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터넷에서 한바탕 피비린내 나는 격전이 벌어졌다. 각종 인터넷 게시판을 종횡무진하며 강호를 주름잡던 (인터넷) 전사들이 총출동해 피와 살이 튀는 진검승부를 겨뤘다. 인터넷 티에바(贴吧·게시판 혹은 자유 발언을 하는 인터넷 포럼)에 새로운 무법자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예량천(叶良辰).
지난 9월23일,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터넷 티에바 리이바(李毅吧)에 게시글이 하나 올라왔다(사진). 한 네티즌이 자신이 어떤 남성과 나눈 대화글을 게시판에 공개한 것이다. 한 대학교 여학생이 기숙사에서 청소 문제로 방장과 다툼을 벌이다 잘 아는 오빠를 대화방에 초청해서 그 방장과 언쟁을 벌이게 된 것이 사건의 발단이다. 오빠의 이름은 예량천.
“하하, 량천이 한 번도 빈말을 한 적이 없다는 걸 알게 해줄게. 내가 너희들과 부딪치지 않게 해라. 이 지역에서 난 네가 더는 발붙이고 살지 못하게 만들 수 있는 100가지 방법을 가지고 있어. 만일 시험해보고 싶으면 그렇게 해줄게. 너희들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을 거야.” “내가 베이징 세력을 동원하지 않게 해라.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으니까!” “하하, 량천이 가장 좋아하는 일은 스스로가 능력이 출중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손봐주는 일이야. 너희들은 내 이름이 예량천이라는 것만 기억하면 돼!”
이후 인터넷 티에바에서 ‘예량천’은 하루아침에 벼락스타가 되었다. 거침없이 내지르는 그의 방자한 언어폭력에 도전해서 네티즌들이 ‘격투’를 신청했고, 그를 흠모하는 ‘빠’들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일명 ‘국민 라오공’(국민 남편)이라고 불리는 인터넷 스타인 완다그룹 총수의 아들 왕쓰충도 “네가 예량천이면 어쩔 건데?”라며 그를 조롱하는 게시글을 올렸다.
예량천의 어록이 인기를 끄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 사회·문화·경제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2012년 중국에서는 이른바 ‘디아오쓰’ 현상이 유행한 적이 있다. 중국의 폭발적인 경제성장 속도가 주춤해지면서 청년실업률이 높아져 미래가 우울한 청년들이 인터넷상에서 자조하는 용어로 정착한 게 ‘디아오쓰’다.
이 중국판 루저들은 왕쓰충처럼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가오푸솨이’(高富帅)들에 맞서 자신들만의 문화세계를 형성하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인터넷 티에바 리이바가 그들이 주로 서식하는 인터넷 공간이다. 디아오쓰들은 ‘권력’에 맞서 거침없는 협박을 날리는 예량천을 마치 자신들의 든든한 보호 우산인 양 인식하는 듯하다. 디아오쓰들은 예량천이 협박하듯 ‘베이징 세력을 동원해서라도 한바탕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일으키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을지 모른다. (세상을) 뒤집어엎는 것만이 그들에게 미래를 보장해줄, ‘100가지 방법’ 중 가장 확실한 방법일지도.
베이징=박현숙 객원기자
위부터 인터넷 티에바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