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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죽음은 멕시칸들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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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2-0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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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들이 이승을 방문하는 멕시코 명절 ‘죽은 이의 날’의 다양한 풍경들

사진/ 멕시코 국립자치대학 잔디밭에 전시된 수의학부의 작품. 공룡을 타고 전진하는 해골은 호세 과달루페 포사다의 <해골 돈키호테>를 연상시킨다.
가톨릭 교도가 대부분인 멕시코사람들이 귀신들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 기이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멕시코의 영혼이 ‘혼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들에겐 이 사실이 하등 이상할 이유가 없다. 새 천년의 세계가 테러와 전쟁으로 수상스럽던 그때, 멕시코사람들은 이미 고인이 된 가족들, 벗들, 연인을 오랜만에 만나느라고 수선을 피웠다. 멕시코사람들은 일년에 한번 죽은 이들의 영혼이 신들의 허락을 받고 저승에서 이승으로 놀러 나온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들이 이승을 방문하는 목적은 살아 있는 이들을 해코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랜만에 아는 이들을 만나 회포를 풀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들의 눈곱을 떼주는 이유

10월31일엔 어린 영혼들이, 11월1일엔 어른 영혼들이 세상 구경을 온다. 며칠 전부터 사람들은 이들을 맞을 준비를 한다. 집집마다 남자들은 제단을 만들며 여자들은 제단에 놓을 음식을 장만하느라 부산스럽다. 어떤 마을에선 귀신들이 자신이 살았던 집을 제대로 찾아올 수 있도록 공동묘지에서 집까지 꽃잎으로 오솔길을 내기도 한다. 집 처마 밑엔 초롱불을 밝혀 죽은 영혼들을 반길 채비를 하고, 마리아치(악사)들은 죽은 이들이 생시에 즐겨 들었던 음악을 연주한다. 11월2일이 지나면 가족들은 이웃을 초청해 차린 음식을 나누며 잔치를 연다. 멕시코 서부 미초아칸주의 푸레페차 원주민들은 죽은 이의 날이 오기 전에 개들의 눈곱을 떼어준다. 죽은 이들의 영혼은 개의 몸을 잠시 빌리는데, 눈곱을 떼어주어야 개들이 멀리 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멕시코시티 동남부 외곽, 아스테카족의 후예 나와족들이 모여 사는 마을 믹스킥도 죽은 이의 날 전통으로 유명하다. 11월2일 저녁 믹스킥으로 가는 좁은 길은 원주민 전통을 둘러보려는 멕시코사람들과 외국 관광객으로 붐볐다. 집집마다 별모양의 초롱 혹은 호박에 초를 넣어 만든 불을 처마 밑에 내걸었다. 택시운전사 호르헤(25)는 “다윗왕의 별에서 비롯된 별모양의 초롱은 가톨릭 전통이 원주민들의 민속 명절에 끼친 영향을 보여주는 증거 가운데 하나”라고 귀띔한다. 길거리엔 “칼라베리타”(원래 해골이라는 뜻, 죽은 이의 날에 주는 선물로 의미를 넓혔다)를 외치며 아이들이 호박을 내민다. 악마, 뱀파이어, 영화 스크림에 등장하는 살인마, 오사마 빈 라덴, 부시, 해골, 마녀 등으로 분장하고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가장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거리를 오간다.

믹스킥 마을에 도착해 처음 들른 곳은 2층 건물인 동사무소였다. 2층 벽엔 이 마을에서 ‘죽은 이의 날’ 명절을 어떻게 쇠었는지를 보여주는 사진들이 해설과 함께 연도별로 붙어 있다. 한복판에 제단이 차려져 있다. 제단의 상단엔 멕시코 가톨릭 신앙의 상징 과달루페 성모가 새겨져 있는 흰 천이 붙어 있고 제단 아래 맨바닥엔 황금빛 꽃잎들 위로 제물들이 놓여 있다. 멕시코사람들은 집안이 청결하지 않으면 저승에서 이승까지 오랜 여행을 한 죽은 영혼들이 편안하게 쉴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먼저 청소를 깨끗이 한다.

제물을 놓을 때도 잊지 않고 반드시 챙겨야 할 것들이 있다. 제물 가운데 놓이는 물은 사자의 영혼들이 오랜 여행 뒤에 느낄 갈증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소금은 영혼의 몸을 깨끗이 정화해 산 자들이 초대하는 잔치에 참가하는 데 필요하다. 과거의 장작불 대신에 지금은 기다란 초를 놓아 제단을 밝히는데 이는 죽은 자에 대한 불멸의 사랑을 뜻하며, 제단 주위에 피우는 멕시코산 숯 ‘코팔’은 사악한 기운을 내쫓고 제단을 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기원은 고대 아스테카제국

사진/ 믹스킥 마을의 동사무소 2층에 차려진 제단. 제단 맨 상단에는 멕시코 가톨릭 고유의 과달루페 성모가 새겨진 흰 천이 붙어 있다.
제단 주위엔 늘 꽃들이 화려하게 놓인다. 황금빛으로 풍요로움을 뜻하는 ‘셈파수치틀’은 제단은 물론이고 공동묘지를 장식하는 데도 푸짐하게 쓰인다. 안개꽃처럼 보이는 하얀 꽃 ‘누베’도 빠지지 않는다. 꽃의 흰 빛깔은 순결, 순진함과 부드러움을 뜻하며 어린 영혼들을 위한 10월31일 날 제단에 반드시 놓인다. 죽은 이들이 편히 쉬도록 ‘페타테’라고 불리는 멍석도 반드시 챙겨야 할 물건이다.

