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연합뉴스
1950년대 초, 보그스는 미시간주 디트로이트로 향했다. 사회주의 계열 신문에 글을 쓰기 위해서였다. 당시 디트로이트는 전세계 자동차산업의 심장부였다. 제조업 노동자가 대거 몰려 있었으니, 젊은 사회주의자에겐 맞춤한 장소였을 터다. 그곳에서, 그가 운명처럼 한 남자를 만났다. 크라이슬러자동차 노동자이자, 사회주의 활동가인 제임스 보그스다. 남부 앨라배마주 출신인 제임스 보그스는 아프리카계였다. 맬컴 엑스의 ‘운동권 선배’ 인종 간 결혼을 법으로 금지한 주가 여럿이던 시절이다. 디트로이트 시의원을 지낸 보그스의 오랜 친구 셰일라 코크렐은 10월5일 <디트로이트프리프레스>와 한 인터뷰에서 “당시엔 인종 간 결혼을 한 부부는 상시적인 폭력의 위협에 시달려야 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두 사람은 1953년 결혼했다. 미 대법원이 ‘러빙 대 버지니아주 사건’을 통해 인종 간 결혼을 금지한 주법을 위헌이라고 판시한 것은 그로부터 15년 뒤인 1968년의 일이다. 격동의 1960년대가 다가왔다. 보그스 부부는 디트로이트를 무대로 흑인 민권운동의 전면에 나섰다. 1929년 태어난 마틴 루서 킹 목사는 1968년 서른아홉 나이에 암살됐다. 킹 목사와 함께 미국 민권운동계의 양대 산맥으로 통하는 맬컴 엑스는 1925년 태어났다. 그 역시 마흔 살 생일을 맞지 못하고 1965년 암살됐다. 1963년 마틴 루서 킹 목사가 디트로이트에서 거리행진을 계획했을 때, 그 배후에서 집회를 조직한 것도 보그스 부부였다. 맬컴 엑스는 디트로이트를 방문할 때마다 보그스의 집에서 묵곤 했다. 부부는 두 사람의 ‘운동권 선배’였던 셈이다. 그 시절 미 연방수사국(FBI)은 내놓고 ‘운동권’ 인사들을 사찰했다. 정보를 캐내려는 목적이 전부가 아니었다. 감시를 통한 위협, 이른바 ‘얼음 효과’를 노린 게다. 보그스 부부는 조금 다른 반응을 보였다. 보그스는 1998년 펴낸 자서전에서 “그 시절 남편은 우리를 감시하는 정보요원들을 ‘덜떨어진 아이’ 취급했다”고 전했다. “정보요원은 무시로 우리 집을 찾았다. 백인 우월주의 단체 ‘쿠클럭스클랜’(KKK)의 폭력에 맞서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무장 저항을 주도했던 맥스 스탠퍼드나 로버트 윌리엄스 같은 흑인 활동가들의 행방을 묻고는 했다. 그때마다 남편은 ‘난 경찰의 정보원이 아니다’는 말로 확실히 선을 그었다. 그러곤 에드거 후버 FBI 국장의 불법적인 지시를 무조건 따르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 일이라고 엄히 꾸짖었다. 그런 다음엔, ‘다음번에 집회에 나와 내 연설을 들으면, 후버의 압제에 맞서기 위한 투쟁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하곤 했다.” 부부는 1970년대 초반 <20세기의 혁명과 진화>란 책을 함께 펴내기도 했다. 중국, 러시아, 베트남 등지에서 벌어진 온갖 다른 형태의 마르크스주의 혁명과 함께 지역 공동체에 기반한 운동 방식을 역사적으로 추적한 내용이다. 1980년대에 접어들어서도 보그스 부부는 ‘환경정의를 위한 디트로이트 시민 모임’을 꾸리는 등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1980대년 중반엔 만연한 길거리 폭력과 총기 사건을 막기 위한 시민사회 연대체 ‘우리 아들딸 구하기 연합’의 결정을 주도하기도 했다. 또 미국 자동차산업의 부침과 함께 쇠락의 길로 접어든 디트로이트의 현실을 짚는 수많은 글을 써냈다. 70대를 넘긴 보그스 부부가 특히 힘을 쏟은 건 ‘다음 세대 운동가’ 교육이었다. 1992년 시작된 청년 프로그램 ‘디트로이트 서머’는 이런 노력의 총화다. 올해로 14년째 이어지고 있는 이 행사에는 미 전역에서 젊은이들이 몰린다. 행사 참가자들은 디트로이트 빈민가에서 집을 고치고, 벽화를 그리고, 빈 땅을 공동체 텃발으로 일구고, 축제를 벌인다. 제임스 보그스는 1993년 숨졌다. 만년의 보그스는 헤겔의 저작과 3D 프린팅 기술에 관심을 보였다. 또 ‘새로운 경제’ 개념에 골몰했다. 그는 2014년 7월15일 대안매체 <게르니카>와 한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지역 공동체에서 일하고, 지역 공동체를 더 나은 방식으로 바꿔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새로운 경제”라고 말했다. 그는 2013년 한국계 영화감독 그레이스 리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그레이스 리 보그스의 진화>에서 이렇게 강조하기도 했다. “낡은 이상에 얽매이지 마세요. 현실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답니다. 그러니 현실에 맞게 여러분의 이상도 바꿔야 합니다.” “낡은 이상에 얽매이지 마세요” 지난 6월27일, 디트로이트의 ‘찰스 라이트 기념 아프리카계 미국인 박물관’에서 보그스의 100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행사가 열렸다. 거동이 불편해진 보그스는 참석하지 못했다. 10월5일, 그는 여느 날처럼 이른 새벽에 눈을 떴다. 그의 곁을 지키고 있던 오랜 친구이자 동지인 인권변호사 앨리스 제닝스는 “기분이 좋아 보였고, 이상한 낌새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보그스는 아침 식사를 하기 전 다시 침대로 돌아가 누웠다. 그리고 잠이 든 채로 평온하게 세상을 떠났다. 향년 100. 정인환 <한겨레> 영상센터 기자 inh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