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올랜도 총기 테러가 발생한 6월12일, 시민들은 백악관 앞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여섯 빛깔 무지개 깃발’을 걸었다. 이 깃발은 1978년 이후 성소수자의 정체성과 존엄성을 상징하는 의미로 쓰였다. 이번 테러가 일어난 게이클럽 이름 ‘펄스’(PULSE)가 새겨졌다. REUTERS
오바마 대통령이 언급한 FBI의 감시 명단에 마틴이 두 차례나 포함된 적이 있었다. 첫 번째는 2013년 “직장 동료에게 자신이 해외 이슬람 테러조직의 일원이며 FBI가 조사하면 이슬람을 위해 순교자가 되겠다고 말했다”는 신고가 들어온 거였다. 이듬해 마틴이 미국인 IS 테러리스트 모너 모하마드 아부살라와 친한 사이라는 것이 알려진 뒤 FBI는 다시 마틴의 뒤를 캤다. 아부살라는 미국에서 시리아로 건너가 자살폭탄 테러를 일으켰는데, 미국에 있을 때 마틴과 같은 모스크에 다니며 친분을 유지했다. 하지만 FBI의 두 차례 조사에서 테러 모의 혐의는 발견되지 않았고, 이후 마틴은 ‘감시 명단’에서 빠졌다.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마틴은 직장 동료에게 하루 수십 통씩 문자를 보내는 등 정서적으로 불안했고 양극성장애(조울증) 증상을 보였다. 자신의 아내에게도 “외부 활동을 하지 말고 집 안에만 있을 것”을 강요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사회·문화적으로 보수적인 인물이었다. 그가 이슬람 극단주의 사상에 물들어 테러를 저질렀는지, 동성애 같은 성소수자에 대한 개인적 증오가 테러 동기가 됐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분명한 건 또다시 끔찍한 총기 사고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에선 ‘총기 소지 자유화’ 논란이 대선 쟁점으로 뜨겁게 번지고 있다. 특히 각각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확정된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가 이번 사건의 원인과 해결책을 놓고 정면 충돌했다. 게이클럽에서 총기 테러가 일어난 만큼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서도 둘은 부딪치고 있다. “이번 테러로 큰 충격과 상처를 받았을 성소수자 여러분, 여러분과 연대하는 수많은 미국인 가운데 저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클린턴) “테러범인 극단주의 이슬람교도를 계속 받아들이자고 주장하면서 무슨 낯으로 동성애자들에게 위로를 건넵니까?”(트럼프) “선정적인 반이슬람주의를 퍼뜨리고 무슬림 미국인들의 가족과 친구, 사업이나 여행 목적으로 미국을 찾는 무슬림 모두에게 미국 땅을 밟지 못하게 하자는 주장인가요? 평화를 사랑하고 테러를 단호히 거부하는 대다수 무슬림 미국인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입니다.”(클린턴) “저 살인마가 왜 이 땅에 살게 됐죠? 솔직히 생각해보세요. 미국이 애초에 그 부모를, 가족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슬람의 극단적인 사상 자체는 서구의 가치, 제도와 근본적으로 맞지도 않아요.”(트럼프) “테러리스트들이 공격을 감행하는 데 쓸 무기를 쉽게 구하지 못하도록 규제를 강화해야 합니다. 특히 올랜도와 샌버너디노에서 쓰인 공격용 총기 같은 살상무기의 판매는 당장 막아야 합니다.”(클린턴) “클린턴은 미국인들에게 총을 빼앗으려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몰살시키려는 테러리스트를 받아들일 궁리를 하고 있어요. 적들이 우리 땅에 오는데 우리에겐 더 이상 총이 없습니다. 이제 저들은 원하는 대로 이 땅에서 활개 치고 다니겠죠.”(트럼프) “FBI가 잠재적으로 테러에 가담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 관찰하고 있는 사람이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총을 살 수 있다는 건 말도 안 됩니다. 반드시 고쳐야 합니다.”(클린턴) 이 대화는 <뉴욕타임스>가 올랜도 테러 직후 클린턴과 트럼프의 연설 일부를 골라 논쟁 형식으로 이어붙인 것이다. 민주-공화 대선 후보가 ‘총기’ ‘이민’ 같은 사안에 대해 첨예하게 정반대 주장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슬림 배척은 호응 못 얻어
올랜도 총기 테러 이후 ‘총기 규제’가 미국 대선에서 최대 쟁점 가운데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왼쪽)는 “살상무기 판매를 당장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는 “클린턴은 적들을 막을 총을 없애려 한다”며 반박한다. AP,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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