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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니파 국가 중 비아랍 국가인 터키는 국제사회가 이슬람국가 격퇴전에 들어간 이후 가장 중요한 역내 국가로 부상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회원국이자 중동 국가 가운데 가장 막강한 자체 군사력을 가진 터키는 미군 등 서구 연합국에 인시리크 공군기지 등을 제공한다. 이 기지는 이슬람국가 폭격기의 발진지이다. 하지만 터키 역시 현재 이슬람국가와 싸우는 주요 지상 전력인 민주시리아군 등 쿠르드족 민병대 세력을 견제하는 데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터키는 반아사드이기는 하나, 시리아 내전에서 주적은 쿠르드족이다. 이라크 전쟁 이후 이라크의 쿠르드족이 사실상 독립적인 자치정부를 구성했다. 이를 통해 터키-시리아-이라크-이란 접경 지대에 분포한 쿠르드족들이 가진 독립국가의 꿈이 커지게 된다. 특히 터키 영내에 있는 쿠르드 분리주의 세력을 자극했다.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이슬람국가가 득세하며 쿠르드족 영역을 잠식하고 압박하자 터키는 이를 방조하게 된다. 하지만 미국 지원 등으로 쿠르드족 민병대가 이슬람국가와 싸우는 주요 전력으로 부상하자 터키 역시 이중 플레이로 대처한다. 이슬람국가에 대한 지상 공세에 터키군이 개입하는 척하면서 실상은 접경 지역 쿠르드족 영역에 폭격과 공세를 벌이고 있다. 미국의 우려와 러시아의 계산 다음은 역외 강대국들이다. 미국은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자 반아사드 입장을 표방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는 반아사드 외에 뚜렷한 행동을 할 수 없었다. 아사드 정부는 반서방 노선을 취해왔으나, 중동에서 이슬람주의 세력을 막는 방파제 구실도 해왔다. 미국은 반군세력의 핵심이 알누스라전선 등 이슬람주의 세력이라는 현실 속에 대책 없이 아사드 정부를 타도할 경우 중동에서 이슬람주의 세력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러시아는 미국과 대척점에 서서 철저한 친아사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소련 시절부터 시리아와 깊은 관계를 맺어온 러시아는 내전이 발발하자 아사드 정부를 지원하면서 중동에서 상실한 거점과 영향력을 회복하고 있다. 이 역시 이슬람국가 퇴치가 우선순위는 아니다. 러시아는 지중해에 면한 타르투스 해군기지, 라타키아항 인근 흐메이밈 공군기지를 확보하고 소련 시절보다 더 탄탄한 중동 지역 거점을 확보했다. 중국 역시 친아사드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아사드 정부의 민간인에 대한 화학무기 사용 규탄 결의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두 나라는 줄곧 아사드 정부를 반대하는 유엔 제재와 결의안을 거부하는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취임하면서 러시아와 협력해 아사드 정부를 인정하고 이슬람국가를 격퇴하겠다는 시리아 내전 해법을 표방했다. 시리아 내전의 한쪽 당사자인 아사드 정부를 인정하지 않고는 현실적 해법을 찾기 어렵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사드 정부의 화학무기 공격 이후엔 이들을 폭격하는 행동에 나섰다. 트럼프는 화학무기 공격으로 아기가 죽어가는 사진을 보고 시리아 정부군 폭격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럼 그는 그동안 수없이 언론 보도된 시리아 내전의 참상, 죽어가는 아이들을 처음 봤다는 말인가? 트럼프는 이번 폭격으로 국내적으로 그를 압박해오던 러시아 스캔들을 덮고 자신을 반대하던 공화당의 전통적 군사강경파의 지지를 얻어냈다. 적은 이슬람국가인가 아사드 정부인가 시리아 내전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시리아 내전에서 국제사회 공통의 적은 이슬람국가이다. 하지만 쿠르드족 민병대 세력을 제외하고 그 누구도 이슬람국가와의 싸움에 적극 나서지 않는다. 오히려 이슬람국가는 지금도 암묵적으로 방조되고 있다. 아사드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서구 국가들의 적이다. 그러나 지금껏 이들이 아사드 정부를 제거할 현실적 조처를 취한 것은 없다. 트럼프 행정부가 시리아 정부군 시설에 미사일 폭격을 했지만 추가적인 군사 조처 등 적극적 행동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진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 역시 아사드 정부 타도가 목적이 아니라고 밝혔다. 시리아 내전은 도대체 누구와 싸우는 전쟁인가? 싸우는 주체는 누구인가? 국제사회가 답변을 내놓아야만 시리아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수 있다. 정의길 <한겨레>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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