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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성폭행범 경찰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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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1-0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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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감옥에 갇힌 멕시코 여가수의 ‘임신 사건’… 경찰 간부에게 성폭행당한 것으로 밝혀져

사진/ 사진책에 실린 트레비의 모습. 풀어헤친 금발머리와 찢어진 청바지는 멕시코 10대 소녀들의 유행이 되기도 했다.
1998년의 마지막날인 12월31일, 당시 28살이었던 멕시코의 인기 가수 글로리아 트레비가 브라질 땅을 처음 밟았을 때, 그 자신은 어떤 시련이 앞에 기다리고 있는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글로리아 트레비는 16살에 쇼비즈니스에 입문하고 20살에 솔로 가수로 대박을 터뜨렸다. 조국인 멕시코와 주변 국가를 비롯해서 미국의 라틴아메리카 커뮤니티에 이르는 수많은 팬을 갖고 있는 국제적인 인기 가수로 명성을 얻었다. 글로리아 트레비의 데뷔 앨범과 후속 앨범 2장은 5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했고 93년에 그가 출연한 영화 <자파토스 비에호스>는 멕시코 영화사상 최고 흥행 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100만부가 팔려나간 사진책에 실린 그의 모습, 풀어헤친 금발머리에 관능적인 몸매를 드러내는 타이트한 티셔츠, 찢어진 청바지 차림은 멕시코의 10대 소녀들이 열광적으로 모방하는 유행 아이콘이었다.

매춘 강요 혐의로 쇠고랑


그러나 브라질 시장을 겨냥해서 포르투갈어로 앨범을 내자는 BMG 레코드사의 제안을 받고 매니저와 밴드 동료들과 리오데자네이루에 도착한 지 4개월 만에 본국 멕시코에서 스캔들이 터졌다. 애인이며 글로리아 트레비의 첫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한 매니저 세르지오 안드라지가 글로리아의 쇼 공연에 출연하는 무용수와 백그라운드 싱어들인 소녀들을 대상으로 성폭행과 매춘 강요를 일삼았다는 내용이었다. 급기야 2000년 1월 멕시코 정부의 신병 인도 요청을 받은 브라질 경찰이 글로리아 일행을 구속했다. 1년 뒤에 브라질 법원에서 추방 명령을 내렸지만 일행은 망명을 요청하며 계속 브라질리아 교도소에 남았다.

2년 가까이 복역중이던 글로리아 트레비가 임신 5개월이 됐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은 지난해 10월이었다. 교도소에 갇혀 있는 재소자가 어떻게 임신을 할 수 있었느냐는 의문에 대해 브라질 경찰당국은 그가 같은 교도소의 남자 재소자로부터 성폭행당했다고 발표했다. 강간범으로 몰린 재소자가 분개한 다른 재소자들로부터 반주검이 되도록 두들겨맞고 병원에 실려가는 사태가 발생하고 여론이 들끓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글로리아가 브라질 국적의 아이를 출산해서 멕시코로의 추방을 면하기 위해 임신을 자초했다고 둘러댔다. 남자 수감자로부터 볼펜통에 담은 정액을 공급받아 인공수정을 했다는 것이었다.

과연 이런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꾸며대가며 교도소와 경찰당국이 숨기고자 하는 사실은 무엇일까. 의혹이 증폭되는 가운데 글로리아 트레비가 브라질 감옥 안에서 경찰 내부인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해 임신에 이르렀다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그러자 인권단체에서 진상규명에 나서고 신문기자들이 교도소 안에서 트레비에게 일어난 일을 확인해줄 증인들을 찾아내 폭로기사를 싣기 시작했다. 정부를 비판하는 여론도 확산됐다.

볼펜통으로 인공수정 했다?

지난해 12월 셋쨋주에 국회의 인권조사위가 교도소를 방문해 트레비와 면담한 자리에서 그는 처음으로 경찰 간부에 의해 성폭행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 이전까지는 생명의 위협을 두려워하며 성폭행 사실 자체를 부인하지도 시인하지도 않았다. 경찰쪽에서는 트레비가 성을 상납해서 형무소 내에서의 이득을 누리는, 일종의 매춘을 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설령 그랬다 했을지라도 마땅히 책임은 재소자가 아니라 교도소 당국에 물어야 한다.

마침내 연방법원은 트레비의 망명신청을 거부한 망명심사위원회의 판결을 기각했고 대법원으로부터 임신 8개월의 산모를 병원으로 송치하라는 결정이 나왔다. 브라질리아 경찰당국은 트레비가 수감돼 있던 교도소의 전 직원과 남자 수감자를 대상으로 DNA 테스트를 실시했으며 올 1월 말에 아이가 태어나는 대로 아버지, 즉 범인을 밝혀내겠다고 발표했다. 글로리아 트레비는 지난해 12월26일 한 병원으로 옮겨져 출산 때까지 그곳에서 머무를 예정이다. 서툰 포르투갈어로 써서 대법원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자신과 태어날 아이에게 안정과 인간적인 보살핌을 허락해준 브라질 국민들의 온정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상파울루=오진영 통신원 ohnong@ig.com.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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