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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근대화와 어린이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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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1-3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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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보는 세계/ <아시아의 아동노동과 빈곤>

한 공기의 밥을 만들기까지 고생한 농부의 고달픔을 생각해 보자는 얘기를 우리는 종종 식탁 앞머리에서 듣는다. 일상 속에 숨어 있는 관계들을 타자화하지 말자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매일 입고 다니는 티셔츠, 혹은 매일 들고 다니는 가방이, 그리고 그것이 특히 해외 유명메이커라면, 동남아시아 혹은 서남아시아의 가장 값싼 노동력인 어린이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아시아의 아동노동과 빈곤>(미네르바쇼보 펴냄)이라는 책을 쓴 이다니 가쓰히데(谷勝英)는 캄보디아 어린이에 의해 채벌된 목재가 타이를 통해 수출되어, 일본의 사회복지시설의 건설에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내고 깊은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그것은 목재뿐만이 아니다. 인도네시아 혹은 방글라데시의 공장에서 만든 가방 혹은 티셔츠, 그리고 엄청나게 값싼 필리핀산 바나나와 설탕, 네팔과 파키스탄에서 만든 아름다운 빛깔의 양탄자 역시 14살 미만의 고사리 같은 손들이 만들어낸 것들이다.

도호쿠복지대학 교수인 그가 어린이노동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15년 전부터이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저자는 특히 아시아 어린이노동에 주목하였는데, 이는 인도 1400만명, 방글라데시 430만명, 파키스탄 300만명 등 아시아 어린이노동자 수가 전세계 어린이노동자 수의 약 60%에 달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시아 국가 가운데에서도 특히 네팔과 버마, 그리고 필리핀의 어린이노동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 세 나라가 지닌 공통점은 80년대 말 각각 거센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86년 필리핀의 아키노, 88년 버마의 아웅산 수지, 그리고 네팔에서의 90년 왕정반대 민주화운동 등이 그것이다. 저자는 민주화운동으로 외화되고 있는 근대화 문제를 어린이노동의 원인과 연계시키고 있다. 서로 다르긴 하지만 이들 나라의 종교적·문화적 배경도 어린이노동의 발생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 네팔의 힌두교 혹은 버마의 불교, 그리고 뿌리깊은 카스트제도 등은 학교에 다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별다른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아주 자연스럽게 노동을 시작하게 된다는 것이다. 필리핀은 일찍이 근대화의 세례를 받았지만, 도시와 농촌의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빈곤이 어린이노동을 양산한 경우이다.

그러나 저자는 어린이노동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아이들이 노동을 통해서 배우는 것 역시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심한 노동으로 인해 정신적·육체적 발육과 성장에 커다란 장애가 생기는 것이다. 아울러 개발도상국에서 전면적으로 어린이노동을 금지시키는 것도 이상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어린이노동은 일종의 근대화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좀더 많은 시간과 꾸준히 애정을 갖고 그들에게 다가갈 때만이 어린이노동은 근절될 것이라는 게 그의 중간결론이다.


도쿄=신명직 통신원 mjshin59@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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