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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극단주의자들을 왕따시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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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1-0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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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네트워크|인도-파키스탄 지식인의 편지교환

인도가 파키스탄에게- 미국 비위를 맞추기 위한 신냉전의 추악한 경쟁을 버려야 할 때

인도에서 정체불명의 집단에 의한 의사당 테러공격이 잇따르면서 인도-파키스탄 국경엔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이미 중앙아시아가 세계분쟁의 핵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남아시아마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인가. <한겨레21>은 인도-파키스탄 지식인의 편지교환을 통해 두 나라의 오늘과 미래를 밝혀본다. 편집자

존경하는 나야르에게.


요즘 우리 두 나라를 뒤덮은 전운을 자네도 그곳에서 느끼리라 믿네. 또 최근 네팔의 ‘남아시아회의’에 참석한 인도의 바지파이 총리와 파키스탄의 무샤라프 대통령이 대화마저 나누지 않아 우리를 실망시킨 건 자네쪽에서도 마찬가지겠지?

이번 사태는, 지난해 12월13일 델리의 의사당 공격사건을 우리 인도 정부가 파키스탄의 무장 테러리스트들에 의한 조직적인 도발이라고 발끈하면서부터 비롯된 셈인데, 사실은 이 모든 것들이 쉽게 단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생각이 드네.

그들은 ‘9월11일’을 기다렸다네

자네도 알다시피 비슷하게 생긴 인도사람과 파키스탄 사람들을 겉보기로 쉽사리 가려낼 수 없는 데다가, 무슨 무슬림 이름을 내건들 또 그리 쉽게 정체를 가릴 수 있는 일도 아니지 않던가? 파키스탄이 이슬람 국가라고는 하지만 인구로 따져보면 우리 인도의 무슬림 숫자가 자네들보다 더 많은 상황이니 말일세.

이런 가운데, 두 나라가 국경에 20만여명의 병력과 화력을 배치하고 정치가들이나 군장성들은 핵 운반능력을 지닌 미사일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이야기하고 있으니, 요즘 우리 시민사회는 무거운 긴장감에 억눌려 있다네. 이건 11억5천만명의 인구를 지닌 우리가, 이미 수백번이나 핵 몰살의 순간까지 달려갔던 지난 냉전기의 그 끔찍했던 경험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뜻이지 않겠나? 하기야 지난 1999년 ‘칼길대결’로 불렀던 그 뜨거웠던 여름의 충돌만 해도, 인도와 파키스탄이 13번씩이나 핵무기로 서로를 위협했던 일이 있었으니 새삼스런 일도 아니지만.

어쨌든 6개월쯤 전 바지파이-무샤라프의 아그라정상회담 바로 직전 내가 파키스탄에서 느꼈던 그 희망과 새로운 출발의 기운들이 양쪽의 강경파들에 의해 파괴당하는 걸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구먼.

돌이켜보면, 바지파이 총리와 그 추종자들에게 ‘9월11일의 공격’은 기다려왔던 기회의 시간과 같은 것이 되면서, 현재 우리 인도-파키스탄의 충돌까지를 모두 정당화하는 매력적인 밑감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네. 특히 인도가 오랫동안 불평해왔던 파키스탄의 월경테러를 미국 부시 대통령에게 확신시킬 수 있었으니 말일세. 그러면서 한때 비동맹독립노선의 상징이었던 우리 인도는 이제 미국의 대테러 전쟁에 선봉장 노릇을 자처하는 꼴이 되고 말았지만.

파키스탄도 별다를 바가 없기는 마찬가지겠지? 이제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는 미국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신냉전의 추악한 경쟁만 남았다는 생각을 해본다네. 사실 인도는 그동안 워싱턴을 향해 파키스탄 군부와 거리를 두도록 강력한 로비를 펼쳐왔지만, 결국 9월11일 공격으로 상황은 예기치 않게 파키스탄쪽으로 급격히 기울고 말았지.

