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우울한가요?
미국 성소수자언론인협회 전 회장의 우울증 고백… 감추고 숨기려는 것들과의 싸움
등록 : 2016-02-25 02:02 수정 : 2016-02-26 19:08
우울증은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60% 정도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통계가 있다. 스티븐 페트로는 성소수자를 대하는 에티켓 전문가로 통하는 언론인이다. 미국 성소수자언론인협회장을 지낸 그는 성소수자에게 지켜야 할 현대인의 에티켓 지침서를 쓰기도 했다. 페트로는 2월8일 <뉴욕타임스> 건강 블로그에 자신이 우울증을 앓아왔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주변에 이를 알린 경험을 적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동안 페트로는 26살에 고환암 진단을 받고 이를 이겨낸 경험이나, 당시에는 사망 선고나 다름없던 후천면역결핍증(AIDS)으로 오진받은 경험 등을 글로 쓴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 지금껏 우울증을 앓아왔다는 사실은 밝힌 적이 없다. 페트로가 이번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친한 친구의 자살이었다. 자살의 징후는커녕 우울증의 낌새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고 친구를 떠나보내야 했던 페트로는 ‘우울증은 주변에 알린 뒤 도움을 발판 삼아 이겨내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깨닫고 실행에 옮겼다.
그는 자신의 우울증을 공개하기로 마음먹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를 털어놓았다. 그렇게 마음먹고도 섣불리 결심을 실행에 옮기지 못한 이유도 말했다. 그는 평생 독감을 앓는 것처럼 우울증이라는 병이 “너무 아파서” 이를 밝힐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했다. 세상이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정신 질병을 향한 사회적 낙인이 버거웠다. 페트로는 우울증 약인 렉사프로(Lexapro)를 복용한다는 이유만으로 애인에게 버림받았다. 암 병력 때문이 아니라 우울증 약을 복용한 기록 때문에 의료보험 가입을 거부당한 적도 있다.
흔히 ‘여성이 남성보다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통설이지만, 최근 우울증에 걸릴 확률은 성별에 관계없이 비슷하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미국 국립정신보건원은 미국 내에서만 최소 600만 명의 남성이 우울증으로 고통받는다고 추정한다. 자살 시도는 여자가 남자보다 더 많이 하지만 실제 자살로 숨지는 경우는 남자가 여자보다 4배 정도 많다. 남자가 여자보다 치명적인 자살 방식을 택하는 경향 때문이지만, 남자는 대개 자신의 우울증을 드러내려 하지 않고 전문적인 치료를 잘 받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은 지난 10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국가’라는 오명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도 항우울제 복용량은 OECD 국가 평균의 3분의 1로 최하위 수준이다. 이는 한국인이 정신 건강 문제를 드러내기를 꺼리고 적극적으로 치료받으려 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우울증 유병률은 오히려 OECD 평균인 20%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어쩌면 이는 스스로 우울증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울증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 결과일 수도 있다. 남성 중심의 문화는 여성뿐 아니라 남자에게도 억압이다. ‘사나이는 태어나서 세 번 운다’는 말이 회자되고 ‘남자답지 못하게’라는 노래가 유행하는 한국 문화에서 우울증이 온 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병을 키우는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자살은 예방 가능한 사고다. 우울증을 드러내고 치료받는 것은 자살 예방의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다. 우울증을 고백하고 주변에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소중한 사람을 보살피고 격려하는 건 우리 모두의 몫이다.
*이 글은 미국 현지에서 정신과 레지던트 과정을 밟고 있는 필진이 작성했습니다.
http://newspeppermint.com
※카카오톡에서 <한겨레21>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