이지만 실질적으로 세계경제를 주름잡는 이들이 모여 다방면의 주제에 걸쳐 견해를 나누는 자리이기 때문에 세계경제의 향방을 좌우하는 중요한 의제들이 다루어지곤 했다. 정보기술의 발전에 따른 산업화의 방향, 국경없는 무역의 현실화 등은 과거 이 포럼의 주요한 토론의제를 이루었다. 이 포럼의 현실적 무게는 무엇보다 세계무역기구(WTO)가 이 포럼에서 최초로 제안되어 출범하게 된 것을 보아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쓸모없어진 ‘구역제도’
이 포럼은 최근 몇년간 스위스의 다보스에서 열렸으나 올해에는 뉴욕으로 개최장소를 옮겼다. 주최쪽은 평소 스위스의 다보스에서 열리던 포럼을 뉴욕으로 옮기면서 9·11 테러사건으로 침체에 빠진 뉴욕의 경제소생을 가장 큰 이유로 내세웠지만, 거세게 일어나고 있는 저항운동에 대한 고려가 개입되었다는 데에는 아무도 이견을 달지 않는다. 테러의 충격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그래서 그만큼 정부의 지도력이 효과적으로 관철되고 있는 미국과 특히 뉴욕의 주변 상황이 시위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일인당 최소 2만5천달러의 참가비를 내고 최고급 호텔에서 모여 패널토론을 벌이고 밤에는 연회를 즐기는 자본가 정치인들의 프로젝트에 대항하는 국제적 사회운동 네트워크는 브라질의 포르투알레그레에서 세계사회포럼을 개최하는 한편, WEF가 열리는 뉴욕의 한복판에서는 대규모 저항시위를 계획했다. 이 시위를 앞두고 뉴욕경찰과 시위 주최쪽이 각각 바쁘게 움직였음은 당연하다. 뉴욕경찰은 WEF를 앞두고 일말의 법질서 위반에도 강력히 대응한다는 불관용(zero-tolerance)의 원칙을 강력히 천명해오고 있었다. 언론매체들 또한 앞다투어 반WEF 시위의 잠재적 폭력성과 폭력시위에 대응하기 위한 뉴욕경찰의 준비상황을 선정적으로 보도해왔었다. 테러사건 이후 소방관들과 더불어 미국인의 “영웅”으로 치켜세워진 뉴욕경찰이 가는 길에 문제제기를 한다는 것은 이곳 분위기상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테러사건 이후 미국인들의 반테러주의 정서는 87년 KAL기 사건이나 92년 북풍사건에서 보여준 한국인들의 반북 친여당 정서 못지않기 때문이다. 시위과정에서 나타날지도 모를 충돌상황에 대한 준비는 지난해 11월부터 반WEF 시위를 조직해왔던 준비모임에서도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시위 전날 이루어졌던 한 대화에서 이번 시위의 조직을 담당해왔던 레슬리 우드는 “준비모임의 최우선 목표가 경찰과의 폭력적인 충돌 등의 돌발상황에 철저히 대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과의 ‘폭력적 충돌’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소리다. 이에 따라 조직위는 시위대를 통솔하기 위한 시위운영단과 자전거를 이용해 각지의 상황을 전달하는 연락반, 시위대의 부상치료를 위한 의료조 등 조직해왔다고 한다. 또한 시위대의 편성을 경찰과의 충돌가능성에 따라 초록색, 노란색, 그리고 빨간색 구역(zone)으로 나누어 경찰과의 충돌에 대비해왔다. 참가단체들의 ‘결의수준’에 따라 경찰과의 충돌을 절대 원치 않는 이들은 녹색 구역, 언제든지 경찰과의 충돌에 대비할 태세가 되어 있는 시위대는 빨간색 구역에 배치한다는 계획이었다. 이와 같은 구역제도는 혹시 있을지도 모를 경찰과의 충돌을 두려워하는 시위참가자들을 안심시키고 충돌이 있을 경우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난해 퀘벡에서 있었던 시위에서 처음 사용되어 좋은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이 구역제도는 뉴욕에서 전혀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경찰과의 충돌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만족했으나…
