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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라마단에는 조심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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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2-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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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세계|통신원 NG 리포트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라마단만 같아라.”

한달간의 라마단 금식에 쾌재를 부르는 중동인들도 많다. 대형 슈퍼마켓은 물론이고 동네 야채가게, 과일 상점, 푸줏간과 닭집도 손님들로 붐빈다. 해질녘을 30∼40분 남겨둔 오후 4시경부터는 KFC나 맥도널드 버거킹 등 패스트푸드 전문점은 음식을 주문하는 이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먹는 장사는 평소보다 30∼40% 이상의 매상을 올리는 분위기이다. 해가 지면 금식을 풀고 식사를 하려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기 때문이다. 묘한 것은 단축근무로 텔레비전 시청 시간이 길어져 라마단 기간에 가구점과 위성수신기 설치 업체도 상한가라는 점이다. 아이들도 쾌재를 부른다. 금식을 하지 않는 초등학생들은 단축수업 때문에 평소보다 더 많이 놀 수 있다.

요르단인 친구인 마으문은 저녁시간 ‘비쓰밀라’(이슬람 기도문)를 독백하듯 반복한 뒤에는 꼭 담배를 한대 피운다. 긴 담배 연기를 뿜어내면서 하루가 지나갔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라마단 한달 동안 무슬림들은 해 있는 동안 먹고 마시는 것이 금지되어, 그도 담배의 유혹을 하루 내내 떨쳐야만 한다. 가끔씩 금단현상으로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하루하루 금식을 마쳐간다는 성취감도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라마단 낮 금식은 골초들에게는 고난의 연속이다. “그러면 아예 이번 기회에 담배 끊어”라는 내 말에 “그래도 그게 잘 안 된다”며 웃는다.

요르단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다. 한 경찰이 “길거리에서 먹고 마시면 걸립니다”라고 경고했다. “무슬림이 라마단 금식을 어겼다고 처벌을 받는 것은 이해가 돼요. 하지만 외국인인데도 대낮에 남들 보는 곳에서 먹고 마시면 걸리나요?” “예, 한달간 구류를 살아야 해요.” 힘들긴 하지만, 무슬림의 성스러운 기간인 라마단의 문화를 편견없이 존중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했다. 어느날 아무 생각없이 입 안에 먹을 것을 오물거리면서 집을 나섰다. 그런데 골목길에서 오가는 사람들이 인사를 하면서도 의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문득 떠오른 생각 “아뿔싸! 남들 보는 데서 먹으면 안 되잖아.”

라마단 기간에는 차 운전하기도 힘들다. 집에 빨리 가서 허기를 채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 난폭 운전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차선위반이나 끼어들기는 기본이다. 중앙선을 넘어 버젓이 차를 몰고오는 사람들도 많다. 울려대는 자동차 경적소리와 벗하며 한두 시간 차를 몰다가 집에 돌아오면 이내 파김치가 되고 만다.


그러다보니 라마단 기간 동안 외국인들은 조심스러운 면이 많아진다. 낮 시간 동안 친구를 초대한다거나 비즈니스 상담도 금물이다. 밀린 끼니(저녁부터 새벽 3시까지 세끼를 다 먹는다)를 먹기 위해 잠을 설치기 때문에 아침은 졸음과 싸우는 이들이 많다. 지난해였다. 라마단이 끝나갈 무렵 미국을 잠시 방문했다. 공항에 도착했더니 사람들이 저마다 먹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있는 것이다. 순간 나는 놀라고 말았다. “저 사람들 저러면 안 되는데…. 경찰에 잡혀갈 텐데…”하며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요르단을 벗어나 있다는 것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책으로 보는 세계|<주아 칼리 케냐>

철가방의 경제학

‘비공식부문 경제’(informal sector economy)라는 경제용어가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1971년 케이스 하트가 가나의 경제를 설명하면서였다. 그러나 이 개념이 일반적인 경제용어로 뿌리내리게 된 것은 케냐에서였다. 케냐의 비공식부문 경제를 대표적으로 일컫는 말이 ‘주아 칼리’(jua kali)인데 스와힐리어로 ‘작열하는 태양’을 의미한다. 비공식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주로 도시 외곽의 노변이나 공터에 자리를 잡고 일하는데 비바람을 막아주거나 작열하는 태양으로부터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줄 지붕없는 작업환경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영국 에든버러대학 아프리카학연구소 소장인 케네스 킹이 케냐에서 현지조사와 노동자들과의 생생한 인터뷰를 토대로 역동적으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비공식부문 경제의 현장을 담아낸 책이 <주아 칼리 케냐: 1970부터 1995년까지의 비공식부문 경제의 변화와 발전>이다. 이론적 개설서와 달리 실증적 사례를 통하여 구조조정계획(SAP)으로 발생한 대량실업문제, 구조화되고 있는 빈곤문제에 대한 대안으로서 주아 칼리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주아 칼리 노동자들이 생산하는 제품은 다양하다. 기숙학생들이 학교생활을 시작할 때 생활필수품과 학용품 등을 넣은 철가방을 들고 학교로 모여드는 풍경을 케냐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런 철가방을 주아 칼리 노동자들이 만들어낸다. 아직도 많은 지역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깡통으로 만든 등잔, 숯을 넣어 취사용 도구로 쓰는 풍로(케냐에서는 지코라고 한다) 등은 긴요한 생활도구이며 주식인 옥수수 가루를 빻는 제분기 등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필요한 제품 생산은 물론 규모가 커지는 경우에는 버스나 차량의 차체도 제작한다.

주아 칼리의 태동과 성장은 정부와 공공부문의 총체적 위기상황과 직결되어 있다. 급증하는 인구성장에 걸맞은 정책의 부재와 비효율성은 실업문제, 빈곤의 구조화 등 사회적 제반문제를 야기해왔다. 경쟁력을 갖고 역동적으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주아 칼리 부문은 실효성 없는 계획과 집행으로 실패를 반복하는 정부와 공공부문의 실상이기도 하다.

주아 칼리 부문의 성장은 원조공여국의 대외원조기구와 비정부기구의 원조정책에 관한 방향설정에 있어 일대 전환점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각국정부의 정책에서도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도 소규모 창업을 유도하기 위한 금융상의 지원을 모색하고 있다.

일견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이는 주아 칼리 부문의 성장이 실은 정부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공공부문이 효율성과 공공성을 상실한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등지의 국가에서 두드러지는 점에 주목하면 장기적으로는 정부기능의 투명성과 공공부문의 효율성을 제고하여 주아 칼리를 주류경제로 편입시키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헨트=양철준 통신원 YANG.chuljoon@wanadoo.fr



암만=김동문 통신원 yahiya@hani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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