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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2002 아시아의 흐름을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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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2-0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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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격변 속 그들이 추구할 가치는… 경제위기 속 그들의 현실적 선택은

트렌드, 한 사회의 특별한 시점을 규정하는 현상이기도 하고 그 구성원들이 표출한 의식이기도 한 이 무형의 언어를 미리 읽어본다는 게 결코 쉬운 일 같지는 않다. 더구나 각 사회적 조건과 환경이 다른 아시아를 놓고 서로 교감할 수 있는 유행 같은 걸 꼽아본다는 일에서는 더욱 그렇다.

무샤라프가 인도·파키스탄에 끼친 영향

그럼에도 ‘아시아 네트워크’가 올해 아시아의 트렌드를 미리 내다보기로 한 건, 2002년 아시아의 흐름을 읽는 데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특히 이번 기획을 통해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의 선언적인 연두회견 내용이 적대관계에 있는 파키스탄과 인도 두 나라에서 어떤 형태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어떤 정치적 유행으로 발전할 것인지를 미리 보는 것은 아시아의 현안을 이해하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하나의 사실을 두고, 적대관계에 있는 두 사회가 받아들이는 서로 다른 형태의 ‘유행’을 본다는 건 정치적인 주제로서뿐만 아니라, 유행이 뿌리로부터 성숙해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는 차원에서도 재미를 더해준 경우다.


타이 기자가 주제로 잡은 젊은이들의 옷차림새도 일반적인 ‘패션’의 의미보다는 오히려 아시아가 지닌 세대간의 갈등이나 문제를 드러낸 좋은 보기가 되었다. 인도네시아의 ‘농담’이나 필리핀의 ‘커피숍’ 같은 내용들도 현재 아시아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적절하게 보여준다.

최근 아시아에 유행했던 현상을 둘러보면 두 가지 큰 특징을 볼 수 있다. 하나가 몇년 전부터 몰아친 아시아의 경제적 위기를 반영한 현실적인 것이었다면, 다른 하나는 아시아적 가치를 좇는 정신적인 부분을 강조한 것이었다.

첫 번째 현상은 가령 필리핀 기자가 보내온 내용과 마찬가지로 타이나 인도네시아에서도 경제위기를 맞은 중산층 시민들이 상품구매력을 잃으면서 시작된 커피숍 열풍인데, 경제적 어려움은 겪고 있지만 그래도 큰 부담없는 가격으로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고 자위할 수 있는 ‘놀이터’로 커피숍을 선택하면서 벌어진 유행이다. 또 싱가포르 기자의 말대로 ‘윈도쇼핑’이 아시아 전체를 주름잡는 도도한 흐름이 되었다거나 하는 현상들도 모두 경제현실을 적극 반영한 아시아의 새로운 트렌드인 셈이다. 둘째로 아시아적 가치를 좇는 현상은, 타이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같은 사회에서 얼마 전부터 유행하는 전통적 패션으로의 복귀를 꼽을 만한데, 주로 ‘반골’ 기질이 있는 젊은이들 사이에 아예 고대 복장이나 또는 주변 산악소수민족의 의상을 강조하는 기운들이다. ‘아시아적 가치’란 말은 그 단어가 풍기는 느낌처럼 사실은 일정한 한계를 지닌 폐쇄적이고 국수적인 경향성을 띤 비정치적인 용어인데, 이러다보니 이를 따르는 트렌드의 추구도 상당히 보수적인 기질을 보여왔다. ‘반서구적 가치’를 아시아적 가치란 뜻과 혼용하는 데서도 볼 수 있듯이, 유행의 모습도 상당히 배타적인 태도를 지닌 걸로 보아, 아시아가 산업화를 내걸고 지나치게 서구적인 모양을 추구하는 데 따른 ‘반작용’에서 비롯된 경우라 할 만하다.

이들과는 별개로 최근 아시아의 유행을 꼽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폭발하는 한국 열풍- 영화나 방송극과 가요가 주도하고 있는- 인데, 그 규모나 수요면에서 머지않아 일본 열풍을 잠재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이 한국 열풍은 앞에 열거한 유행들의 현실적인 부분과 정신적인 부분을 교묘하게 연결시킨 매우 ‘상업적’인 현상인 탓에 아직 그 정체나 생명력을 속단하기는 힘들다는 것이 현지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한국 내부에서 지나치게 흥분할 일도 아니라는 뜻이다.

‘한국열풍’의 뿌리는 무엇인가

아시아가 경제위기를 맞으면서 사회 전 부문이 ‘싼 비용’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미국과 서구가 주도하는 세계화에 대한 반발이 같은 시점에 어울리면서 비교적 정서가 비슷한 아시아에서 값싸고 새로운 것을 찾는 게 이른바 한국 열풍의 뿌리라 볼 수 있다. 여기에 일본 것들은 여전히 비싼 데다 한 20년 해보았으니 싫증도 난 판이었고. 어쨌든 아시아의 2002년 유행 속에 한국이 노려볼 만한 부분이 있다는 사실은 전에 없이 괜찮은 일임이 분명하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아시아 네트워크 팀장 asianetwork@ne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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