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세계 |두개의 포럼, 두개의 세계
시민운동 중심에서 탈피, 다양한 사회운동의 연대로 일궈낸 제2회 세계사회포럼
부시 대통령의 강경발언이 세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시점, 두개의 전혀 다른 포럼이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와 미국 뉴욕에서 개최됐다. 대안적 사회운동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세계사회포럼과 경제인, 관료 중심의 세계경제포럼은 현재 세계가 움직이는 방향을 가늠하는 나침반이다. <한겨레21>은 특히 포르투알레그레에 결집한 사회운동단체들의 여러 모습과 뉴욕 세계경제포럼 반대시위에 주목했다. 이 두개의 운동은 반세계화 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드러낸다. 저항은 저항으로 그칠 것인가. 편집자
“또다른 세상은 가능할 뿐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서 시작되었다.” ‘또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주제 아래 1월31일부터 2월5일까지 열린 제2회 세계사회포럼(WSF)에 참석한 대다수 참가자의 공통된 증언이다. 포럼의 장소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브라질의 남부 리오그란데도술주의 주도인 포르투알레그레시. 브라질 내에서 이미 참여와 연대의 도시로 알려진 이 도시는 이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 대안을 꿈꾸는 전세계 사람들에게 ‘성지’이자 ‘해방구’로 자리잡았다.
개막식 행사는 카니발 그 자체
많은 사람들이 “포르투알레그레 없이 세계사회포럼이 불가능했다”고 말할 정도로 이 도시의 정치적 위상은 독특했다. 브라질에 처음 온 대다수의 참석자는 “먼저 가난과 문맹의 나라 이미지와 전혀 달리 포르투알레그레가 유럽의 어느 도시에 비춰 손색이 없을 정도로 쾌적하고 부유하다는 사실에서 처음 놀라고 이 도시의 정부가 노동자당(PT)에 의해 13년째 운영되고 있다는 데서 두 번째로 놀랐다”고 말했다. 이른바 참여예산제로 대표되는 참여민주주의 제도는 이미 성공적인 사례로 브라질 전역과 해외에 ‘수출’되고 있으며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룰라 노동자당 당수는 “포르투알레그레를 전국으로!”를 주요 선거공약으로 제시할 정도였다.
4만여명이 참여한 개막식 행사는 남미의 카니발 자체였다. 거리는 신자유주의 반대행진의 구호와 춤, 화려한 복장과 플래카드에 담겨진 온갖 이슈와 주장으로 가득 찼다. 이러한 축제 분위기는 주와 시정부 및 노동자당의 전폭적인 지원과 협력 속에 이루어졌고 일주일 내내 이어졌다. 회의장 곳곳에서 박수, 함성, 연호가 울려퍼지고, 본회의장에는 ‘또다른 세상’에 대한 꿈을 노래하는 존 레넌의 <이매진>이 흘러나왔다. 체 게바라의 모습을 담은 사진, 포스터, 티셔츠, 배지가 전시장 곳곳에 흘러 넘치고 흥겨운 노래와 삼바 춤의 잔치가 수시로 벌어졌다.
올해에는 지난해에 비해 두배가 훨씬 넘는 1만6천명의 참석자가 120여개국, 5천여개 단체에서 참여했다. 반세계화와 관련한 전세계 사회운동의 총회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규모였다. 내용면에서도 지난해에 비해 더욱 짜임새가 있었다는 평가이다. 포럼의 프로그램에 따르면 외채, 다국적 기업, 투기자본 통제 등 조직위원회가 선정한 27개의 주제가 부의 생산과 사회적 재생산, 부의 지속가능성, 시민사회와 공공영역의 강화, 새로운 사회에서의 정치권력과 윤리라는 네 가지 큰 주제하에 배치되어 토론되었고 이 밖에도 개별 참가단체가 자발적으로 조직한 수백개의 이슈가 논의되었다. 매일 저녁에는 저명인사의 강연회가 개최됐다.
타이의 한 참석자는 “비록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한 정신질환과 명상과 같은 개인적, 내면적 문제로부터 투기자본의 통제와 지구적 공치체제(global governance)에 이르는 거대담론까지 수준과 관점이 다른 이슈가 혼재되어 혼란스러웠지만 세계화가 지닌 복잡성과 다차원성 그리고 이에 대한 사회운동의 다양한 대응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어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조직위원회는 이러한 현실을 감안하여 세계사회포럼 이름으로 최종선언문을 채택하지 않는 원칙을 정했다. 조직위원회의 관계자는 “참석자 수를 고려할 때 민주적인 방식으로 모두가 동의하는 문서를 만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다양성을 존중하는 이번 포럼의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며 “대신 27개 소주제에 대한 토론 내용을 요약한 약식보고서가 발간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반세계화 이론의 경영장
시민지원을 위한 금융거래 과세 실현운동(아탁: ATTAC) 대표인 르네 카상은 이번 포럼의 성공요인에 대해 “9·11 테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그리고 세계무역기구(WTO) 도하회의에서 합의된 뉴라운드 출범, 이웃 나라 아르헨티나의 경제위기 폭발로 이어지는 국제정세의 급박한 변화가 중요한 변수였다”고 지적하면서 이와 동시에 “반세계화 사회운동 내부에서도 이념과 전략의 차이를 부각시키기보다 최소한의 공통분모에 기반해서 조직적으로 힘을 모을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나름대로 진단했다.
