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원 NG 리포트
나는 정말 골초였다. 대학생활을 ‘88트리오’와 함께 시작했고 미팅 나갈 땐 우아하게 ‘장미’도 태우곤 했다. 술자리에선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부르며 ‘솔’도 많이 태웠고 군생활은 초록딱지 붙은 군용 ‘솔’과 함께 보냈다. 오죽하면 “소주는 청춘의 피요 담배는 산소”라는 농까지 하고 다녔을까.
시드니로 오면서 큰맘 먹고 면세담배를 사지 않았다. 비행기에선 금연이라니 이 기회에 지긋지긋한 담배를 끊자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오스트레일리아로 향하는 동안 몸은 금단현상으로 아우성치고 있었지만 그럴수록 더욱더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나 비행기가 시드니에 도착하자마자 첫 해외여행의 감회가 자연스럽게 밀려왔다. 어둔 밤하늘을 헤치고 이 먼 곳까지 무사히 도착했는데 어찌 느긋하게 한대 피우는 즐거움이 없을쏘냐. 목마른 사슴처럼 공항 담배가게를 찾아 ‘밴슨엔헤지’라는 담배를 샀다. 허겁지겁 밖으로 뛰어나와 시드니의 하늘을 바라보며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난생 처음 맛보는 양담배였다. 그리 특별하달 수는 없었지만, 좀 강한 맛이 느껴졌다. 머리가 핑 도는 듯한 약간의 어지러움 사이로 밀려드는 아늑함. 시드니에서의 첫 담배는 충분히 맛있었고 나는 더없는 행복감에 젖었다. 2개비를 줄줄이 피우고 나서야 담뱃값을 비교할 여유가 생겼다. 환율에 익숙지 않을 때라 니코틴 기운 가득한 머리 속에서 겨우 셈본이 이루어졌다. 5달러를 주고 샀으니 환율이 600원 정도니까 3천원! 이럴 수가. 88 세갑을 사고도 남을 거금이다. 태어나서 가장 비싼 담배를 태운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담뱃값은 한국에 비해 서너배는 비싸다. 이유는 흡연 억제책을 명분으로 한 과중한 세금 때문이다. 담배가 문자 그대로 금초(金草)라 할 만하다. 비싼 담뱃값은 오스트레일리아의 흡연문화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 같다. 우선 담배 피우는 모습이 참 알뜰살뜰하다. 한 모금 한 모금 소중하게 필터에 이를 때까지 담배를 피우는 이들이 많다. 재떨이를 보면 장초 찾기가 가물에 콩나듯 한다. 비싼 담뱃값으로 담배인심은 사나운 편이다. 낯선 이에게 담배를 청하는 행위가 일종의 사회적 혐오의 대상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능력 없으면 끊지”라는 냉소가 배어 있는 흡연문화다.
시드니에 온 뒤로 금연을 시도하다 너무 담배가 그리워 한갑을 거금을 주고 산 뒤 한 개비만 피우고 나머지를 버린 적이 몇번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버린 담배 때문에 괴로워하곤 했다. 담배 가게에서 개비 담배를 사기 위해 사정한 적도 있었다. 불필요한 경제적 손실을 막기 위해 절박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돌아온 건 마치 마약중독자를 내치는 듯한 냉담함뿐이었다. 손에 든 50센트짜리 동전이 부끄러울 정도로 비참한 기분이 되어 담배 가게를 나설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2년 가까이 담배를 피우지 않고 있다. 건강뿐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으로 다각적인 해악을 끼치는 흡연습관을 계속 감당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오스트레일리아의 비싼 담뱃값과 그로 인해 조성된 흡연에 대한 팍팍한 사회 분위기 덕에 나같이 의지박약한 이도 금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시드니=정동철 통신원 djeo8085@mail.usyd.edu.au

일러스트레이션/ 설은영
책으로 보는 세계|<제10차 사회보고서> ![]() |
시드니=정동철 통신원 djeo8085@mail.usyd.edu.a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