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등 지난해보다 어두운 뉴스에 중점을 둔 보도… 북한은 언제나 건드릴 수 없는 괴물?
세계의 언론과 세계인이 보는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월드컵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다. <한겨레21>은 프랑스, 중국, 요르단을 표본으로 한국에 대한 각국의 이해가 어떤 모습인지를 다뤄본다. 편집자
“저 한국인입니다.” “북쪽이요? 남쪽이요?” “…그 중간요.” 필자가 프랑스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하는 농담 중 하나다. 대화상대에 따라서 가끔은 “남북이라니요? 동서로 나눠져 있는데요”라고도 해보는데, 의외로 대부분의 반응은 주춤거림이다. 다시 말해 대개 그런 농담은, 그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반문이 되며, 아주 소수가 그것이 농담임을 알아차릴 뿐이다. 그 소수 중의 또 소수가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고도 하지요?”라고 내게 물어주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는데, 그만큼 프랑스인들은 한국을 잘 알지 못한다.
<르몽드>의 자매지인 격월간지 <르몽드디플로마티크> 2001년 신년호 특집 ‘2001년 분쟁의 아틀라스’에 북한과 남한이 나란히 실렸다. 1년 전 같은 때 ‘2000년 분쟁의 아틀라스’에서는 실리지 않았는데, 올해 한국을 싣게 된 데는 지난해에 개최된 남북한 정상회담의 영향일 것이다. 그래서 ‘두 한국이 가까워질 때’라는 제목으로 기대 반 회의 반 섞어 남북정상회담 이후의 상황이 어떻게 진전될 것인가에 주목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의 언론들은 분단의 현실만 아니라 역사에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정상회담 계기로 분단문제 관심 2001년 5월29일과 6월15일치 <르몽드>의 ‘르몽드에 실린 50년 전 오늘’이라는 기사는 1951년 같은 날짜 <르몽드>에 소개되었던 수많은 기사들 중에서 한국전쟁의 상황을 대표적인 기사로 선택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기사들까지 유심히 읽은 이가 아니라면 한국은 다음과 같은 이미지로 다가올 것이다. “글쎄, 캄보디아 근처쯤 아닌가요? …분단된 나라지요? …아시아에는 가보지 않아서. …그래요? 서울올림픽이 한국에서 개최되었어요? 서울과 한국을 따로 생각했었어요.” “한국을 아느냐”라는 질문에 파리 시민 로랑스(38)는 이렇게 대답했는데, 이런 유의 답변은 로랑스뿐 아니라, 교육수준에 상관없이 흔히 들을 수 있는 답변이다. ‘같은 민족의 분단된 나라’는 한국의 가장 강력한 이미지며, 한반도의 긴장과 변동은 매년 프랑스 언론에서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한국 관련 기사다.분단이라는 비극과 통일이라는 서스펜스를 떨쳐버릴 수 없는 한국이라, 통일을 누구보다도 기리는 인물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의 사망소식이나, 현대아산의 부도소식은 분단상황과 결부되어 해석된다. 이런 취지로 <프랑스 국제라디오방송>(RFI)은 당시 현대그룹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산은 한국신화에 큰 자리를 차지한다. 바로 거기에 인간사와 신세계를 잇는 혼신을 묻는다. 남한과 북한을 이으며, 두 나라를 가르는 휴전선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금강산은 한반도의 유명한 굴곡을 만든다. 