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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마약문제, ‘합법화’로 해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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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8-3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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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자 치료 위해 ‘합법적인 헤로인 주사실’ 시험운영하는 오스트렐리아

(사진/마약천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즈주에서만도 하루에 한명 이상이 헤로인 과다복용으로 사망한다)
“사람부터 살리고 보자!”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최초로 시도하는 뉴사우스웨일스주의 ‘합법적인 헤로인 주사실’의 명분이다. 여기에는 헤로인 과다복용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목숨들을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담겨 있다. ‘합법적인 헤로인 주사실’이란 개념은 마약으로 마약의 해악을 통제하자는 모순된 공식에서 출발한다. 어차피 비합법 공간에서 마약을 계속할 중독자라면 그들에게 합법 공간을 제공해 쇼크사나 에이즈 감염 같은 최악의 결과라도 우선 막아야 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일단 살려 놔야 처벌이든 치료든 재활이든 가능하다는 것이다. 헤로인 주사실에서는 의료진이 항시 대기해 의료진이 안전과 치료를 맡으며, 상담전문가가 재활을 담당하게 된다. 이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마약에 대한 부분적 합법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이를 두고 지난 1년 동안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청소년들 “대마초는 마약도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8월17일 뉴사우스웨일스주 정부가 유나이팅 교회에 헤로인 주사실 운영자격을 허가함으로써 이 계획은 실현 단계로 접어들었다. 주사실 장소로 선정된 시드니의 킹스 크로스 달링허스트가 66번지는 본격적인 내부수리 작업이 한창이다. 이르면 10월 말 늦어도 연말까진 정식으로 헤로인 주사실 운영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운영주체인 유나이팅 교회는 개신교 연합체로 최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교단 중 하나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마약문제는 단순히 ‘심각하다’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엇보다 청소년 마약문제가 골칫거리다. 청소년들에게 대마초 정도는 아예 마약류에 끼지도 못한다. 지난 3월부터 일부 명문고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약물검사를 실시하고 있는 것은 청소년 마약문제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약물검사를 실시하는 학교도 점점 늘어가는 추세다. 8월22일치 <시드니 모닝 헤럴드>에 따르면, 학교쪽은 학부모들이 마약복용 사실이 드러난 자녀들의 치료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으면 퇴학시킬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청소년 마약문제가 더이상 개인적 일탈행위 차원에서가 아니라 학교와 가정 그리고 사회 전체가 공동 대처해야 할 사안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움직임이다.

헤로인 주사실 설치의 직접적인 원인인 헤로인 과다복용 역시 이미 위험수위를 크게 넘어섰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뉴사우스웨일스주에서만도 하루에 한명 이상이 헤로인 과다복용으로 사망하고 있다고 한다. 빅토리아주의 사정도 비슷하다. 지난 7월 중순에는 불과 며칠 사이 무려 80여건에 달하는 헤로인 과다복용으로 7명이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제 마약문제의 무게중심은 ‘마약이냐 아니냐’에서 ‘어떻게 하면 마약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로 할 것인가’라는 이슈로 옮겨진 듯하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지난해 5월 시드니에서 열린 뉴사우스웨일스주 마약대책회의가 ‘합법적인 헤로인 주사실’의 모태가 되었다. 이 회의에는 주 총리인 봅 카, 마약관련 특별장관 델라 보스카 등 정치인은 물론 마약문제 전문가와 의료인들이 대거 참석해 새로운 마약정책의 방향을 둘러싸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의 결과로 처벌위주의 마약정책을 지양하고 교육, 예방, 재활을 뼈대로 한 172개의 권고안이 채택되었다. 헤로인 주사실의 시험운영 역시 이 권고안 중 하나였다. 1개의 헤로인 주사실을 18개월 동안 시험적으로 운영한 뒤 그 결과를 바탕으로 확대실시 여부를 결정하자는 내용이었다. 주의회도 99년 10월 ‘약품법 개혁안’을 통과시켜 헤로인 주사실 설치를 위한 법적 근거를 만들었다.

조직적인 주민 반대에 부딪치기도

(사진/헤로인이 담긴 주사기.'합볍적인 헤로인 주사실'은 마약으로 마약을 통제한다는 모순된 공식에서 출발한다)
이 계획은 경찰을 피해 주로 공중화장실을 전전하며 헤로인을 복용해온 마약 중독자들의 열화와 같은 환영을 받았다. 노숙자의 80% 이상이 헤로인 중독자라는 사실은 헤로인 주사실의 설치가 왜 그리도 반가운 조처인가를 잘 나타낸다. 정부의 시책에 따라 헤로인 주사실을 직접 감독 운영할 주체로 성 빈센트 병원과 ‘자선 수녀회’가 자원했다. 병원의 동참이 중독자의 안전과 재활을 위한 전문성을 보장한다면 ‘자선 수녀회’는 마약의 합법화라는 도덕적 부담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정부의 입장에선 환상의 콤비였다. 수녀들은 “마약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전력을 다하겠다”며 의욕에 차 있었다. 주 정부도 일부의 우려를 의식해 주사실 내에서 마약이 거래되거나 제공되는 경우는 절대로 없을 것이며 또한 마약업자에 대한 강력한 단속 역시 계속될 것이라고 거듭 약속했다. 연방총리인 존 하워드를 중심으로 한 보수인사들이 “공동체에 잘못된 메시지를 던지는 위험한 계획”이라고 반대의사를 표하긴 했지만, 여론은 대체로 우호적이었다.

