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세계|반세계화 운동가 인터뷰
스위스 기업인들이 가장 미워하는 지식인 장 지글러 교수 “WTO와의 협상은 무의미”
스위스 제네바대학의 사회학 교수이자 프랑스 소르본대학의 교환교수이기도한 장 지글러(Jean Ziegler·67)는 자신이 저술한 책들로 인해 지금까지 총 7건의 재판에 휘말려야 했던 독특한 경력의 인물이다. 1976년 팸플릿인 <스위스, 모든 혐의를 안중에 두지 않는 나라>의 출간과 더불어 그는 스위스가 전세계 독재자와 기업대표들의 부정한 돈을 긁어모으기 위해 어떠한 ‘조직적 범죄’를 자행하고 있는지를 밝히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때부터 그에겐 명예훼손, 신뢰훼손이란 이유를 들이대는 고소들이 줄을 이었다.
은행가와 기업대표의 이미지를 깎아내리기 위해 여념이 없는 그를 스위스 기업인들은 가장 미워하는 사람으로 꼽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7차례 재판의 비용을 감당하는 것도 수월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지금까지도 월급을 ‘차압’당하고 있는 신세라고 한다. 그에게 뉴라운드 출범과 세계화의 문제를 물어보았다.
반세계화 단체가 세계무역기구(WTO)와 협상하려는 노력이 현 시점에서는 무의미하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WTO는 시장의 절대성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근본주의자들의 집단이다. 그들의 주장은 여러 가지 사회 통계지표들만 보아도 손쉽게 부정된다. 122개 개발도상국 중 71개 국가의 1인당 국민소득이 지난 10년 동안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협상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얻어낼 수 있지 않은가. =이미 카타르회의 이전에 WTO 상임집행위는 아탁(Attac)의 환경 및 사회조항들 중 일부를 수용해 회의 안건으로 상정했다. 그러나 막상 다자간 협상에서는 아무런 얘기도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WTO 대표들과 무대 뒤편에서 아무리 협상을 한다 해도 결국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당신은 현재의 시대적 위치를 칸트의 말을 인용해 ‘한 시대의 끝자락’이라고 묘사한 바 있다. 칸트는 당시 프랑스혁명을 두고 말한 것이었다. 좀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프랑스혁명 이래로 서구국가들은 계몽의 시대를 살아왔다. 인권, 민주주의 그리고 규범적 경제로 대변된 시대가 이제 무너져내리고 있다. 이는 한 시대의 붕괴를 말한다. 이제 정글의 시대가 올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흐름을 저지하기 위한 사회운동이 실패할 수도 있다는 말인가. =그럴 수 있다. 어떤 새로운 집단적 주체가 생성되기 이전에 국민국가가 소멸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난 9월11일 이후의 상황을 해석한다면. =계몽의 가치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문명이 붕괴하고 반문명의 힘이 지하로부터 솟아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정글’만이 남는다. 이 정글에서 지금 빈 라덴과 부시가 뛰어다니고 있다. 가슴을 꿍꿍 치면서 말이다. “나는 문명인이다. 때문에 난 야만인들을 폭격한다.” 국제자본시장은 이미 70년대 이후 자유화의 길을 걸어왔다. 그런데 이 자유화가 기아 상황을 모두 책임져야 하는가. ‘세계화가 가난을 낳고 이 가난이 테러를 낳고’는 너무 단순한 논리 아닌가. =세계화가 가장 근본적 원인이라는 것이다. 나는 세계화가 테러를 만들어낸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세계화 그 자체가 일상의 테러이다. 차라리 원인은 개발도상국 정부들에 있지 않은가. 특히 다수의 희생으로 소수의 엘리트만 살찌우는 독재정권들이 더 문제 아닌가. =부패와 이른바 ‘성직자 경제’도 물론 문제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세계 6번째 산유국인 나이지리아가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석유를 팔아서 쌀이나 옥수수를 살 돈이 그들에게는 없는 것이다. 여기서 바로 세계 경제질서의 문제점을 읽어야 한다. 반세계화 운동도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정치역량도 성숙한 만큼, ‘정당’으로의 발전 등 이제 좀더 구체적인 정치프로그램이 필요한 때 아닌가. =프랑스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바스티유감옥’의 붕괴를 보자. 바스티유로 몰려가는 사람들은 어떤 프로그램도 갖고 있지 못했다. 베를린=글·사진 강정수 통신원 jskang@web.de

=WTO는 시장의 절대성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근본주의자들의 집단이다. 그들의 주장은 여러 가지 사회 통계지표들만 보아도 손쉽게 부정된다. 122개 개발도상국 중 71개 국가의 1인당 국민소득이 지난 10년 동안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협상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얻어낼 수 있지 않은가. =이미 카타르회의 이전에 WTO 상임집행위는 아탁(Attac)의 환경 및 사회조항들 중 일부를 수용해 회의 안건으로 상정했다. 그러나 막상 다자간 협상에서는 아무런 얘기도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WTO 대표들과 무대 뒤편에서 아무리 협상을 한다 해도 결국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당신은 현재의 시대적 위치를 칸트의 말을 인용해 ‘한 시대의 끝자락’이라고 묘사한 바 있다. 칸트는 당시 프랑스혁명을 두고 말한 것이었다. 좀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프랑스혁명 이래로 서구국가들은 계몽의 시대를 살아왔다. 인권, 민주주의 그리고 규범적 경제로 대변된 시대가 이제 무너져내리고 있다. 이는 한 시대의 붕괴를 말한다. 이제 정글의 시대가 올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흐름을 저지하기 위한 사회운동이 실패할 수도 있다는 말인가. =그럴 수 있다. 어떤 새로운 집단적 주체가 생성되기 이전에 국민국가가 소멸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난 9월11일 이후의 상황을 해석한다면. =계몽의 가치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문명이 붕괴하고 반문명의 힘이 지하로부터 솟아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정글’만이 남는다. 이 정글에서 지금 빈 라덴과 부시가 뛰어다니고 있다. 가슴을 꿍꿍 치면서 말이다. “나는 문명인이다. 때문에 난 야만인들을 폭격한다.” 국제자본시장은 이미 70년대 이후 자유화의 길을 걸어왔다. 그런데 이 자유화가 기아 상황을 모두 책임져야 하는가. ‘세계화가 가난을 낳고 이 가난이 테러를 낳고’는 너무 단순한 논리 아닌가. =세계화가 가장 근본적 원인이라는 것이다. 나는 세계화가 테러를 만들어낸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세계화 그 자체가 일상의 테러이다. 차라리 원인은 개발도상국 정부들에 있지 않은가. 특히 다수의 희생으로 소수의 엘리트만 살찌우는 독재정권들이 더 문제 아닌가. =부패와 이른바 ‘성직자 경제’도 물론 문제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세계 6번째 산유국인 나이지리아가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석유를 팔아서 쌀이나 옥수수를 살 돈이 그들에게는 없는 것이다. 여기서 바로 세계 경제질서의 문제점을 읽어야 한다. 반세계화 운동도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정치역량도 성숙한 만큼, ‘정당’으로의 발전 등 이제 좀더 구체적인 정치프로그램이 필요한 때 아닌가. =프랑스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바스티유감옥’의 붕괴를 보자. 바스티유로 몰려가는 사람들은 어떤 프로그램도 갖고 있지 못했다. 베를린=글·사진 강정수 통신원 jskang@web.d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