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t13.cl 갈무리
‘모방적 욕망’과 ‘희생양’ 개념은 평생에 걸친 그의 30여 권의 저작 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 그중에서도 첫 책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1961)과 뒤이어 출간된 <폭력과 성스러움>(1972), <희생양> (1982)은 이 개념을 세상에 알린 대표적 저서들이다. 인간의 욕망과 사회의 폭력 메커니즘에 대한 그의 사상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존 쿠체, 소설가 밀란 쿤데라 등 문학뿐 아니라 인문학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지라르는 1960년대 초 기독교로 개종했으며, 대표적인 희생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지목했다. 종교적 색채 탓에 찬사와 동시에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스탠퍼드대학의 로버트 포그 해리슨 문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그는 기독교의 진리를 믿었고, 그것은 동시대 학계에서 흔쾌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뉴욕타임스>)고 했다. 르네 지라르는 1923년 12월25일 크리스마스, 프랑스 남부 아비뇽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비뇽 박물관과 도서관에서 일했고 나중에는 아비뇽 교황청에서 일하기도 했다. 지라르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 그랑제콜 파리고문서학교에 진학했다. 파리고문서학교는 기록연구사와 사서를 기르는 전문학교다. 그는 ‘15세기 아비뇽의 결혼과 사적인 삶’에 대한 논문을 써 1947년 졸업했다. 1947년 여름 그가 친구와 함께 기획한 교황청에서의 미술 전시는 오늘날 매년 7월 아비뇽에서 열리는 종합예술축제 ‘아비뇽 페스티벌’이 되었다. 68년간 미국에 살며 프랑스어로 글 써 그로부터 몇 주 뒤, 지라르는 인디애나대학의 프랑스어 조교 자리 제의를 받고 미국으로 떠난다. 지라르는 <문화의 기원>에서 ‘다시 학교로 돌아가 아버지처럼 도서관이나 박물관에서 일할 생각을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중세의 케케묵은 고문서 사이에서 한평생을 보낸다는 것은 정말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죽기까지 줄곧 미국에 정착해 살며 프랑스어로 글을 썼다. 1950년 인디애나대학에서 논문 ‘미국인들의 프랑스관, 1940∼43’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인디애나대학에서 프랑스어 강사로 시작해 이후 듀크대학, 존스홉킨스대학, 뉴욕주립대학, 스탠퍼드대학 등에서 프랑스문학을 가르쳤다. 그의 이론과 사상은 활동 무대가 미국인 까닭에 프랑스보다 미국에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말년에는 프랑스 지식인 사회에서도 인정을 받아, 2005년 엄격한 선출 규정으로 유명한 ‘아카데미 프랑세즈’ 종신회원에 만장일치로 선출되기도 했다. 지라르는 1966년 존스홉킨스대학의 콜로키움 ‘비평언어와 인간과학’을 조직한 인물 중 하나다. 이 행사는 자크 라캉, 자크 데리다 등을 초청해 미국에 최초로 프랑스의 포스트구조주의를 소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지라르는 이를 두고 자신이 “흑사병을 미국에 가져왔다”고 농담했다. 그의 가장 대표적인 저작은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일 것이다. 책에서 그는 문학 속 인물들의 욕망 체계를 통해 현대 산업사회의 인간 욕망 구조를 분석한다. 세르반테스, 프루스트, 도스토옙스키 등의 문학을 모방 이론을 발전시키기 위한 사례 연구로 사용한 셈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최근 이 책을 “안경 하나를 놓고, 그것을 통해 뚜렷해지는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 비유했다. 같은 맥락에서 스탠퍼드대학 로버트 포그 해리슨 교수는 그를 독일의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에 비유했다(스탠퍼드 대학지 <스탠퍼드 리포트>). 슐리만은 호메로스 <일리아스>의 전설 속 도시 트로이를 실제로 발굴하려 했던, 신화를 현실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실제 그 과정에서 미케네 유적 등 중요한 고대 도시들을 발굴했다. 지라르가 자신의 많은 개념을 문학과 역사 등 텍스트를 통해 정립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인데, 지라르는 슐리만이 그랬듯 비과학적 방법을 사용했다는 맹비난을 받았다. 지라르는 1960년대 초 도스토옙스키를 읽은 뒤 로마 가톨릭교로 개종한다. 이후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의 믿음은 변하지 않았다. 개종 이후 지라르의 문학과 역사에 대한 관심은, 종교에서 희생양의 역할, 특히 서구 이데올로기 안에서 기독교의 희생양 메커니즘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것으로 이동했다. 이어 출간된 <폭력과 성스러움>은 이같은 생각을 반영해, 인간의 모든 종교적·문화적 활동의 원형에 ‘희생양 메커니즘’이 들어 있음을 밝힌다. 희생양이 상징적 신이 아닌 거대한 폭력에 봉헌되는 것이라는 주장으로 세계적 논쟁을 일으켰으며, 1973년 프랑스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그에게 미친 기독교적 영향은 <세상이 만들어질 때부터 숨겨져온 것>(1978)에 가장 잘 드러나 있다. 이 책에서 그는 기독교가 희생자의 관점에서 희생양 메커니즘을 진단한 유일한 종교였다며, 기독교를 인간의 모방적 경쟁에 대한 해결책으로 내세운다. 그의 논쟁적 관점은 학계와 기독교계 양쪽의 끊이지 않는 비판을 일으켰다. 지라르는 이에 대해 2009년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내 이론에 반대한다. 그것이 전위적인(avantgarde) 동시에 기독교 이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전위적인 사람들은 반기독교적이며, 많은 기독교인들은 반전위적이다. 기독교인조차 내게 의심이 많았다.”(<스탠퍼드 리포트>) 그는 그 밖에도 <지하실의 비평>(1976),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빠르게 떨어지는 것을 본다>(1999) 등 30여 권의 책을 썼다. 2009년 현대언어협회로부터 공로상을 받았으며,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종도뇌르 코망되르 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슬람 테러는 “지구적 규모의 모방적 경쟁” 폭력과 테러가 만연한 현대에 폭력의 근원과 해결책을 묻는 지라르의 사상은 큰 주목을 받았다. 2007년 출간된 후기 주요작 <클라우제비츠를 완성하다>는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해 프랑스의 사회참여적 지식인과 언론의 큰 반응을 일으켰다. 프러시아의 군사전략가이자 역사가였던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미완성 저서인 <전쟁론>에 대한 지라르식 해석을 보여주는 이 책은 21세기 현대 전쟁에 대한 암시를 담고 있다. 그는 클라우제비츠의 견해를 바탕으로, 상승작용을 일으킨 폭력이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치달아 전세계를 위협하는, 묵시론적 상황이 시작되고 있음을 밝힌다. 지라르는 이 책에서 “세계 국가들이 보복을 포기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국가들 간의 모방적인 경쟁은 종말론적 대립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슬람 테러에 대해서도 “지구적 규모의 모방적 경쟁”(<텔레그래프>)이라고 묘사한 바 있다. 이로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