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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빈은 오랫동안 노벨물리학상의 유력한 후보자로 꼽혔지만 결국 수상하지 못했다. 루빈과 노벨상 위원회, 성차별 등은 최근 수년간 논쟁의 대상이었다. 마지막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여성 과학자는 1963년 원자 구조의 발견으로 공동 수상한 마리아 괴페르트 메이어이며, 그 외 여성 수상자는 1903년 마리 퀴리가 유일하다. 미국 워싱턴대학의 천문학자 에밀리 레베스크는 미국의 유력 천문학 잡지 <애스트로노미 매거진>(Astronomy Magazine) 인터뷰에서 말했다. “암흑 물질의 존재는 우주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물리학 분야 전체에 변혁을 일으킨 것이다. (…) 암흑 물질이 물리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에 수여되는 노벨물리학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면 다른 무엇이 받을 만한지 나는 모르겠다.” 백인 미국인 남성 천문학자의 역사만이 다뤄질 때 루빈 자신은 노벨상에 대해 언급하거나 불만을 표한 적이 없다고 전해진다. 대신 여러 상을 받아 인정받으면서 여성 과학자로서 새 역사를 썼다. 루빈은 1965년부터 워싱턴 카네기연구소에 몸담으면서 1981년 미국 국립과학원 회원이 됐고 1993년에는 미국 국가과학메달을 받았다. 1996년에는 영국 왕립천문학회로부터 금메달을 받았는데, 루빈은 1928년 이후 금메달을 처음 받은 여성이었다. 태양계의 한 소행성에는 루빈의 이름이 붙어 있다. 200개 넘는 은하계의 회전을 관찰하는 동시에 루빈은 지상의 과학계에서 그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지치지 않고 여성의 지위를 옹호했다. 성별 때문에 주어지는 제약을 끊임없이 거부하고 또 잊지 않음으로써 과학계를 여성과 소수자를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변화시켰다. 루빈 이전 천문학은 완전히 남성 중심적 분야였다. 어린 루빈이 고등학교 물리 선생님에게 진로를 상담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과학과 가까이하지만 않는다면 넌 괜찮을 거야.” 1950년대 프린스턴대학은 여성은 받지 않는다며 루빈의 박사과정 입학 지원을 아예 거부했다. 루빈은 대신 코넬대학을 택했다. 훗날 루빈은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다. “당신이 모자란다고, 누구도 말하도록 두지 마십시오. 과학 선생님은 내가 과학을 못한다고 말했지만 지금 나를 보세요.” 1964년 루빈은 미국 팔로마산 천체관측소에서 시간을 보내도록 허가받은 첫 번째 여성이 됐다. 그가 출입을 요구했을 때 천문대 쪽은 ‘시설이 제한돼 있어 여성은 들어올 수 없다’고 했다. ‘제한된 시설’이란 천체관측소에 여성 화장실이 없다는 거였다. 이에 루빈은 스커트 모양으로 자른 종이를 가져와 화장실 문 위 남성 모양 이미지 위에 붙였다. “자, 됐죠. 이제 여성 화장실이 있네요.” 1970~1980년대 루빈이 가장 중요한 연구들은 이곳에서 이뤄졌다. 한번은 루빈이 저명한 천체물리학자와의 만남에 초대받았는데, 막상 가보니 여성이 사무실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주최 쪽이 루빈을 초대한 것은 그저 로비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영향력 있는 과학자가 된 뒤에도, 그는 ‘남성이 아니라서’ 겪은 굴욕을 기억하며 세상을 바꾸려고 애썼다. 예를 들어 프린스턴의 학술 모임 ‘우주클럽’에 여성이 포함될 수 있도록 싸웠고 결국 관철해냈다. 또한 1976년 미 국립항공우주박물관이 오직 백인 미국인 남성 천문학자의 역사만 다루고 있음을 발견하고서 여성 천문학자의 역사를 포함시킬 것을 주장하며 몇 달 동안 로비를 벌였다. 그는 미국 국립과학원의 여성 회원이 소수라는 점을 비판하고, 과학 분야 학술회의 조직위원회가 더 많은 여성 발언자들을 포함시키도록 밀어붙였다. 루빈은 젊은 여성 과학자들의 멘토였다. “정체성 같은 우스운 이유 때문에 누가 널 억압하도록 두지 마라. (…) 상과 명예에 대해 신경 쓰지 마. 진정한 상은 저 밖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 그 자체니까.” 미국 자연사박물관의 천체물리학자 리베카 오픈하이머는 루빈이 생전에 이런 조언을 해주었다고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밝혔다. “여성이 풀지 못하는 문제는 과학에 없다” 루빈이 생전에 인생과 일에서 항상 기억하며 살았다는 세 가지 가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남성이 풀 수 있는데 여자가 풀지 못하는 문제는 과학에 없다. 둘째, 세계적으로 두뇌의 절반은 여성이 갖고 있다. 셋째, 과학 연구를 하기 위해 우리 모두는 어떤 승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허가가 종종 여자보다 남자에게 더 많이 주어지는 건 (능력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깊이 뿌리내린 인식 때문이다.” 김여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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