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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법은 통과했지만 열기를 이어가자”

다카하타 이사오(高畑勲)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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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0-07 20:16 수정 : 2015-10-08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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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연합뉴스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내로라하는 작품을 만든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함께 스튜디오 지브리를 이끄는 다카하타 이사오(高畑勲) 감독이 노구를 이끌고 일본 국회의사당 앞 시위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카하타 감독이 국회의사당 앞에 나타난 것은 지난 8월30일 오후 2시쯤이었다. 아베 정권의 안보법안 제·개정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에 참석했다. 한여름의, 그것도 가장 더운 시간에 79살의 몸으로 현장에서 함께했던 것은, 아베 정권의 안보법안에 대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였다.

다카하타 감독의 생각은 명확하다. 최근 한 언론매체를 통해, 아베 정권의 목적은 오로지 헌법 제9조에 의해 전쟁을 할 수 없는 나라가 된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드는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제·개정된 법안은 정부의 발표 내용이나 조문의 내용을 조목조목 따질 필요도 없는, ‘매장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그가 전쟁을 ‘할 수 있는’ 일본에 반대하는 이유는 개인의 경험과도 무관치 않다. 제2차 세계대전의 끝 무렵인 1945년 6월29일 새벽, 미군 B29 편대가 오카야마시를 공습했다. 당시 9살이던 다카하타는 1700여 명이 죽은 공습 현장에서 간신히 살아남았다. 이날의 공포는 성인이 되어 제작한 <반딧불의 묘>를 통해서도 재연된다. 이렇게 잊을 수없는 전쟁의 공포를 체험한 그이기에, 전쟁을 ‘할 수 없는’, 평화로운 나라가 절실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카하타 감독을 비롯한 시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난 9월19일 새벽, 11개 ‘안보관련법’ 제·개정안이 통과됐다. 이로써 일본은 미국 등 친밀한 관계의 국가가 공격당할 때, 대신 반격하는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또 일본 정부가 ‘일본의 평화와 안전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 사태’로 인정하는 경우, 전세계 어디든 자위대를 파견해 후방지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패전 70년이 된 해, 다시 전쟁 ‘할 수 있는’ 나라로 돌아선 것이다.

다카하타 감독은 “(법안에 대한) 반대의 ‘열기’를 이어가는 것이 아베 정권을 억압할 힘이 되리란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한다. 또 “모처럼 생겨난 열기를 이어가지 않는 것은, 그저 이 정부의 생각대로 움직여주는 꼴에 불과”하니 계속 반대 행동에 참여해주길 호소한다.

법안이 통과된 이후에도 국회의사당 주변에서는 안보법안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비난받던 젊은 층도 함께했다. 헌법학자들은 대규모 위헌 소송을 준비하는 등 후폭풍이 심상치 않다. 진정한 ‘평화 헌법’을 지지하는 국제사회도 일본 내부의 반대 열기가 식지 않도록 적극적인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


길주희 객원기자·인권연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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