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balmori.com 갈무리
그는 스페인 빌바오의 30만m² 규모 하안 개발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쇠퇴한 공업항구 도시였던 빌바오는 민관협력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거듭난 대표 사례로 언급된다. 발모리는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 근처 아반도이바라 지역과 네르비온강 유역을 통합하는 마스터플랜을 세웠고, 도시 중간에 대규모 녹지를 조성해 중심공간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도시를 연결하는 작업에도 참여했다. 그 밖의 작업으로 브로드웨이 684번지와 배터리파크시티의 고급아파트 솔레어 등 미국 맨해튼의 다양한 옥상정원들, 코네티컷 뉴헤이븐과 멤피스 미시시피 강가를 잇는 폐철로를 기다란 선형 공원으로 전환한 프로젝트, 빗물을 보관해 홍수를 방지하도록 설계한 미네소타의 프레리 워터웨이 스톰워터 파크 등이 있다. 발모리가 생태적 문제에만 천착한 것은 아니다. 그가 생각한 조경 개념은 “모든 조각을 한자리에 모으는”(<뉴욕타임스>) 것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건축물이나 도로만이 아니다. 사회적 요소, 지질학적 요소, 기후 요소이기도 하다. 훨씬 복잡한 혼합물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발모리가, 도시가 생태적 문제뿐 아니라 사회적 문제 역시 함께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워싱턴DC 11번가 브리지파크의 마스터플랜 공모를 예로 들었다. 최종 선정에서 탈락한 이 공모에서 그가 제안한 녹색화는 주변 젠트리피케이션을 완화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미국인의 잔디 사랑은 생태적 시대착오’ 비판 다이애나 발모리는 1932년 6월4일 스페인의 히혼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영국 출신 음악가, 아버지는 스페인의 언어학자였다. 스페인 내전 때 가족 전체가 영국으로 피란했고, 아버지가 아르헨티나 투쿠만 국립대학에 교수 자리를 얻으면서 다시 아르헨티나로 이주했다. 발모리는 아르헨티나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 미래의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세계의 랜드마크와 초고층 빌딩을 여럿 지은 건축가 시저 펠리다(그는 1980년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빌딩을 설계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들은 함께 1952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발모리는 1973년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에서 도시역사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1년 뒤인 1974년 뉴욕주립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이곳에서 선구적 조경디자이너 비어트릭스 페란드에게 관심을 갖게 돼 동료 학자들과 함께 책 <비어트릭스 페란드의 아메리칸 랜드스케이프>(1985)를 썼다. 페란드는 워싱턴의 덤바턴오크스 정원의 수석디자이너이자 예일대학, 프린스턴대학 등의 캠퍼스를 디자인한 인물. 차츰 조경은 발모리에게 큰 관심 대상이 되어갔다. 1980년에는 남편 시저 펠리의 건축설계회사 ‘시저펠리&어소시에이츠’에 합류해 그 전까지 없던 조경설계 분야를 새로 만들고, 1990년 자신의 회사를 차리기 전까지 남편과 함께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발모리는 동료 학자 2명과 함께 <미국 잔디의 재설계>(1993)라는 인상적인 책을 펴내기도 했다. 이들은 미국에서 잔디가 지속적 사랑을 받아온 이유에 대해 산업적·사회적 배경을 들어 분석하며, 미국인들의 광적인 잔디 사랑을 거짓 자연주의, “생태적 시대착오”라고 비판했다. 이후 발모리는 오랫동안 예일대학 건축학부와 삼림학부, 환경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워싱턴 덤바턴오크스 연구도서관에서 정원과 조경 연구 분야의 선임연구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가장 최근 저서는 <그라운드워크: 조경과 건축 사이>(2011)와 <랜드스케이프 매니페스토> (2010)다. <그라운드워크>는 건축과 조경은 생태환경 회복을 위해 총체적 개념으로 인식돼야 한다는 최근의 지속적인 주장을 담고 있다. <랜드스케이프 매니페스토>에선 발모리가 실제 조경설계 작업을 할 때 기준으로 삼은 25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최근 눈길을 끌었던 것은 2015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진행한 ‘플로팅 랜드스케이프’ 프로젝트다. 발모리는 미국 내에서 가장 오염이 심한 브루클린의 고와너스 운하에 ‘그로온어스’(GrowOnUs)라는 이름의 작은 정원을 띄웠다. 플라스틱 하수관을 화분처럼 재활용한 부표 위에 흙과 돌을 깔고 자생식물을 심어, 말 그대로 하나의 섬, 자연을 조성한 것이다. “자연이 도시에 담기는 것 아니다” 발모리는 이 섬이 도시공간을 호수나 강으로 확장할 수 있는지 실험하는 일종의 프로토타입, 즉 시제품이라고 말했다. 후일 도시 거주자들이 농작물을 키워 먹을 수 있는 훨씬 더 큰 규모의 섬 조성을 염두에 두었다는 것이다. 발모리는 당시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어떤 도시들은 더 이상 이용 가능한 큰 땅이 없다”며 “이는 집약적 생산이 가능한 땅을 만들어내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제 도시에 단순히 공원이나 녹지를 추가해놓고 ‘생태도시’라고 말하던 시대는 지났다. 발모리는 2012년 미국조경설계협회 주간 뉴스 사이트 <더트>와의 인터뷰에서 “자연이 도시에 담기는 게 아니라, 도시가 자연에 담겨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도시의 모든 시스템이 자연의 시스템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9세기 도시에서 상하수도 시스템은 아주 중요한 것이었고 도시를 성장시켰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프로젝트별로 물을 모을 수 있고 한 장소에서 그것을 처리해 정수하고 재이용하며, 그중 일부를 공장의 증발산을 통해 대기로 되돌려보낼 수 있는, ‘자연적 시스템’을 갖고 있다. (…) 거대 도시에 일괄적으로 이 방식을 적용하기란 힘들 것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지역 단위 시스템에 자연을 닮은 방식을 도입해 조금씩 도시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그때 도시는 자연에 담기게 될 것이다.” 이로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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