정상적인 한국인이라면 모두 거기를 순례해보고 싶으리라. 한반도 통일 논의의 상징 중 하나가 곧 사라지려 하고 있다.” 두개의 체제를 가진 두 나라인 한국(La Coree), 그래서 다루는 기사가 남한일 때는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일 때는 김정일 주석이 여러 번 언급됨은 당연하다. 하지만 Kim Dae-Jung/Kim Jong-il이라고 라틴 알파벳화된 이름 때문에 그 글을 읽는 사람들은 분명한 특색으로 구별하지 못한 채 넘어가기 일쑤다. 프랑스의 미디어가 ‘김대융그’로 발음하는 우리 대통령이 언급된 올해 프랑스 언론에는, 통일의지나 노벨상 수상 등의 밝은 색이 가미되던 지난해와는 달리,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고뇌하지만, 현지 노동시장의 다양한 장벽에 직면한 모습이 주류를 이루며, 통일문제와 관련해서는 ‘햇볕정책’ 언급도 잊지 않는다. “서울시청 앞의 현수막이 5월9일까지 베르디 페스티벌이 열린다는 것을 알리지만, 그것이 이 나라가 두팔을 벌려 외국인들을 환영한다는 뜻은 아니다…. 외국의 직접투자자본을 긴급히 받아들이는 쪽으로 투자환경이 개선되어야 하지만…”이라고 <르피가로> 4월25치가 싣고 있는가 하면, <르몽드> 5월29일치는 “한국, 대선이 필요불가결한 경제개혁을 배척한다/ 2001년 1/4분기 경제성장률 4.2%로 지난해 같은 때의 10.9%와 대조된다”는 내용이 1999년부터 계속 하향세를 보이는 국민총생산량의 도표와 함께 나란이 실리고 있다. 그런가 하면 기아문제와 미국의 미사일방어책, 친유럽경향, 그리고 김정일의 러시아 방문 등의 기회로 올해 프랑스 언론에 꽤나 실린 북한의 이미지는 언제나 한결같은 ‘건드릴 수 없는 괴물’이다. “폐쇄된 나라, 그래서 언론의 접근을 금지시키는 북한이 몇몇 기자들을 받아들이는 예외를 보였다. 본사의 특파원이 이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스탈린 나라의 수도 평양을 방문했다”라고 5월19일치 <프랑스 국제라디오방송>의 논설위원은 강한 수식어로 북한을 묘사하고 있다. 상대적인 한국
그렇다고 언론에 의해 불행한 이미지로 와닿는 한국의 모습만 프랑스에서 접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언론의 문화면에서는 90년대 후반 들어 많이 소개되고 있는 한국영화가 언급되기도 하는데, 지금 현재에도 파리에서 한국예술을 접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아시아박물관이라고 불리는 ‘기메박물관’이다. 거기엔 한국관이 따로 마련되어 있으며, 지난 10월부터 내년 1월까지 한국 병풍과 우판화가 특별전시되고 있기도 하다.
기메박물관의 한국 병풍들 앞에서 한참을 머물던 한 프랑스 남자를 보며, 그렇듯 한국 병풍을 음미하는 이 사람은 한국을 알까 싶어 물었다. 학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철학과에서 박사논문을 준비하는 음악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디디에레오는 한국의 미술작품에서 와닿는 형태의 리듬에 심취하여 그 내용을 자신의 논문에 인용할 것이라고 했다. “종교적인 깊이와 우아함이 완벽한 형태와 구상으로 조화를 이루는 이러한 감상은 한국 고유 미술작품 외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다”는 그의 말은 “우리가 절대적인 듯 느끼는 한국의 모습은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관점으로 다양하게 비쳐지는, 상대적인 한국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파리=글·사진 이선주/ 자유기고가

사진/ 아시아예술 박물관인 기메박물관의 한국 병풍·우판화 특별전시회 선전판. 기메박물관에는 한국관이 따로 마련돼 있다.
