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 시비 부르며 3선 연임에 성공… 박정희 연상시키는 독재체제, 화두는 경제안정
페루의 8월은 겨울이다. 그렇다고 춥고 눈이 내리는 날씨는 아니다. 우리의 가을쯤이다. 그러나 2600만 페루 인구 가운데 3분의 1이 몰려 사는 수도 리마의 850만 시민들은 거의 두달 동안 햇볕을 쬐지 못한다. 하늘은 먹구름으로 뒤덮여 있고, 그렇다고 비가 내리는 것도 아닌 우중충한 날씨다. 후지모리에 비판적인 리마 시민들은 이런 음산한 날씨를 페루의 불안정한 정치상황에 빗대어 “후지모리 겨울”이라 부른다.
6명 사망한 취임식 아수라장
그러나 리마의 시민들이 모두 날씨 탓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구의 15%를 차지하는 백인 가운데 부유층은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해변으로 장기간 휴가를 즐기러 떠난다. 이들은 500년 전 페루를 침략해 잉카문명을 파괴했던 스페인인 피사로의 후손들이다. 이들 페루의 백인들은 현지 원주민인 인디오(인구비율 45%)나 혼혈인 메스티조(37%)와는 전혀 다른 생활을 한다. 경제는 물론이고 정치 문화 등 모든 면에서 페루사회를 지배하는 기득권층이다. 일본인 이민자의 후손인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1990년 대통령에 당선될 때까지 페루의 권력자들은 백인들이었다. 인디오 출신으로 올해 ‘촐로(cholo: 인디오의 별칭) 바람’을 일으키며 후지모리의 3선을 막으려 했던 스탠퍼드대 경제학 박사 출신인 톨레도의 눈으로 보면, 8만명의 일본계 이민자 가운데 하나인 후지모리도 백인 기득권층에 편입된, 말하자면 “아시안 얼굴을 한 백인”일 뿐이다.
이렇다할 정치경력이 없던 후지모리가 정치분석가들의 예상을 깨고 지난 90년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백인 기득권층에 대한 서민들의 반감과 일본의 경제지원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후지모리가 기존 정당에 근거를 두지 않은 독립 후보로 대통령 선거전에 나설 때까지만 해도 그의 인지도나 지지도는 매우 낮았다. 페루 라 몰리나 농업대학 교수이며 농업기술 관련 TV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조금 얼굴이 알려지긴 했지만, 1차투표에서는 유명한 소설가 마리오 바르가스(28.2%)에 이어 득표율 2위였다(24.3%). 그러나 2차투표에서는 좌파를 포함한 다른 정당들의 지지와, 특히 페루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빈곤층 인디오들의 지지에 힘입어 56.5%의 득표율로 대권을 잡았다. 8월의 페루 리마는 후지모리의 3선 연임 시비를 둘러싼 정치위기로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지난 7월28일 후지모리의 대통령 취임식에 즈음해 나흘 동안 잇따라 대규모 항의시위가 벌어졌고 화염병과 최루탄이 어지럽게 날았다. 후지모리의 정치적 경쟁자인 톨레도쪽에서 조직한 이런 시위과정에서 국립은행이 불에 탔고 6명의 경비원이 사망하는 불상사도 빚어졌다. 톨레도쪽에선 “고도로 훈련받은 정보국원이 시위대를 가장하고 이 사건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하지만, 반후지모리 투쟁전선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사실이다. 이 비극적 사건 이후 반정부집회 참가자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후지모리의 영향력 아래 있는 현지 TV 매체들이 날마다 톨레도의 데모현장 지휘 모습을 화면에 비춰가며 그를 공격하는 모습은 마치 80년대 전두환 정권 당시의 왜곡된 언론상황을 보는 듯했다. 리마의 한 언론사 중견간부는 “퇴근 뒤 집에 가면 TV를 켜지 않는다”고 말했다. 컴퓨터 조작설 등 끊임없이 제기되는 의혹
한국에서는 이미 지난 87년 대선 뒤 잠깐 논란이 벌어졌던 일이지만, 페루의 정치위기도 이른바 컴퓨터 조작설에서 비롯됐다. 페루의 대통령 선거는 1차투표에서 과반수를 얻지 못할 경우 상위 득표를 한 후보 두 사람이 2차투표에서 당락을 가름한다. 지난 4월9일 1차투표에서 여당인 ‘페루 2000’ 후지모리 후보는 49.89%, 야당인 ‘페루 포시블레’ 톨레도 후보는 40.15%로 어느 후보도 과반수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톨레도가 주장했듯, “오후 4시까지의 출구조사에서 우리가 이긴 걸로 나왔는데, 결과는 뒤바뀌어 발표됐다”는 비판을 야당쪽에서 제기하면서 컴퓨터 조작설과 함께 부정선거 시비가 일어났다. 더구나 페루선관위가 2차 결선투표를 앞두고 공정성이 의심스러운 새로운 투개표 프로그램을 도입하겠다고 하자, 톨레도쪽은 투표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전면투쟁에 나섰다. 아울러 미주기구(OAS) 등 국제사회가 선거의 투명성에 의혹을 제기하면서 페루의 정치위기는 증폭됐다. 이런 시비 속에 후지모리는 2차투표에서 51.2%의 지지표를 얻어 3선의 길을 열었지만, 그의 끈질긴 권력집착은 현재의 페루의 정치위기를 낳았다.