시위대가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던 센트럴 파크의 남동쪽 입구가 아닌 남서쪽 입구에는 좌파와 아나키스트 그룹들이 따로 모여 경찰과의 충돌이 우려되기도 하였으나, 시작 무렵 약간의 소동만 일으킨 채 그들 또한 공원 안쪽 길을 따라 남동쪽 입구 본대에 결합했다. 그 이후 수천의 시위대는 거리에 촘촘히 배열되어 경찰의 안내를 받으며 뉴욕의 빌딩숲 사이로 대오를 움직여나갔다. 시위대 옆으로는 과거 주된 공격의 대상이었던 GAP이나 맥도널드, 스타벅스와 같은 매장들도 지나쳐갔으나 이상할 정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과거 분노로 가득 찼던 저항시위들과 달리, 이날의 시위는 무척 평화로운 분위기를 띠었다. 시위대는 저항의 모습보다는 각양각색의 인형과 색색의 의상들로 가득 찬 축제의 대열에 더 가까웠다. 시위대열 한편에서 치어리더 차림의 아나키스트 시위대들이 운을 맞춰 슬로건을 연호하는가 하면, 옆에서는 일단의 중남미인들이 이국적인 북을 두드리면서 춤추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사거리에서 대열이 잠깐 서는 사이 거리 공연단의 즉석 연극은 군중을 모으고 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열심히 유인물을 나누어주는 활동가들의 모습도 빠지지 않았다.
다양한 시위행렬 모습만큼이나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들도 다채로웠다. 대부분 민중이 배제되는 오늘날의 세계화 추세에 대한 문제 극복을 주장하고 있었지만, 그 해결방안들은 “서로에 대한 사랑”에서부터 “공산주의 혁명”에 이르기까지 천양지차였다. 이 다양한 목소리들이 뉴욕의 빌딩숲을 메아리치는 가운데 8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던 이날의 시위는 평화적으로 전개되었고, 경찰과 별다른 충돌없이 막을 내렸다. 경찰 추산 5천명, 시위주최쪽 추산 2만명. 내심 어떤 ‘사건’을 기대하던 언론의 실망감에도 불구하고 시위대와 경찰은 모두 만족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시위대와 경찰 모두 만족감을 표시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 의미에서 2월2일 뉴욕에서 벌어진 반WEF 시위는 중요한 생각거리를 제공해준다. 무엇보다 이번 시위가 지난 99년 시애틀에서부터 불붙기 시작한 이래 그동안 프라하와 퀘벡, 제노바를 거치는 가운데 국제적으로 고조돼가던 반세계화 운동의 양상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반세계화 시위들이 기존 권위에 대한 도전을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여왔다면, 이번 뉴욕의 반WEF 시위는 철저히 경찰과의 협력 아래 ‘평화적으로’ 진행되었다는 데 특징이 있다.
문제는 이날의 평화시위를 통해 시위대가 냈던 목소리가 WEF에 참여했던 일부 비정부기구(NGO) 지도자들이나 유명인사들의 목소리만큼의 효과도 내지 못했다는 데 있다. 다양한 차이가 어우러져 빚어낸 이날 시위의 전체적인 메시지는 “모두에게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되기 위해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는 어느 소녀 참가자의 주장(<뉴욕타임스> 2월3일치)으로 요약된다.
반세계화 운동의 흡수?
거리에서의 저항이 추상적인 문구로 일반인들에게 전해지는 사이 ‘실질적인 변화’는 장내로 들어간 유력 NGO들의 ‘로비’와 협상을 통해 모색되고 있었다. 이번 회의에서 부시의 강경발언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 빈국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며, 빈곤문제에 대한 국제적 합의를 이루는 것 등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장내에서 더 효과적으로 ‘저항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거리에서의 시위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단지 이들의 협상력을 제고시키는 역할만을 할 뿐일까?
