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기지 반대운동에 앞장섰던 오타 마사히데 전 일본 오키나와 지사. 한겨레
그러나 오키나와는 헌법으로부터 가장 먼 곳에 있었다. 오키나와는 일본에서 분리돼 미군 점령 아래 놓였다. 미군은 오키나와에 계속 남았다. 일본도, 미국도 오키나와를 이용했다. 오타는 헌법을 믿었다. 오키나와를 전쟁터 삼아 사람을 죽이고 지역을 파괴한 일본과 미국의 민주주의를 믿었다.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 그 일원이 되기 희망하며 오타는 도쿄의 대학에서 공부하고 다시 미국에 유학을 갔다. 필사적으로 민주주의를 배웠다. 1972년 5월 오키나와는 겨우 일본에 복귀했다. 동경하던 헌법을 일본인으로서 획득한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일본도 미국도 오키나와를 계속 배신했다. 미군기지는 오키나와에 남겨진 그대로였다. 미국과 일본은 격전지로서 전쟁의 희생양이던 오키나와를 ‘안전 보장의 요석’으로 위치지었다. 오타는 싸웠다. 학자가 되어 전쟁의 기억이 잊히지 않도록 오키나와전 역사 연구에 몰두했다. 다시는 전쟁을 되풀이하면 안 된다고 학생들에게 호소했다. 또 ‘기지 없는 섬’을 이상으로 내걸고 지사에 당선됐다. 기지의 정리와 축소를 주장하며 미·일 정부와 싸웠다. 양국 정부의 압력을 계속 받으며, 요구마다 건건이 거절당하면서도 오타는 포기하지 않았다. “헌법과 민주주의를 믿었기 때문”이었다. 정글 안에서 포격을 받으며 죽음을 생각한 그였기 때문에 한번 품은 희망을 간단히 포기할 수 없었다. 헌법으로부터 가장 먼 섬에서 오타는 “전력을 포기한다”고 선언한 일본 헌법을 믿었다. 일본이 이를 어떻게 형해화하려 해도, 난폭하게 다루더라도 믿었다. 동시에 미국 민주주의를 믿었다. 오키나와에 광대한 기지를 계속 유지하며 주민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미국에 격렬히 저항하면서도 민주주의를 믿었다. 새 기지 건설은 오타를 짓밟는 일 오타에 대해 ‘반일’ ‘반미’라 평하는 이가 있다. 반체제의 과격파라고 매도하는 이도 있다.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정글 안에서 헤맨 그였기 때문에 누구보다 일본 헌법과 민주주의를 사랑했다. 연필로 헌법을 베껴 쓰던 그날부터 오타는 결코 희망의 빛을 잊지 않았다. 일본의 헌법과 민주주의를 변질시켜 매장하려는 것은 미·일 정부다. 지금 오키나와에서 미·일 정부는 새 기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오타의, 아니 오키나와의 희망을 언제까지 배신할 것인가. 야스다 고이치 일본 독립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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