후지모리의 3선 집권과정이 60년대 말 박정희의 3선개헌파동과 이른바 유신헌법 제정과정을 판에 박은 듯 닮은점도 흥미롭다. 90년 대통령이 된 후지모리는 집권 2년도 채 안 된 92년 4월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헌법을 정지시키고 국회를 해산, 93년 말 이른바 신헌법을 통과시켰다. 이 신헌법은 국회의 권력과 규모를 대폭 축소시켜 ‘고무도장’으로 만드는 것이 뼈대다. 95년 2선 고지에 올라선 후지모리는 96년 그가 지배하는 국회로 하여금 2000년도 3선의 길을 법적으로 뒷받침하도록 했다. “93년 신헌법 공포 당시 이미 임기 중반이었으므로 헌법상 1회 연임 허용조항은 95년의 재선을 초선으로 봐야 한다”는 기묘한 논리 아래였다.(필자가 리마에서 유력 여당의원들을 인터뷰하려 할 때, 그곳 한 대학교수는 “그들은 아무 실권이 없는 고무도장인데 시간 낭비 하지 말라”는 충고마저 했다.)
외국 국가원수들로 성황을 이뤘던 지난 95년 대통령 취임식과는 달리 지난 7월28일 취임식장은 썰렁했다. 한때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유럽연합(EU) 국가들은 대통령 선거의 투명성과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경제제재를 고려하겠다며 후지모리를 위협했지만 지금은 후지모리의 3선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후지모리도 안팎의 비난을 잠재울 요량으로 야당중진인 페데리코 살라스(50)를 총리로 임명해 일단 타협적인 자세를 보였다. 도미니카 외무장관 라토레를 단장으로 한 미주기구(OAS) 조사단도 톨레도쪽의 재선거 요구를 유보한 채, 후지모리에게 29개항의 민주화 요구사항을 제시하는 수준이다. 이 29개 항에는 후지모리의 3선이 위헌이라는 의견을 냈다가 의회에서 면직된 대법관 3명을 복직시키고, 기능이 정지된 헌법재판소 문을 다시 연다는 조항도 들어 있다. 70년대 박정희 장기집권 시비와 관련해 위헌 소수의견을 냈던 대법관들이 물러난 우리의 부끄러운 기록이 이곳 페루에서도 찾아진다.
후지모리 경제정책, 절반의 성공
“500년 만에 다시 외국자본에 점령당했다.”
“페루에는 중산층이 없다. 후지모리가 집권한 지난 10년 동안 빈부 차이는 더 커졌고, 5인 가족 기준 월 300달러 이하를 버는 빈곤층은 여전히 인구의 50%를 차지하고 있다. 후지모리의 민생정치는 실패했다.”(페루 가톨릭대학 경제학교수 하비에르 이구이니 박사)
“무슨 소리냐. 후지모리가 집권한 이후 천문학적인 인플레도 잡혔고 실업률도 많이 낮아졌다. 좌익게릴라들도 거의 사라졌다. 후지모리말고 누가 이렇게 할 수 있었겠나.”(국회의장을 2차례 지낸 ‘페루 2000’ 빅토르 호이웨이 의원)
1990년 집권 뒤 지난 10년 동안 후지모리의 정치행태를 둘러싸고는 극단적으로 평가가 엇갈린다. 후지모리가 정권을 잡았을 때 국내적으로 치안은 불안했고 경제는 한마디로 국가부도 상태나 다름없었다. 인플레는 1만%에 이르렀다. 은행을 국유화하는 등 사회주의 성향의 전임 가르시아 정권이 외채상환을 거부한 탓에 페루는 IMF를 비롯한 국제금융사회로부터 고립돼 있었다. 80년대 이래 무려 3만명의 인명피해를 낳았던 마오쩌둥주의 게릴라 ‘빛나는 길’과 ‘투팍 아마루 혁명운동’(MRTA)을 후지모리 집권 초반기에 일소한 것이나, 1만%에 이르던 인플레를 잡은 점은 그의 정치적 경쟁자인 톨레도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혹독한 내핍을 강요당한 것은 부자들이 아닌 서민층”이라는 게 가톨릭대 사회학교수 카탈리나 로메로 박사의 진단이다. 안데스 산간지역의 인디오들은 물론이고, 페루사회의 하급 노동력을 맡아온 메스티조들이 특히 희생양이 됐다는 것이다.