지금까지 반세계화 운동이 성공적일 수 있었다면, 그건 저항운동이 그만큼 기존 권위에 효과적으로 도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이날 뉴욕에서의 시위는 지금까지 쌓아왔던 이러한 ‘전통’과 일정 정도 단절의 양상을 띠었다. 앞으로 계속될 반세계화 운동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날의 시위를 경험하고 가졌던 씁쓸한 뒷맛- 혹시나 이번 시위가 반세계화 운동이 점차 ‘체제안으로 흡수되는’ 계기로 정리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은 여전하다.
뉴욕=김선철 통신원 jollary@yahoo.com

사진/ 뉴욕거리를 가득 메운 시위대. 우려했던 경찰과의 충돌은 없었다.(김선철 통신원)
일인당 최소 2만5천달러의 참가비를 내고 최고급 호텔에서 모여 패널토론을 벌이고 밤에는 연회를 즐기는 자본가 정치인들의 프로젝트에 대항하는 국제적 사회운동 네트워크는 브라질의 포르투알레그레에서 세계사회포럼을 개최하는 한편, WEF가 열리는 뉴욕의 한복판에서는 대규모 저항시위를 계획했다. 이 시위를 앞두고 뉴욕경찰과 시위 주최쪽이 각각 바쁘게 움직였음은 당연하다. 뉴욕경찰은 WEF를 앞두고 일말의 법질서 위반에도 강력히 대응한다는 불관용(zero-tolerance)의 원칙을 강력히 천명해오고 있었다. 언론매체들 또한 앞다투어 반WEF 시위의 잠재적 폭력성과 폭력시위에 대응하기 위한 뉴욕경찰의 준비상황을 선정적으로 보도해왔었다. 테러사건 이후 소방관들과 더불어 미국인의 “영웅”으로 치켜세워진 뉴욕경찰이 가는 길에 문제제기를 한다는 것은 이곳 분위기상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테러사건 이후 미국인들의 반테러주의 정서는 87년 KAL기 사건이나 92년 북풍사건에서 보여준 한국인들의 반북 친여당 정서 못지않기 때문이다. 시위과정에서 나타날지도 모를 충돌상황에 대한 준비는 지난해 11월부터 반WEF 시위를 조직해왔던 준비모임에서도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시위 전날 이루어졌던 한 대화에서 이번 시위의 조직을 담당해왔던 레슬리 우드는 “준비모임의 최우선 목표가 경찰과의 폭력적인 충돌 등의 돌발상황에 철저히 대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과의 ‘폭력적 충돌’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소리다. 이에 따라 조직위는 시위대를 통솔하기 위한 시위운영단과 자전거를 이용해 각지의 상황을 전달하는 연락반, 시위대의 부상치료를 위한 의료조 등 조직해왔다고 한다. 또한 시위대의 편성을 경찰과의 충돌가능성에 따라 초록색, 노란색, 그리고 빨간색 구역(zone)으로 나누어 경찰과의 충돌에 대비해왔다. 참가단체들의 ‘결의수준’에 따라 경찰과의 충돌을 절대 원치 않는 이들은 녹색 구역, 언제든지 경찰과의 충돌에 대비할 태세가 되어 있는 시위대는 빨간색 구역에 배치한다는 계획이었다. 이와 같은 구역제도는 혹시 있을지도 모를 경찰과의 충돌을 두려워하는 시위참가자들을 안심시키고 충돌이 있을 경우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난해 퀘벡에서 있었던 시위에서 처음 사용되어 좋은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이 구역제도는 뉴욕에서 전혀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경찰과의 충돌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만족했으나…

사진/ 거리의 저항은 추상적인 문구로 전해질 뿐이었다.(김선철 통신원)

사진/ 세계경제포럼의 실질적인 변화는 장내로 들어간 유력 NGO들의 '협상'으로 이뤄졌다. 반세계화 운동은 점차 체제안으로 흡수되는 걸까.(AP 연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