한편 이번 포럼은 그동안 세계화를 둘러싸고 발전되어온 다양한 이론이 소개되고 경합하는 경연장이기도 했다. 세계화의 부메랑 효과를 지적해온 프랑스의 수잔 조지, 인도의 환경운동가 반다나 시바, 종속이론의 사미르 아민, 역사적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반체제 운동을 주장하는 에마뉘엘 월러스타인, 국가에 의한 자본통제를 주장하는 말레이시아 제3세계네트워크의 마틴 코, 내포적 산업화 전략을 제시하는 필리핀의 월든 벨로, 그리고 최근 <제국>이란 책의 공저자로 대중(multitufe) 중심의 새로운 사회운동이론을 전개한 마이클 하트 등 이름있는 사회운동 이론가들도 거의 모두 참석했다. 포럼 직전 작고한 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르디외도 참석할 예정이었다.
이중 미국의 저명한 언어학자인 노엄 촘스키는 이번 포럼에서 반세계화 운동의 ‘우상’이자 반미운동의 ‘아이콘’으로 등장했다. 그는 개막일 기자회견에서 “부시는 9·11 사태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말했지만 실질적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서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며 오히려 “부시의 아프가니스탄 전쟁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세계화 자체가 가난한 사람에 대한 전쟁이자 테러리즘이다”라며 부시 행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의 기자회견장은 전세계에서 온 기자들로 가득 찼으며 본회의 첫날 열린 그의 대중 강연장은 가장 큰 강연장으로 배치했음에도 참석자가 너무 많아 시작이 지연되기도 했다.
아프리카 가나 출신으로 세계노동총연맹(WCL)에서 일하는 클로드 아포카비(48)는 “이번 회의의 가장 큰 성과는 이제 어느 누구도 세계사회포럼을 언급하지 않고 세계화를 말할 수 없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서 “그동안 반세계화의 담론과 운동을 이른바 비정부기구(NGO)라고 불리는 하는 북반구 시민사회운동이 주도해왔는데 이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실질적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남반구의 기층사회운동, 노동운동, 진보적 정치운동 및 정당운동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제 세계사회포럼은 그동안 세계화 담론을 주도해온 세계경제포럼에 대항할 수 있는 진보적 사회운동의 경험과 이론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는 실질적인 장으로 자리잡았다.
세계사회포럼은 세계경제포럼을 염두에 두고 이름지었을 뿐만 아니라 개최날짜도 전략적으로 세계경제포럼과 같은 시기를 선택했다. 사회운동의 이른바 ‘맞불작전’이자 저항과 대안을 동시에 구사하는 ‘이중전략’인 셈이다. 포럼기간중 뉴욕에서 세계경제포럼에 반대하는 시위대의 지도자와 포르투알레그레 조직위원회 대표가 인터넷을 통한 화상회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뉴욕에서의 진행상황을 인터넷을 통해 취재하던 한 미국 기자는 “세계경제포럼이 다가오는 경제위기에 대한 우려와 ‘지나치게 많이 가진 자의 불안’으로 우울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반면 세계사회포럼은 ‘더이상 잃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여유와 희망’ 속에 축제 분위기였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구조조정 반대의 외침
사실 이번 포럼 참석자의 구성원은 과거 유엔 주도의 시민사회운동과 매우 달랐다. 참석자의 경우 NGO로 통칭되는 시민운동단체뿐만 아니라, 농민, 빈민운동 등 기층주민운동, 노동조합, 진보적 정치운동이 골고루 참석하였고 국회의원 포럼도 조직됐다. 그동안 신자유주의에 모두 반대하면서도 전략적인 측면에서 따로 움직이던 이른바 시민사회, 기층사회운동, 노동운동, 정당운동이 전략적으로 결합한 것이다.
민주노총의 윤영모 국제연대국장은 “이번 사회포럼은 이념적으로 볼 때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거대한 도전 앞에서 이른바 급진적인 진보운동이 개혁적인 시민사회운동과 서로의 이념적 차이를 넘어서서 전략적으로 연대를 맺은 소중한 성공사례”라며 한국의 시민운동과 사회운동 모두가 이러한 사례에 배울 점이 많다고 말했다.
10여명의 한국 사회운동 대표단은 민주노총, WTO 반대 국민행동본부 등의 ‘민중연대’ 소속 단체, 시민운동에서 참여연대가 참석했다. 개막식 날 행진에서 한국 참가단은 “김대중 대통령은 각성하고 노조 지도자를 석방하라”는 내용의 포스터와 “금융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반대”의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에 참여했다. 한편 금속노련의 김희준 부위원장은 2월2일 주빌리 사우스 주최로 열린 외채와 구조조정에 대한 민중재판 행사에 참여해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인한 노동자의 대량해고와 실업, 그리고 노동시장의 불안정화에 대해 증언했다. 한국 대표단은 회의장 곳곳에서 민주노총 지도자의 석방을 요구하는 서명 캠페인을 전개하여 1천여명으로부터 서명을 받았다(세계사회포럼 홈페이지 www.worldsocialforum.org).
포르투알레그레=글·사진 이성훈 통신원 almolee@yahoo.com

사진/ 포럼 개막실 날 치려진 신자유주의 반대행진. 거리는 화려한 복장과 플래카드로 가득찼다.
개막식 행사는 카니발 그 자체

사진/ "신자유주의 자체가 테러리즘이다." 노엄 촘스키의 기자회견 장면.

사진/ 체 게바라의 모습을 담은 사진. 포스터, 티셔츠, 배지가 전시장 곳곳에 흘러넘쳤다.

사진/ 포르두소 야외극장에서 치러진 개막식. 올해 포럼에는 1만6천명 정도가 참석했다.

사진/ 개막식 행진에 참가한 한국 대표단. 이들은 회의장 곳곳에서 민주노총 지도자 석방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