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법정에 이어 헤이그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전범 국제법정’ 참관기
“히로히토 일본 천황을 비롯한 9명의 사령관에 대해서 ‘강간 및 성노예에 관한 반인도적 범죄’를 인정, 유죄를 확정한다.”
12월4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2000년 일본군 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의 최종 판결내용이다. 군위안부 여성의 역사 56여년 만에, 또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첫 증언이 이뤄진 10여년 만에 열린 이 최종판결에서 가브리엘 커크 멕도날드(미국), 크리스틴 친킨(영국), 카르멘 마리아 알히바이(아르헨티나), 윌리 무퉁가(케냐) 등 4명의 판사는 아시아 피해국 12개국의 각국 검사 및 대표단 그리고 피해자 12명을 비롯한 2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이렇게 선언했다.
의미있는 판결, 그러나…
‘일본군 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은 위안부 여성 및 피해국 여성인권단체들의 힘으로 마련된 민간법정으로 일본 정부로 하여금 이날 선고된 내용을 이행토록 하는 법적 구속력은 없다. 하지만 이 법정은 2000년 12월의 도쿄법정에서 제기된 기소사항을 가지고 국제 정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헤이그에서 일본군의 성노예제에 대한 책임을 물어 일본 천황을 포함한 10명의 전범자(히로히토, 안도 리키치, 하타 슈로쿠, 이타가키 세이지로, 고바야시 세이조, 마쓰이 이와네, 우메즈 요시지로, 데라우찌 히사이치, 도죠 히데끼, 야마시다 토모유끼)를 유죄로 확정한 재판이라는 점에서 그 상징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지난 12월3일에서 4일까지 헤이그에서 열린 이번 재판에는 페트리샤 비저-셀러스(미국), 유스티니아 돌고폴(오스트레일리아) 수석검사 두명과 한국과 북한, 중국과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네덜란드, 말레이시아, 일본 외에도 이번에 새롭게 참가한 파푸아뉴기니와 타이 등 모두 12개국의 검사 및 관계자가 참가했다. 그리고 12명의 피해자가 법정진술을 했으며 이 진술을 위해 한국에서는 김은례 할머니와 북한에서는 곽금려 할머니가 참가했다. 38페이지에 달하는 판결 요약문을 통해 판사부는 광범위한 피해여성들의 증언과 각국 검사팀들이 제출한 정부 및 군사자료와 또 가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히로히토 천황 및 가해자 9명에 대한 유죄 확정의 근거를 밝혔다. 판사부는 “일본 정부는 1937년 난징 대강간사건 등을 계기로 정복지민들로 부터의 반일본 감정이 폭발하는 것을 막고 집단 대강간사건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차원에서 아시아·태평양지역에 광범위하고도 체계적인 위안소를 설치 운영했다”고 밝혔다. 이런 배경에서 월경이 시작되기도 전인 12살에서부터 20대 후반의 유부녀에 이르기까지 주로 젊은 여성들은 감금된 상태에서 심한 육체적 폭력, 강간, 윤간, 고문, 살해를 당하기도 했다. 판결이 끝난 뒤 240쪽이 넘는 판결문을 피해자에게 전달하는 의식에서 장내에 감동의 물결이 넘쳤다. 피해자는 물론 법정 참석자들 또 그동안 이 법정을 위해 헌신한 검사단, 관계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이 법정이 열리기까지 그들이 보여준 용기에 아낌없는 기립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이 판결은 ‘미완의 판결’이다. 판사부 구성에서 피해국 판사가 포함되지 않아 판결내용에 서구인의 시각이 반영되었으리라는 점 등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것과 함께 이 법정이 갖는 한계이다. 이 법정에 한국쪽 검사로 참가한 조시현 성신여대 교수는 이에 대해 “피해국 출신 판사는 편파적인 판결을 하리라는 의견과 또 서구인이 내린 판결이 일본사회에 더 호소력이 있을 거라는 일본쪽의 주장이 먹혀들어간 결과”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책임이 없는가 유일한 서구 피해여성으로 증언에 나선 네덜란드의 얀 루프 오헤른은 “우리가 당한 사실을 말할 수는 있어도 그 누구도 우리가 당한 고통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법정은 위안부 여성에 의한 새로운 여성의 역사쓰기는 가능한가 그리고 아직도 지구 곳곳에서 자행되는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어떻게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들을 새롭게 던지고 있다. “내가 될 수도 있었쟎아. 징용간 사람들은 돌아오는데 여자들은 안 돌아오는 거야. 정부가 깡패야…. 이렇게 해도 일본은 꿈쩍도 안 해.” 헤이그의 밤거리를 걸으며 윤정옥 대표가 한 말이다. 이제 일본 정부는 유죄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한국 정부 또한 이 유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이 문제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헤이그=글·사진 전소현/ 자유기고가

사진/ 2001년 12월4일 열린 헤이그 여성국제법정. 이번 법정에는 모두 12개국의 검사 및 관계자가 참여했다.