합법적인 헤로인 주사실 계획이 자칫 무산될 뻔한 위기는 밖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전례없는 로마교황청의 간섭 때문이었다. 교황청은 ‘자선 수녀회’에 대해 헤로인 주사실 운영에 참여하지 말 것을 명령했다. 이는 골수 보수주의자로 알려진 빅토리아주 대주교인 조지 펠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쨌거나 “정부와 종교의 행복한 결혼”이라고까지 표현되던 ‘헤로인 주사실 프로젝트’의 한 축이 어이없이 무너졌다. 곤경에 빠진 뉴사우스웨일스주 정부를 구한 것이 바로 유나이팅 교회였다. 유나이팅 교단이 헤리 허버트 목사를 중심으로 헤로인 주사실을 운영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유나이팅 교회는 내부적으로 ‘죽음의 신학’이라는 비판을 극복하고 “생명을 구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라는 선언과 함께 주사실 운영의 주체로 부상했다.

유나이팅 교회가 달링허스트가 66번지를 헤로인 주사실 장소로 결정하자 이번엔 주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들은 상우회를 중심으로 조직적인 반대운동을 벌였다. 헤로인 주사실이 설치되면 수많은 마약 중독자들이 몰릴 것이고 이는 치안뿐 아니라 사업과 자녀교육에 심대한 해악을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성 빈센트 병원은 1년 동안 약 5만명의 마약 중독자가 헤로인 주사실을 이용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여기다 마약업자들까지 중독자들을 따라 달링허스트가로 집결할 것이다. 특히 시험운영 기간에는 이곳이 유일한 ‘합법적인 헤로인 주사실’이기 때문에 마약 중독자들의 메카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주민들의 우려도 나름대로 탄탄한 근거가 있는 셈이다.

이런 우려에 대해 뉴사우스웨일스주 정부는 보건당국 및 헤로인 주사실 운영의 허가권자인 경찰을 믿어 달라고 호소했다. 주사실은 마약 복용이 법적으로 통제되는 구역이지 아무런 규제가 없는 해방구가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또한 주사실 밖은 엄연히 마약을 단속하는 실정법이 유효하기 때문에 어떠한 질서교란 및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너무 강경한 경찰의 법 집행은 중독자들을 위축시켜 헤로인 주사실 본래의 취지를 훼손시킬 수도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결론적으로 탄력적인 경찰의 대응이 헤로인 주사실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주 총리 봅 카는 헤로인 주사실 운영이 어디까지나 일종의 실험이라는 점을 누차 강조하고 있다. 즉, 18개월의 실험기간 동안은 판단을 유보해달라는 주문이다. 어차피 시험운영의 성과가 모든 논란에 마침표를 찍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논란은 18개월 뒤에…

뉴사우스웨일스주가 18개월 뒤로 모든 논쟁거리를 미뤄놓은 상태라면 멜버른이 있는 빅토리아주는 바야흐로 논쟁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다. 주 총리인 스티브 브랙스가 이미 지난해 10월 말 뉴사우스웨일스주를 따라 5곳에 헤로인 주사실을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가 있다. 시드니와는 달리 멜버른은 보수성향이 강하다보니 찬반 양쪽이 팽팽하게 맞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최근 들어 브랙스 총리가 올 10월에 관련법안의 의회 통과를 시도할 것이라고 밝혀 논쟁이 가열되고 있었다. 그러나 야당과 연방정부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친 브랙스 총리가 지난 8월18일 헤로인 주사실 외에도 마약 대체품의 활용 등 다른 방안도 고려중이라는 다소 완화된 입장을 밝혔다. 따라서 뉴사우스웨일스주의 실험결과가 나올 때까지 독자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을 가능성 역시 다분하다.

18개월 뒤, 킹스 크로스의 달링허스트가 66번지가 오스트레일리아 마약정책의 신기원으로 기록될지 아니면 한동안의 해프닝으로 끝날지 현재로선 미지수다. 하지만 어떤 결과든 그에 따라 21세기 오스트레일리아 마약정책의 기본 방향이 정해질 것이다.

시드니=정동철 통신원djeo8085@mail.usyd.edu.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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