페루의 전기와 전화사용료는 비싸기로 악명이 높다. 공중전화를 걸려면 1분 통화에 한화로 200원이 든다. 로메로 교수의 지적대로 “1인당 국민소득(GDP)이 2300달러라고 해도 빈부격차가 심하고 5인 가족 월소득 300달러 이하의 빈곤층이 50%를 차지하는 페루사회에서 편한 마음으로 전화를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원인은 후지모리의 공공기업 민영화 정책에서 찾아진다. 후지모리는 집권 이래 주요 광산과 은행을 비롯한 국가소유의 대기업들을 차례차례 다국적기업들에 넘겼다. 주로 미국, 영국, 스페인 자본들이다. 전화회사 테레포니카는 스페인으로, 야나코차 등 주요 광산들은 미국과 영국자본 소유로 넘어갔다. 그래서 비판자들은 “후지모리 탓에 페루가 스페인인 피사로에게 점령된 뒤 500년 만에 다시 외국에 점령당했다”고 말한다.
이래저래 5년은 버틸 것
(사진/후지모리의 최대실책은 실업률과 빈부격차의 증가다.일요일에 가톨릭 교회로 나들이를 나선 가난한 인다오 가족. 리마중심가의 실업자와 구두닦이.(위에서부터) )
페루는 세계적인 자원국가다. 금, 구리, 철, 망간, 목재 등은 말할 것도 없고, 페루 앞바다 어획고는 세계 2위다. 리마 주재 박희주 한국대사의 표현대로 “발전의 기본요건은 다 돼 있는데, 이를 제대로 제어해 나가는 게 관건”인 나라가 바로 페루다. “후지모리는 아집으로 왜곡된 형태이긴 해도 나름의 정치적 소명을 지니고 있다고 스스로를 믿고 있다”고 페루의 최대 일간지 엘 코메르시오 논설주간 휴고 구에라는 말한다. 강력한 리더십 아래 좌파게릴라의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하고 피폐한 페루경제를 되살리는 것이 후지모리 집권 초반의 소명이었다면, 후반기 그의 소명은 대통령취임사에서 밝혔듯, 실업해소와 경제안정이라 할 수 있다. 실업률이 8%라지만, 공식 통계일 뿐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한마디로 경제안정을 통한 실업률 낮추기에 최선을 다한다는 게 후지모리의 앞으로 5년 국가경영 전략이다.
문제는 앞으로 페루경제가 후지모리의 기대만큼 잘 풀려나갈 것인가다. 변수는 경제위기다. 또다시 엘니뇨 현상이 페루경제를 덮치거나, 세계경기의 흐름이 뒷걸음칠 경우 후지모리는 옹색한 처지로 몰릴 것이 뻔하다. 그럴 경우 휴화산처럼 잠복해 있던 사회·경제적 불만요소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와 후지모리를 중도하차시킬 가능성도 없지 않다.