‘일본군 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은 위안부 여성 및 피해국 여성인권단체들의 힘으로 마련된 민간법정으로 일본 정부로 하여금 이날 선고된 내용을 이행토록 하는 법적 구속력은 없다. 하지만 이 법정은 2000년 12월의 도쿄법정에서 제기된 기소사항을 가지고 국제 정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헤이그에서 일본군의 성노예제에 대한 책임을 물어 일본 천황을 포함한 10명의 전범자(히로히토, 안도 리키치, 하타 슈로쿠, 이타가키 세이지로, 고바야시 세이조, 마쓰이 이와네, 우메즈 요시지로, 데라우찌 히사이치, 도죠 히데끼, 야마시다 토모유끼)를 유죄로 확정한 재판이라는 점에서 그 상징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지난 12월3일에서 4일까지 헤이그에서 열린 이번 재판에는 페트리샤 비저-셀러스(미국), 유스티니아 돌고폴(오스트레일리아) 수석검사 두명과 한국과 북한, 중국과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네덜란드, 말레이시아, 일본 외에도 이번에 새롭게 참가한 파푸아뉴기니와 타이 등 모두 12개국의 검사 및 관계자가 참가했다. 그리고 12명의 피해자가 법정진술을 했으며 이 진술을 위해 한국에서는 김은례 할머니와 북한에서는 곽금려 할머니가 참가했다. 38페이지에 달하는 판결 요약문을 통해 판사부는 광범위한 피해여성들의 증언과 각국 검사팀들이 제출한 정부 및 군사자료와 또 가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히로히토 천황 및 가해자 9명에 대한 유죄 확정의 근거를 밝혔다. 판사부는 “일본 정부는 1937년 난징 대강간사건 등을 계기로 정복지민들로 부터의 반일본 감정이 폭발하는 것을 막고 집단 대강간사건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차원에서 아시아·태평양지역에 광범위하고도 체계적인 위안소를 설치 운영했다”고 밝혔다. 이런 배경에서 월경이 시작되기도 전인 12살에서부터 20대 후반의 유부녀에 이르기까지 주로 젊은 여성들은 감금된 상태에서 심한 육체적 폭력, 강간, 윤간, 고문, 살해를 당하기도 했다. 판결이 끝난 뒤 240쪽이 넘는 판결문을 피해자에게 전달하는 의식에서 장내에 감동의 물결이 넘쳤다. 피해자는 물론 법정 참석자들 또 그동안 이 법정을 위해 헌신한 검사단, 관계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이 법정이 열리기까지 그들이 보여준 용기에 아낌없는 기립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이 판결은 ‘미완의 판결’이다. 판사부 구성에서 피해국 판사가 포함되지 않아 판결내용에 서구인의 시각이 반영되었으리라는 점 등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것과 함께 이 법정이 갖는 한계이다. 이 법정에 한국쪽 검사로 참가한 조시현 성신여대 교수는 이에 대해 “피해국 출신 판사는 편파적인 판결을 하리라는 의견과 또 서구인이 내린 판결이 일본사회에 더 호소력이 있을 거라는 일본쪽의 주장이 먹혀들어간 결과”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책임이 없는가 유일한 서구 피해여성으로 증언에 나선 네덜란드의 얀 루프 오헤른은 “우리가 당한 사실을 말할 수는 있어도 그 누구도 우리가 당한 고통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법정은 위안부 여성에 의한 새로운 여성의 역사쓰기는 가능한가 그리고 아직도 지구 곳곳에서 자행되는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어떻게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들을 새롭게 던지고 있다. “내가 될 수도 있었쟎아. 징용간 사람들은 돌아오는데 여자들은 안 돌아오는 거야. 정부가 깡패야…. 이렇게 해도 일본은 꿈쩍도 안 해.” 헤이그의 밤거리를 걸으며 윤정옥 대표가 한 말이다. 이제 일본 정부는 유죄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한국 정부 또한 이 유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이 문제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헤이그=글·사진 전소현/ 자유기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