옥수수가루로 만드는 전통음식 타말을 대체한 빵도 제물인데, 이는 죽은 이들에 대한 우애를 표현한다. 제물로 놓이는 사탕수수 토막과 바퀴모양의 빵은 아스테카제국 시절의 전통을 환기시킨다. 아스테카제국 시절엔 신들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사람의 심장을 꺼내 바쳤다고 한다. 그때 ‘제물’들의 두개골을 긴 막대에 끼워놓고 그들의 희생을 기린 곳을 가리켜 솜판틀리(해골들을 놓는 곳)라고 부른다. 바퀴모양의 둥근 빵은 해골의 두개골을 의미하며 사탕수수 토막은 해골 두개골을 끼우는 나뭇가지를 뜻한다. 그러므로 늘 사탕수수 토막에 빵을 끼워놓는다.

믹스킥 마을의 동사무소를 나온 뒤 이웃한 공동묘지에 들렀다. “어제 놀러온 남편을 환송하기 위해 왔어요.” 테레사 곤살레스(35)가 씽긋 웃으며 말한다. 그에게 밤을 새울 작정이냐고 묻자 주위에 서 있는 가족들을 둘러보며 이들과 이곳에서 철야할 계획이라고 덧붙인다. 그의 가족뿐만이 아니다. 쌀쌀한 가을 날씨지만 과일을 넣어 끓인 단물 폰체를 마시며 죽은 영혼들과 작별하는 사람들로 공동묘지는 초만원이다.

‘죽은 이의 날’ 전통은 아스테카제국 시대로 거슬러올라간다. ‘죽음의 백성’으로 불렸던 아스테카족은 무려 두달 동안 죽은 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축제를 벌였다. 7월에는 어린이들의 영혼들을 기렸고 8월엔 성인들의 영혼들을 기념했다고 한다. 이런 거대한 잔치는 몇편의 시로 남아 전해진다. 아스테카족의 무명시인은 이승의 삶을 “그저 우리는 꿈꾸러 왔을 뿐이네/ 단지 우리는 잠자러 왔을 뿐이네/ 이 대지에 영원히 살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네/ 그저 잠시 머물다 갈 뿐이네”라고 노래했다. 그들은 삶이 찰나라고 생각했으며 저승이야말로 불멸의 세계라고 믿었다.

“할로윈 문화가 멕시코를 망친다”

사진/ 멕시코시티 남부의 문화명소 코요아칸공원의 정자. 해골 복장을 한 인형들이 멕시코 전통민요를 연주하고 있다.
멕시코 원주민들의 죽음에 대한 생각은 스페인제국 지배 아래서 변모한다. 죽음과 지옥에 대한 기독교적 관념의 세례를 받게 되었고 이제 죽음과 지옥은 공포의 대상이 된다. 테노시티틀란과 틀랄텔롤코(지금의 멕시코시티에 있었던 아스테카제국의 두 도시)의 솜판틀리는 모조리 사라지고 제단에는 십자가가 등장했다. 하지만 원주민들의 전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비록 가톨릭 전통인 ‘모든 성인의 날’(11월1일)로 인해 날짜가 바뀌기는 했지만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가톨릭 신앙과 혼합하는 방식을 택했다.

‘죽음’을 모티브로 한 낙천적인 전통의 부활은 19세기 말엽에 활약했던 멕시코 판화의 거장 호세 과달루페 포사다의 공헌 때문이었다. 그는 민간신앙인 ‘죽음 숭배’에서 착안한 이미지들로 포르피리오 디아스 독재정부와 귀족들을 신랄하게 희화화하고 풍자했다. 그렇게 죽음에 대한 민간신앙의 사유를 예술세계로 끌어들여 새로운 예술 표현의 영역을 개척했다.

올해 멕시코시티는 민속명절의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특별행사들을 마련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라틴아메리카 최대의 광장 소칼로를 공동묘지로 개조해 죽음을 테마로 한 다양한 작품들을 전시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대광장을 굽어보며 우뚝 솟은 대성당 앞엔 각양각색의 두개골들을 엮은 솜판틀리가 세워졌다.

이런 특별행사가 마련된 것은 ‘죽은 이의 날’이 미국 할로윈의 강한 영향을 받고 있다는 비판 때문인지도 모른다. 할로윈이 10월31일이라 날짜도 겹치는데다가 할로윈풍의 가장파티가 상류층을 휩쓸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문화의 힘이 멕시코의 망자들에게도 영향을 준다고 개탄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멕시코 민중이 지닌 죽음에 대한 풍자와 해학도 미국문화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멕시코의 시인이자 문화비평가 옥타비오 파스는 ‘죽은 이의 날’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멕시코사람들은 죽음을 놀리고 어르며, 죽음과 함께 잠들고 함께 잔치를 연다. 죽음은 멕시코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이며 죽음은 멕시코사람들이 평생을 함께하는 연인이다.” 아마도 멕시코사람들은 죽음으로 얼룩진 근대사를 살아오면서 이렇게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겨왔을 것이다.

멕시코시티=글·사진 박정훈 통신원 surfuro@hani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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