미국은 보복전의 타격목표로 설정한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맞댄 지리·군사적 활용도와 탈레반에 대한 정보력을 지닌 파키스탄을 필요로 했고, 즉각 이슬라마바드는 대테러 국제동맹의 중심축에 끼게 됐지. 반면 인도는 4개의 바퀴 정도가 되고 만 셈인데, 이게 인도 우익정치가들 사이에서 큰 분노를 낳았다네.

인도 무슬림은 파키스탄 5중대?

사진/ 지난해 10월1일 인도 카슈미르 스리나가르 주의회 의사당에서 일어난 자살폭탄 테러 현장. 지난 1월2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테러가 일어났고, 지난해 12월13일엔 델리 의사당에서 테러가 있었다.(AFP 연합)
그로부터 석달 뒤인 12월13일, 델리의 의사당이 일단의 테러리스트들로부터 공격을 받으면서 시민사회는 다시 한번 충격을 받게 되었지. 그러자 우리 인도 정부는 급히 파키스탄에 본거지를 두어왔던 테러리스트그룹 두개를 비난하면서 결국 월경테러에 대한 중대한 전쟁 선언을 하고 말았지. 인도 정부는 라슈카리토이바라는 단체를 비난하더니 곧 자이쉬모함메드라는 단체를 범인으로 몰아붙였는데, 이 두개는 전혀 별개의 단체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경쟁관계에 있는 조직이라네.

경찰이 부수적이고 추상적인 증거를 내세워 범인으로 지목한 자이쉬모함메드, 이게 수사결과인 모양인데, 내가 보기에 파키스탄쪽에 여러 무장테러 단체들이 활동해온 건 사실이지만 12월13일 테러공격에 대해서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 상태라는 생각이 들더군. 게다가 완벽한 결백을 주장하는 파키스탄 정부의 거짓말도 이번 의사당 테러사건을 풀어가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고.

이런 가운데, 12월13일 의사당 테러로 상처를 입은 뉴델리는 파키스탄이 지원하는 극단주의 단체들을 비난하는 국제사회의 주장을 업고 대파키스탄 적개심을 높여가며, 파키스탄에는 모든 범죄자들을 넘겨주고 테러단체와 손을 끊어라고 주문하고 있는데, 그 과정을 보면 9월11일 공격을 빌미로 마치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던 일이나 또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공격했던 것과 매우 닮았지 않던가?

이번 사태를 놓고 인도가 군대를 증강하면서 파키스탄에 가혹한 제재를 가한 것도 그 일환이라네. 철도를 비롯해 육상교통과 항공로마저 끊어버렸고 외교적 지위와 기능도 축소시켜버렸으니. 내가 볼 때 이런 조치들은 일반 시민들에게 지장을 주면서, 특히 양국간의 시민 대 시민의 교류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고 말았다네. 그러면서 요즘 들어 좀더 고단위 보복을 거론하고도 있다네. 파키스탄에 대한 최혜국 대우나 인더스강 유역에 대한 수자원 공유조약 같은 것들을 모조리 폐기하자는 식으로.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맞서, 다행스럽게 우리쪽의 평화운동 진영에서는 파키스탄과 완전한 관계회복을 요구하며 현재 우리 정부를 윽박지르고 있지. 2000년 11월 전쟁광에 반대하는 소리를 지닌 약 200여개의 단체들이 결성한 ‘핵무장 해제와 반핵을 위한 연대’ 주최로 지난해 크리스마스날 인도게이트에서 멋진 시위를 벌이기도 했고. 또 평화운동 단체들은 ‘평화를 위한 시민’에 서명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바지파이 총리가 이끄는 광적 힌두주의 우익 브하라티야 자나타당(BJP)을 공격하기도 했지. 이 쟁점들은 인도의 최대 주인 우타르 프라데시의 다음달 지방의회선거에서 크게 부각될 것으로 여겨지는 가운데, 바지파이 총리의 BJP당은 무슬림은 모두 파키스탄이 지원하는 테러리스트라는 공식을 들고 나올 태세라네.

