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SNS 진압할 시간
총리 시절 트위터 비난한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쿠데타 진압에 소셜미디어 활용해
등록 : 2016-07-25 21:23 수정 : 2016-07-29 17:45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7월20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뒤 연설하고 있다. 쿠데타 실패 뒤 이어진 대숙청에 세계가 우려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터키 군부가 쿠데타를 시도한 7월15일 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의 제이넵 투펙치 교수는 터키 남부 안탈리아 공항에서 이스탄불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투펙치 교수는 7월18일 <뉴욕타임스>에 쓴 ‘인터넷은 자신(인터넷)을 싫어하는 터키 대통령을 어떻게 구할 수 있었나’라는 제목의 글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쿠데타를 조기에 진압하는 데 소셜미디어를 효과적으로 활용했다고 분석했다.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소식에 수많은 우려와 걱정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그 와중에 한 가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건 스마트폰 데이터였습니다. 그 밤늦은 시각에 터키 최대 통신사가 모든 가입 고객의 데이터 사용을 무제한으로 전환해주었습니다.”
에르도안 대통령과 여당인 정의개발당은 정부에 길들지 않겠다는 비판적 언론인들을 무더기 해고하고, 네티즌 수천 명을 대통령 모욕죄로 기소한 적이 있다. 정보 흐름을 제한하고 소셜미디어를 통제하려는 의도였다. 쿠데타가 벌어진 상황에서 터키 최대 통신사가 갑작스럽게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로 무료 전환을 해준 게 뜬금없어 보일 수밖에 없었지만, 이내 그 이유가 밝혀졌다.
에르도안은 쿠데타가 벌어지자 스마트폰 화상 방송을 통해 “나는 무사하며 쿠데타를 인정하지 않는다. 시민들은 지금 당장 거리로 나가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에 맞서달라”고 호소했다. 터키 국민이 대통령 담화를 시청하고, 이를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트리는 데 이용하라고 스마트폰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바꿔준 것이었다.
에르도안은 800만 명 넘는 자신의 트위터 팔로어에게 직접 쿠데타를 막아달라고 호소하는 트윗을 남기기도 했다. 쿠데타가 시작되고 몇 시간 만에 군인들은 거리로 쏟아져나온 군중에 압도당했다. 야당도 이내 쿠데타를 규탄하는 성명을 잇달아 트위터에 올렸다. 트위터에는 ‘쿠데타 반대’라는 뜻의 #darbeyehayir라는 해시태그가 넘쳐났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퍼진 정보와 국민의 즉각적인 반응은 추이를 지켜보다 쿠데타에 동참하려던 군인들의 마음을 돌렸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불과 3년 전 총리 시절, 게지 공원에서 시작된 반정부 시위인 ‘나무혁명’ 당시 시위대가 시위를 조직하고 정보를 퍼뜨리는 데 소셜미디어를 적절히 활용하자, 트위터를 “터키 사회에 가장 큰 위협”이라며 맹비난했다. 또 나무혁명에 참여한 이들을 쿠데타 세력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투펙치 교수는 자신이 아는 나무혁명 참가자들 대부분은 이번에 벌어진 ‘진짜 쿠데타’에 명백히 반대했다고 꼬집었다.
에르도안은 자신이 쿠데타 세력으로 규정했던 나무혁명 시위대의 전략을 효과적으로 빌려 썼다. 쿠데타를 제압하는 데 인터넷과 언론의 자유가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투펙치 교수는 “이번 일을 계기로 에르도안 대통령은 자신과 다른 의견에 모조리 불법 딱지를 붙이고 억압하려는 시도를 당장 그만두고 검열 정책과 언론 정책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탱크가 시민의 공간에 모습을 드러내는 급박한 상황에 처해지지 않더라도 언론 자유, 정보 유통은 언제나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