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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시베리아를 넘어, 체첸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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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2-0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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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복무를 위한 러시아 진보세력의 기나긴 투쟁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사진/ 러시아 병사들. 보통 1년에 1500명의 젊은이들이 종교적 신념등을 근거로 대체복무를 신청한다.(SYGMA)
필자는 지금도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 소련 사회주의 개혁)가 한창이었던 1980년대 말기를 잘 기억한다. 소련사회의 개혁을 위해 나선 민중·진보적 지식인들은 과연 당시 개혁의 목표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서구보다 훨씬 ‘원리주의적’인, 복지예산의 비율이 훨씬 낮은 자본주의 나라가 된 지금의 러시아 사람들에게는 거의 믿어지지 않는 일이겠지만, 그 당시 페레스트로이카 주도자들의 주요 목표와 당시 사회·경제적 모델로 가장 인기를 모았던 것은 미국식 자본주의가 아닌 스칸디나비아의 사민주의였다.

한때 스칸디나비아를 꿈꾼 러시아

그러나 사회·경제적 모델보다도 페레스트로이카 시대의 젊은 러시아인에게 가장 관심사가 된 것은 국가와 개인의 문제였다. 스탈린의 대량 학살과 70∼80년대 ‘사상범 탄압’ 등의 소련 역사의 어두운 면들이 줄줄이 밝혀졌던 페레스트로이카 시절 진보적인 젊은이들의 가장 절실한 바람은, 국가로부터의 개인의 진정한 독립과 개인 인권의 절대적인 가치에 대한 국가의 인정, 애국애족과 같은 허구적인 이데올로기가 아닌 법과 인권에 의한 개인·국가간의 합리적인 관계의 성립이었다.


소련의 1980년대를 어둡게 만든 아프간 침공을 지켜보면서 살았던 젊은 세대는, 인권을 생각할 때마다 ‘사람 죽이라는 명령을 거부할 권리’ 즉 병역에 대한 양심적 거부의 권리를 먼저 의식하곤 했다. 그들에게는 페레스트로이카의 목표가, 국가를 위한 살생을 합법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 성숙한 사회의 건설이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서구에서 시민사회가 이미 이 목표를 달성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큰힘이 되기도 했다.

페레스트로이카의 열정도 식고 구소련이 산산이 부서진 지 어언 10년 넘게 지났다. 부정부패의 체감지수로 따지면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꼽히는 현재의 러시아에서는, 페레스트로이카 시절의 꿈이었던 ‘스칸디나비아 모델’을 언급하면 웃음거리밖에 되지 못한다. 러시아보다 인구가 20배나 적은 스웨덴의 국민총생산이 러시아의 그것과 비슷한 수준인데, 러시아와 스웨덴의 사회복지를 논할 수 있겠는가? 소련의 붕괴와 옐친의 사기극적인 개혁이 초래한 러시아의 탈산업화, 탈근대화의 규모를 생각하면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소련의 산업·과학 복합체가 아직 돌아가고 있었던 페레스트로이카 시절에 꽤나 현실적인 것으로 느껴졌던 스칸디나비아 복지로의 전환의 꿈은, 오늘의 러시아에서는 말 그대로 ‘단꿈’일 뿐이다. 그러면 그 당시 또 하나의 꿈, 국가가 시키는 살생을 거부할 수 있는 합리적인 인권사회의 꿈은 과연 어떻게 됐을까? 지난 10년간의 양심적인 병역 거부, 대체복무 제도의 도입을 위한 투쟁의 연혁을 들여다보면, 거대 군국주의 국가에 맞서는 러시아 시민사회의 고투가 얼마나 치열한가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구소련이 붕괴된 직후, 러시아의 헌법에는 “양심에 의해 병역을 거부하고자 하는 시민은 대체복무를 신청할 권리가 있다”는 조항이 첨가됐다. 그러나 보수적인 군부조직의 끈질긴 반발을 뚫고 대체복무 제도를 구체적으로 도입하는 것은 훨씬 어려웠다. 대체복무 관련 법률 제정 및 제도 도입을 담당하는 국회 위원회도 만들어졌지만, 옐친이 1993년 10월에 국회를 무력으로 해산시킬 때 그 위원회도 자연히 없어지고 말았다.

옐친도 ‘민주 여론’을 무시 못하다

사진/ (SYGMA)
한편으로 군부의 지지에 힘입은 옐친이었지만 국내외 민주여론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었다. 옐친의 측근들이 작성하고, 1993년 12월 국민투표로 통과된 러시아의 새로운 헌법에는, 신념이나 신앙에 의한 대체복무 신청이 가능하다는 조항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국가 최고의 법인 헌법에 양심적 병역 거부·대체복무 신청에 대한 조항이 들어 있다고 해서 승리한 것이 아니었다. 해당 법률 제정과 구체적인 제도 도입 없이는 헌법의 조항은 사문화 될 수 밖에 없었고, 군부·공안·군산복합체 세력들은 법률과 제도를 만드는 데 결사적인 저항을 벌였다.