“인도의 무슬림을 파키스탄의 제5중대로 간주한다.” 파키스탄이 인도 내부의 무슬림 국민을 통해 인도를 공격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말하자면 파키스탄에 대한 적개심을 활용해 극우들이 생존의 공간을 확보해나간다는 뜻인데, 사실은 이게 만만찮게 힘을 얻고 있어 크게 염려하고 있다네. 그뿐인가, 국제사회에서도 인도가 연성국가의 이미지를 지닐 수 없는 까닭이 바로 이 파워 엘리트들, 특히 BJP당이 이데올로기로 군사적 민족주의를 내걸고 미국과 이스라엘에서 모델을 찾아온 탓이라네. 자네도 익히 알고 있듯이, 이런 왜곡된 가치들이 현재 인도-파키스탄 분쟁의 뿌리로 자라왔지.

무샤라프 대통령에게 바라는 일

사진/ 지난해 12월13일의 델리 의사당 테러 직후 파키스탄 국경지역으로 이동하는 인도군 탱크부대. 두 나라 군부는 핵 사용 가능성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말하고 있다.(AFP 연합)
보세. 인도 정치가들은 우리가 파키스탄에 다시는 또다른 ‘칼길’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없다는 걸 그들의 삶 속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해왔는데, 둘 다 핵무장국이라는 걸 놓고 본다면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환상일 뿐이지. 자네의 파키스탄쪽에도 이들과 똑같은 매파들이 득세하면서 완전한 승리로 인도를 가르쳐야 한다는 논리가 있듯이 말일세.

‘완전한 승리.’ 두 핵 무장국 사이에 이런 표현은 매우 위험한 의미를 지니지 않겠는가? 핵전쟁에서 승리자가 있겠는가?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종말적인 결과를 지닌 핵전쟁 수준으로 상승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에도 없다는 걸, 양쪽 시민들은 익히 알고 있는 일인데도. 그럼에도 두 나라의 정치가들은 우리 시민들을 절망상태에 던져놓고 있으니, 이건 바로 두 정부가 완전한 파산을 하고 있다는 신호로밖에는 볼 수 없겠지?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겠나? 어떻게 우리의 정치가들이 지닌 극단적인 정책이나, 특히 미국이 주목하는 반테러 안보를 내건 지역적 전쟁행위에 빌붙어 상승하는 무장철학을 차단할 수 있겠는가? 어쨌든 양쪽 시민들의 입장 속에서 그 길을 찾아보세.

무엇보다 인도 우익 정치가들이 운항할 수 없게 바람을 잠재우는 길부터 찾아야 하는데, 이건 현실적으로 파키스탄의 무사랴프 대통령이 인터폴로부터 수배를 받고 있는 국제적인 테러리스트 20명 가운데 인도로부터 낙인찍힌 한명을 넘겨주는 일이 될 듯싶네. 그러면 인도는 무샤라프에 대해 진실함을 얻게 될 것이고, 그 일로 군사적 긴장을 녹이면서 지난 아그라 정상회담으로 되돌아가 차근차근 실타래를 풀어낼 수 있다는 희망이지. 이게 우리쪽 평화운동가들의 바람이고, 또 현재 바지파이 총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네.

만약 자네 쪽에서도 무샤라프 대통령에게 극단주의자들과 거리를 두도록 압력을 가한다면, 우리는 극적인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네. 시도하세. 비록 갈 길이 멀고 험해도, 그 길은 양쪽의 시민들이 결집하는 일뿐이라네. 수십억의 생명과 자유가 걸린 문제라네. 그럼 건강하기를 빌면서 이만.

2002년 1월6일 델리에서


프라풀 비드와이(Praful Bidwai)
전 <타임 오브 인디아> 편집장·핵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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