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6일(현지시각) 미국 플로리다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REUTERS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 정상회담을 전후해 북한과 중국을 싸잡아 비난하는 언술 체계를 선보여왔다. 북한의 위협과 도발에 맹비난을 쏟아부으면서 그 책임을 중국에 돌리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러면서 “중국이 북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미국이 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한다. 그러곤 행동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과 정상회담 중에 시리아 공습을 명령했다. 오랜 내전이 이어지고 있는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화학무기 사용에 대한 응징 차원이라고 설명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미국 의회의 동의와 유엔(UN) 등 국제사회의 합의 없이도 ‘독자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과시한 것이다. 중국과의 정상회담이 끝난 직후에는 항공모함 칼빈슨호가 이끄는 전단의 기수를 한반도로 틀었다. 한미연합훈련인 독수리 훈련에 참가했던 칼빈슨호는 싱가포르에 입항한 뒤 오스트레일리아로 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예고 없이 항로를 한반도 쪽으로 돌렸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무슨 일을 할지 알려고 하지 말라’는 식으로 말했다. 이는 그가 즐겨 사용하는 화법이다. 트럼프가 구사하는 ‘미친 자의 이론’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은 ‘미친 자의 이론’(Madman’s theory)을 떠올리게 한다. 1970년대 초반의 일이다. “베트남 전쟁의 명예로운 종결”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사태가 뜻대로 돌아가지 않자 느닷없이 대규모 핵전쟁 훈련에 돌입했다. 훈련 내용을 언론에 흘리는가 하면, 헨리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을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로 보냈다. 그리고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만난 키신저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 대통령이 미쳤다.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소련이 영향력을 행사해 베트남 전쟁을 빨리 끝내지 않으면 닉슨 대통령이 핵전쟁도 불사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그리고 닉슨 스스로 이 전략을 ‘미친 자의 이론’이라고 명명했다. 트럼프의 언행도 판박이다. 칼빈슨호의 투입과 관련해 미국 국방부 장관과 국무부 장관은 오스트레일리아와의 훈련이 취소되면서 “작전상 편의”를 위해 한반도 쪽으로 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 거론된 북한 공격용은 아니라는 취지다. 하지만 트럼프의 발언 수위는 다르다. 그는 4월12일치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북한의 추가 행동을 막기 위한 것”이라며, 12일 시진핑과의 통화에서 “김정은에게 미국이 항공모함뿐만 아니라 핵잠수함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라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진짜 미친 것이 아니라면 예방적 대북 공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래서 대다수 사람들은 미국의 북폭을 ‘설마’라고 생각한다. 트럼프는 바로 이 점을 노린다. 상대방에게 ‘혹시’라는 불안감을 증폭시켜 자신이 원하는 바를 관철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렇다. 일단 트럼프는 미친 척하는 것이다. 그 주된 상대는 시진핑 주석이다. ‘북핵 해결에 나서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경고를 보내려는 것이다. 항모 전단을 한반도로 보내면서, 그리고 트위터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강경 메시지를 쏟아내면서 트럼프가 시진핑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도 이런 심리전의 일환이다. 이로 인해 중국은 더욱 곤혹스러운 처지에 몰렸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중국 책임론’과 ‘중국 역할론’이란 프레임이 짜이면서 덫에 걸린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요구대로 강력한 대북 제재와 압박을 가하자니 그 역효과, 즉 북-중 관계 악화와 북한에 대한 영향력 감소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트럼프의 요구를 뿌리치자니 무역 보복 및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의 한반도 배치 가속화 같은 미국의 추가 조치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최대 변수는 북한 6차 핵실험 중국은 이 상황을 충분히 예상했고, 그래서 다양한 대응책도 강구해왔다. 미-중 정상회담과 후속 전화 통화를 통해 북핵 문제의 시급성과 더불어 ‘평화적 해결’ 원칙에 합의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북한에 여러 경로를 통해 추가적인 핵실험과 장거리로켓 발사의 자제를 요구하고 있다. 발등의 불인 사드 배치도 좀더 시간적 여유를 갖고 대처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이른바 ‘4월 위기설’의 최대 변수는 북한의 6차 핵실험이나 중장거리로켓 발사 여부라고 할 수 있다. 만약 북한이 이런 강수를 두고 나온다면 한반도 위기는 급격히 고조될 우려가 크다. 특히 국제사회의 초점은 추가적 대북 제재로 모아질 것이기에 차기 한국 정부의 운신 폭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반면 북한이 자제한다면, 한반도는 4월 위기설을 딛고 5월부터는 해빙기를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로선 예측하기 힘들지만, 북한이 19년 만에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회를 부활시킨 것이 ‘협상의 시대’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희망 섞인 관측도 할 수 있다. 가장 큰 희망의 근거는 우리 안에 있다. 사실 지난 9년 동안 한국 정부가 대북 제재와 압박, 그리고 흡수통일이란 망상에 사로잡힌 사이 한국은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가 아니라 주변부로 밀려나 있었다. 한반도 문제는 미국 강경파들의 꽃놀이패로 전락했고, 한-중 관계 역시 역사상 최악의 상황에 놓이게 됐다. 사드 대란을 자초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다행히 지난해 11월 시작된 촛불의 힘으로 박근혜 정부가 조기에 종식되면서 정권 교체는 확실해졌고 새로운 미래도 기약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희망찬 미래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한반도 문제를 풀겠다는 단호한 의지와 실력을 갖출 때에만 막장으로 치닫는 한반도 드라마의 반전을 모색할 수 있다. 한국이 ‘게임 체인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북핵 문제를 둘러싼 프레임을 다시 짜야 한다. 대북 제재가 약해서 북핵 문제가 악화된 것이 아니라 협상다운 협상이 없어 상황이 이 지경에 놓였다는 점을 부각시켜야 한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장거리로켓을 발사할 때마다 국제사회는 추가적인 대북 제재를 부과하면서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재”라고 말해왔다. 그런데 결과는 북한의 굴복이 아닌 핵과 미사일 능력의 비약적 증강이었다. 반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은 2008년 12월 결렬된 뒤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고 있다.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대체하기 위한 회담도 2005년 합의해놓고 지금까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5월9일 선거에 나서는 주요 대선 후보와 차기 정부는 이 점을 강조하면서 “어느 때보다 강력하고도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협상에 임할 것”임을 국내외에 천명해야 한다. 사드-북핵 협상의 문, 한국이 열어야 사드 문제에 대해서도 한·미·중이 서로 만족할 수 있는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가령 “내년 말까지 사드 배치를 유보하고 북핵 해결 진전에 총력을 기울이자”며 미국과 중국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중국은 이 제안에 못마땅한 부분이 있겠지만, 양국 사이의 이 같은 다소간의 불만이 어려운 합의를 도출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사드 문제 합의에 도달한다면 중국은 북핵 해결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이제 지난 9년간 굳게 닫혀 있던 협상의 문을 열어야 할 시점이다. 그 열쇠는 한국이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월 위기설’이 가짜 뉴스로 끝나고 ‘5월 기회설’이 진짜 뉴스로 등장하기 간절히 바란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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