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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불쾌한 손님, 동남아를 휘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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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1-2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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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에서 미군이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모로민족해방전선 지도자의 분노를 들어본다

사진/ 아로요대통령은 부패 스캔들에 이어 미군 파병을 용인함으로써 시민사회와 가톨릭계의 반발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SYGMA)
아프가니스탄의 불똥이 동남아시아로 옮겨붙고 있다. 1992년 필리핀에서 미군이 철수한 지 꼭 10년 만에 다시 미군이 돌아온 것이다. 이들 미군들은 단순히 동남아 안보차원의 방어적 개념이 아닌 반테러를 명분으로 전쟁을 하기 위해 중화기로 무장한 특수부대 용병들이다. 이들은 9·11 테러의 주범으로 낙인찍힌 알 카에다 조직과 연관성이 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필리핀 무슬림 무장투쟁단체인 아부사야프(Abu Sayyaf)와의 한판 전쟁을 위해 대기중이다. 형식상으로는 아로요 대통령의 요청으로 20여명의 군사전문 참모들을 파견한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2월 중순에는 160여명의 해병들과 그린베레 등 특수부대가 파견 준비중이며 추가로 특수부대 용병 700명이 곧 파견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로요가 둔 ‘악수’

지난 1년 동안 두 차례에 걸친 외국인 납치사건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아부사야프 조직은 최근 필리핀 정부군의 끈질긴 추적으로 100여명 정도가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미국인 선교사 부부를 인질로 삼은 것과 빈 라덴의 또다른 부인이 이 조직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국의 좋은 표적이 된 것이다. 그러나 아부사야프 조직은 기존의 무슬림 단체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 소수 단체다. 기존 무슬림 단체들은 무고한 필리핀 무슬림들까지 피해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저항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군의 파병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피를 흘리지 않고 미군을 물러나게 했던 필리핀 시민사회단체들의 자존심에도 적지 않은 상처를 주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1월20일 부패한 에스트라다 전직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렸던 피플파워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벌여야 할 요즘, 마닐라 거리에는 오히려 아로요를 비난하는 시위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새로운 대통령이 된 지 1년 만에 아로요 대통령은 연이은 부패 스캔들과 미군을 불러들이는 악수를 둬서 2004년까지의 잔여 임기기간을 순탄하게 보낼 수 있을지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필리핀의 막강한 힘인 가톨릭 교회조차 지난 1월9일 특별성명을 통해 “피플파워 1주년을 어떻게 맞이할지 고민스럽다”며 현 정부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볼 수 없음”에 서운함을 나타내기도 했다.

최근 해외 건설회사 공사 수주와 관련해 뇌물수수 이야기가 돌고 있는 아로요가 미군을 불러들인 데는 나름대로 변명이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 경제적인 지원인데, 미군 철수 이전까지는 필리핀 주둔 미군기지 지원 명목으로 해마다 2억달러 규모의 예산이 지원됐던 것이 미군 철수 이후 끊겼다는 것이다. 지난해 9·11 테러 이후 아로요 정부는 재빨리 반테러를 위한 적극 협조를 천명하면서 부시 미 대통령을 만났다. 그리고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이 체결한 미군사찰협정(VFA)에 따라 2000년에 200만달러 지원을 받은 대가로 전국의 주요 섬 7군데에 미군 훈련장을 내놓은 데 이어 반테러 명분으로 이번에는 미군 용병을 불러들여 수십억달러 규모의 경제적인 지원과 군사적인 지원을 받으려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많은 시민사회단체에서는 고질적인 정경유착, 부정부패의 고리를 끊고 경제개혁을 통한 자립을 추구해야 할 정부가 미군을 끌어들임으로 명분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수십억달러 규모의 차관 역시 경제적 의존도를 높일 뿐이라는 지적을 한다. 더 나아가 “더이상 아로요에게 기대할 것이 없다”는 성명이 줄을 잇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부패한 에스트라다 정권에서도 진행되었던 농지개혁이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는 농민단체의 지적도 나오고 있다.