정상회담 계기로 분단문제 관심 2001년 5월29일과 6월15일치 <르몽드>의 ‘르몽드에 실린 50년 전 오늘’이라는 기사는 1951년 같은 날짜 <르몽드>에 소개되었던 수많은 기사들 중에서 한국전쟁의 상황을 대표적인 기사로 선택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기사들까지 유심히 읽은 이가 아니라면 한국은 다음과 같은 이미지로 다가올 것이다. “글쎄, 캄보디아 근처쯤 아닌가요? …분단된 나라지요? …아시아에는 가보지 않아서. …그래요? 서울올림픽이 한국에서 개최되었어요? 서울과 한국을 따로 생각했었어요.” “한국을 아느냐”라는 질문에 파리 시민 로랑스(38)는 이렇게 대답했는데, 이런 유의 답변은 로랑스뿐 아니라, 교육수준에 상관없이 흔히 들을 수 있는 답변이다. ‘같은 민족의 분단된 나라’는 한국의 가장 강력한 이미지며, 한반도의 긴장과 변동은 매년 프랑스 언론에서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한국 관련 기사다.분단이라는 비극과 통일이라는 서스펜스를 떨쳐버릴 수 없는 한국이라, 통일을 누구보다도 기리는 인물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의 사망소식이나, 현대아산의 부도소식은 분단상황과 결부되어 해석된다. 이런 취지로 <프랑스 국제라디오방송>(RFI)은 당시 현대그룹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산은 한국신화에 큰 자리를 차지한다. 바로 거기에 인간사와 신세계를 잇는 혼신을 묻는다. 남한과 북한을 이으며, 두 나라를 가르는 휴전선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금강산은 한반도의 유명한 굴곡을 만든다. 정상적인 한국인이라면 모두 거기를 순례해보고 싶으리라. 한반도 통일 논의의 상징 중 하나가 곧 사라지려 하고 있다.” 두개의 체제를 가진 두 나라인 한국(La Coree), 그래서 다루는 기사가 남한일 때는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일 때는 김정일 주석이 여러 번 언급됨은 당연하다. 하지만 Kim Dae-Jung/Kim Jong-il이라고 라틴 알파벳화된 이름 때문에 그 글을 읽는 사람들은 분명한 특색으로 구별하지 못한 채 넘어가기 일쑤다. 프랑스의 미디어가 ‘김대융그’로 발음하는 우리 대통령이 언급된 올해 프랑스 언론에는, 통일의지나 노벨상 수상 등의 밝은 색이 가미되던 지난해와는 달리,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고뇌하지만, 현지 노동시장의 다양한 장벽에 직면한 모습이 주류를 이루며, 통일문제와 관련해서는 ‘햇볕정책’ 언급도 잊지 않는다. “서울시청 앞의 현수막이 5월9일까지 베르디 페스티벌이 열린다는 것을 알리지만, 그것이 이 나라가 두팔을 벌려 외국인들을 환영한다는 뜻은 아니다…. 외국의 직접투자자본을 긴급히 받아들이는 쪽으로 투자환경이 개선되어야 하지만…”이라고 <르피가로> 4월25치가 싣고 있는가 하면, <르몽드> 5월29일치는 “한국, 대선이 필요불가결한 경제개혁을 배척한다/ 2001년 1/4분기 경제성장률 4.2%로 지난해 같은 때의 10.9%와 대조된다”는 내용이 1999년부터 계속 하향세를 보이는 국민총생산량의 도표와 함께 나란이 실리고 있다. 그런가 하면 기아문제와 미국의 미사일방어책, 친유럽경향, 그리고 김정일의 러시아 방문 등의 기회로 올해 프랑스 언론에 꽤나 실린 북한의 이미지는 언제나 한결같은 ‘건드릴 수 없는 괴물’이다. “폐쇄된 나라, 그래서 언론의 접근을 금지시키는 북한이 몇몇 기자들을 받아들이는 예외를 보였다. 본사의 특파원이 이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스탈린 나라의 수도 평양을 방문했다”라고 5월19일치 <프랑스 국제라디오방송>의 논설위원은 강한 수식어로 북한을 묘사하고 있다. 상대적인 한국

사진/ 성마리아씨의 결혼 파문을 실은 주간지 <누벨옵세르바테르>. 한국이나 한국인의 기사회되는 사건은 다양한다.
인터뷰|자크 드골피엠 교수 ![]() |
파리=글·사진 이선주/ 자유기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