인권·민주단체 관련자들은 대체복무법의 초안을 1994년과 1998년에 국회에 상정한 일이 있었다. 국회에서 활발한 토론이 벌어졌지만, 두번 다 진보운동쪽의 법안이 부결됐다. 그 이유는 보수적인 친정부 여당과 주요 야당인 공산당이, 다양한 신념들을 최대한 존중하는 이 서구형 법안을 ‘애국심과 사병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매국적인 우거(愚擧)’로밖에 취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국회의원들의 ‘불타는 애국충정’을 충족시킬 만한 법안의 작성에 ‘러시아식 군사주의적 어용 애국의 심장’인 국방부가 나섰다. 지난 1월24일 국회에서 발표된 국방부 ‘애국 지사’들의 작품은 말 그대로 가공할 만했다. 그 작품의 공식 명칭은 ‘대체복무법’이지만, 차라리 대체복무를 신청하는 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법안을 보면, 대체복무의 기간은 정상적인 군 복무 기간의 2배나 되는 4년이다(단, 대졸에게는 2년). 그 법을 보는 순간 젊은이들의 소신이 흔들리기 시작하리라고 기대하는 셈이다. ‘4년간의 격리생활’로 젊은이를 위협한 뒤에, 법은 “군에서의 비전투 요원 복무라면 받아들이겠다”는 거부자들에게는 ‘3년간 복무’라는 ‘당근’을 던져준다. 살고 싶으면 우리와 타협하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타협한다 해도 국방부는 총을 싫어하는 사람을 인간으로 대접하려고 하지 않는다. 법안에 따르면, 전형적인 대체복무자든 비전투 요원이든 군대를 위해 출신지와 가장 동떨어진 지역에서(시베리아 광산 노동 등) 막노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전력을 다해서 군국주의적인 ‘애국주의’를 고취하는 푸틴 정부의 부총리들마저 국방부 관계자들에게 이 법안을 정정할 것을 공식 요청할 정도였을까? 박애주의를 들먹이는 얼치기들을 시베리아 광산으로 보내고 싶어도 서구의 시선들이 워낙 두려운 모양이다.

권좌에 앉아 있는 ‘애국자’들이 그들의 제도적 폭력을 거부하려는 사람들을 어떤 식으로 ‘모양 좋게’ 처벌할 것인가를 궁리하고 있는 동안, 헌법에 보장된 ‘양심적 병역 거부의 권리’를 실천하기 위한 묵묵하고 힘든 투쟁은 계속 이어져간다. 1992∼1993년부터 현재까지 보통 1년에 약 1500명의 징병 대상자들은 종교적 신념 등을 근거로 대체복무를 신청한다. 광활한 러시아에서 그들의 운명은 거부 지역과 본인의 의지력, 그리고 운에 따라서 다를 수도 있다. 가령 모스크바의 인권단체나 반정부 언론, 그리고 외국 특파원들의 시선이 잘 닿지 못하는 오지 출신의 경우 의지력이 약한 거부자를 명분상 군 시설이지만 사실상 주로 고급 장교의 별장을 짓는 ‘건설부대’로 보내지기도 한다. 폭력문화를 접한 일이 거의 없는 거부자가 이 부대에 가면, 군내 폭력 등으로 건강한 심신으로 돌아갈 확률이 매우 낮다는 것은 뻔한 일이다.

러시아 사회에 무엇을 기여했는가

사진/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목숨을 잃은 체첸의 어린이들. 러시아내 양심적 병역거부운동 속에서 체첸 전쟁 같은 폭거들은 예전보다 더 큰 비판에 직면했다.(SYGMA)
그러나 거부자가 국내외 매체의 관심을 끌거나 법원의 독립성이 어느 정도 보장된 모스크바 등 ‘선진’ 지역에서 산다면, 헌법에 호소하여 몇 개월이나 몇년의 재판 과정을 거쳐 대체복무 판정을 따낼 수도 있다. 그들은 보통 규정이 정해질 때까지의 무기한 복무 연기 판정을 받거나, 소방서나 철도, 연금 생활자 지원 단체에서 2∼3년 동안 근무한다. 정권이 군사적인 총동원 분위기를 다시 조장하게 되면 그들이 언제나 ‘군 미필자’로서 병무청에 끌려갈 수 있는 불안정한 처지에 있지만, 일단 신념을 관철한 만큼 승리를 거두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미 10년 넘게 걸린 러시아에서의 대체복무를 위한 투쟁은 아직 끝을 맺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 투쟁이 러시아사회에 기여한 바는 실로 크다. 국가 폭력에 대한 비판적인 분위기가 조성된 만큼, 체첸 전쟁과 같은 국가의 대량 폭거들은 예전에 비해서 훨씬 더 강한 비판을 받게 됐다. 그리고 푸틴류의 ‘공안꾼’들의 공포 분위기 조장의 시도에 대한 민중의 저항에도 큰 보탬이 됐다. 한국의 반전, 반 폭력 투사들은 러시아의 전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과연 무엇인가? 첫 번째 쉬운 성과는 없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는 러시아에서의 양심적 병역 거부 운동이 체첸 전쟁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을 가중시킬 수 있었던 것처럼, 한국에서도 양심적 병역 거부가 수구세력과 부시 정권의 대북 공격 선동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노자/ 오슬로 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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