명분은 반테러, 속내는 석유

사진/ 홀로섬에 있는 아부사야프 반군 기지. 인질들을 잡아둔 채로 의사로부터 식량과 치료를 받고 있다.(SYGMA)
무엇보다 반발이 심한 곳은 민다나오섬 주민들과 무슬림 단체들이라 할 수 있다. 지난 1월16일, 최근에 메트로마닐라를 방문했던 무하마드 파디(43)를 어렵게 만날 수 있었다. 파디는 팔라완섬 남부지역 모로민족해방전선(MNLF: Moro National Liberation Front) 대표이면서 전국 조직 평가단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모로민족해방전선은 전국에 23개 지부를 두고 있는 필리핀의 가장 큰 무슬림 단체이다. 오랜 기간 필리핀 정부와 독립투쟁을 벌이다가 지난 1996년, 라모스 전 대통령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필리핀의 남부 민다나오 일부 지역에 무슬림 자치정부를 세운 바 있다. 파디는 미군이 필리핀 남부의 바실란 지역에 온 것은 단순히 일부 지역에 발을 들여놓았다기보다 필리핀, 동남아시아에 미국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지적했다. 특히 반테러라는 명분으로 내정간섭, 군사력 동원체제를 확실히 하고 있는 증거라고 말했다.

오늘날 미국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은 전세계 140여개국. 이번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아프카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등과 함께 동남아시아의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10여개국에 군사력을 확장했다. 이미 한국과 일본, 대만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생각하면 북한, 중국을 충분히 자극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에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2월 말부터 타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를 방문하기로 하고 인도네시아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메가와티가 북한을 3월에 방문하기로 하는 등 다각적인 외교가 일고 있는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파디는 미국의 ‘의심’과 일방적인 ‘단정’으로 언제든지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오만함, 9·11 테러 이후 서슴없이 필리핀과 북한 등에 위협적인 발언을 하는 것은 곧 아시아의 수많은 무고한 생명들에 대한 무차별적 테러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이번 미국의 주둔과 아부사야프와의 전쟁 때문에 무고한 희생이 생긴다면 그들은 다시 총을 들어야 할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렇다면 반테러를 명분으로 미국이 필리핀에서 무슬림을 자극하여 얻고자 하는 이득이 무엇일까?

사실 이러한 상황은 이웃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 민감한 반응을 가져올 수 있다. 아프카니스탄 전쟁을 통해 미국이 인근지역 석유운반 주도권에 대한 실리를 함께 노렸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필리핀 남부지역 홀로섬 부근에도 대량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다. 이 때문에 이곳은 중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간에 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미국이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지역과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시아에서 군사력을 확대하는 것은 곧 거대한 중국에 대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중요한 거점이기도 하다.

동남아·동북아 평화를 쏘다

사진/ 전투에서 부상 입은 아부사야프 반군들. 최근 필리핀 정부군의 소탕작전으로 100여명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SYGMA)
이번 미국의 필리핀 파병은 부분적인 확전으로 번질 수도 있다. ‘질 수밖에 없는 전쟁’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필리핀의 무슬림에 대해 파디는 함께 자리한 부인의 얼굴을 지그시 쳐다보며 말을 꺼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군이 주둔했던 필리핀 수비크와 클라크 기지에만 4만여명의 필리핀 여성이 몸을 팔아야 했던 것을 생각해봅니다. 이번 미군의 파병은 숫자가 아니라 그들이 지니고 있는 가공할 만한 무기와 폭력이 문제예요.” 그는 물론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9·11 테러에 대해 동의하지 않지만 빈 라덴 역시 미국 CIA에서 훈련을 받아 좌충우돌했던 역사를 갖고 있는 미국의 또다른 희생양이라고 지적했다. 마찬가지로 아부사야프의 인질극에 대해 절대 동의할 수 없지만, 이 또한 필리핀 정부가 남부 민다나오섬과 무슬림에 대한 차별정책에 따른 자가당착임을 깨닫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파디는 “지난해 한반도에 불었던 햇볕정책에 대해 상당히 고무적인 인상을 받았다”며 “김대중 정부의 평화적인 노력들이 한순간 물거품이 될 수 있는 무차별적인 전쟁보다는 시간을 갖고 당사자들이 문제들을 풀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리핀 남부지역의 작은 전쟁은 다시 어디로 불똥이 튈지 모르는 또다른 불씨가 되고 있다.

마닐라=나효우 통신원 nahyowo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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