리마=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kimsphoto@yahoo.com

(사진/3선을 겨냥한 후지모리의 페루 2000선거 캠페인)

(사진/후지모리 대통령 취임에 반대하는 시위를 막기위해 거리에 배치된 경찰)
이렇다할 정치경력이 없던 후지모리가 정치분석가들의 예상을 깨고 지난 90년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백인 기득권층에 대한 서민들의 반감과 일본의 경제지원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후지모리가 기존 정당에 근거를 두지 않은 독립 후보로 대통령 선거전에 나설 때까지만 해도 그의 인지도나 지지도는 매우 낮았다. 페루 라 몰리나 농업대학 교수이며 농업기술 관련 TV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조금 얼굴이 알려지긴 했지만, 1차투표에서는 유명한 소설가 마리오 바르가스(28.2%)에 이어 득표율 2위였다(24.3%). 그러나 2차투표에서는 좌파를 포함한 다른 정당들의 지지와, 특히 페루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빈곤층 인디오들의 지지에 힘입어 56.5%의 득표율로 대권을 잡았다. 8월의 페루 리마는 후지모리의 3선 연임 시비를 둘러싼 정치위기로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지난 7월28일 후지모리의 대통령 취임식에 즈음해 나흘 동안 잇따라 대규모 항의시위가 벌어졌고 화염병과 최루탄이 어지럽게 날았다. 후지모리의 정치적 경쟁자인 톨레도쪽에서 조직한 이런 시위과정에서 국립은행이 불에 탔고 6명의 경비원이 사망하는 불상사도 빚어졌다. 톨레도쪽에선 “고도로 훈련받은 정보국원이 시위대를 가장하고 이 사건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하지만, 반후지모리 투쟁전선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사실이다. 이 비극적 사건 이후 반정부집회 참가자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후지모리의 영향력 아래 있는 현지 TV 매체들이 날마다 톨레도의 데모현장 지휘 모습을 화면에 비춰가며 그를 공격하는 모습은 마치 80년대 전두환 정권 당시의 왜곡된 언론상황을 보는 듯했다. 리마의 한 언론사 중견간부는 “퇴근 뒤 집에 가면 TV를 켜지 않는다”고 말했다. 컴퓨터 조작설 등 끊임없이 제기되는 의혹

(사진/후지모리 대통령궁 마당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휴일마다 벌이는 악대의 연주)

(사진/거리의 걸인 부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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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자들은 민영화 정책과 관련해 후지모리의 정치자금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한다. 굵직한 국영기업을 매각할 때마다 10%선의 리베이트를 챙기거나, 대리인을 내세워 일정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는 의혹이다. 물론 이렇다할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후지모리의 남동생으로 변호사인 산티아고 후지모리가 일본 중고차 수입업으로 막대한 돈을 벌고 있다는 얘기도 리마에선 새로운 게 아니다. 후지모리의 전부인으로 후지모리 공격에 앞장서다 올해 총선에서 금배지를 단 수잔나 히구치(독립도덕전선) 의원은 “산티아고의 중고차 사업을 위해 후지모리가 지난 7월 대통령 추임식 직전 수입관세율을 30% 낮춰 주었다”고 비판했다.
이런저런 의혹과 공격에도 후지모리 체제는 경제위기만 없다면 큰 흔들림 없이 5년을 버틸 것이란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올해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진 4월 총선에서 여당인 ‘페루 2000’은 총 120석 가운데 52석, 그리고 제1야당인 톨레도의 ‘페루 포시블레’는 29석을 얻었다. 총선 직후 후지모리는 야당의원 빼내기에 주력, 8월 현재 과반수를 넘어선 63석을 확보했다. 비판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후지모리 정권을 움직이는 실세는 후지모리가 아니다. 우리의 국가정보원과 같은 ‘국가정보서비스’(SIN)를 비롯한 정보기관들을 장악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몬테시노스와 그의 사관학교 동기생인 29명의 장군이라는 얘기다. 페루의 정보기관 요원은 모두 1만5천명으로, 후지모리 정권을 받쳐주는 튼튼한 하부조직으로 악명이 높다. 최근 후지모리는 민주화 제스처의 일환으로 SIN을 ‘국가정보센터’(NIC)로 개편한다고 밝혔지만, ‘페루 포시블레’당 사무총장 루이스 솔라리 의원은 “정보정치의 본질은 그대로일 것”이라고 냉소를 보냈다. 솔라리 의원은 “톨레도가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를 구경하러 가 있는 동안 당사 안에 있던 컴퓨터 5대가 감쪽같이 도난당했다”며, 정보기관 짓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남미국가에 다 그렇듯, 페루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해온 미국도 후지모리를 인정하는 분위기다. 미국의회는 지난 6월 마약전쟁과 관련된 4200만달러의 대 페루원조를 취소했다. 후지모리의 비민주적인 행태를 못마땅하게 여긴 데서 비롯된 압력이었다. 그러나 후지모리 정권은 이라크 후세인 정권이나 쿠바 카스트로 정권과 다르다. 자국의 투자자본 보호 등 미국의 국가이익이란 관점에서 보면, 야당 후보인 톨레도보다는 후지모리가 더 믿음이 가는 게 사실이다. 후지모리를 자꾸 몰아세울 경우, 미국이 주도하는 남미 전체의 마약전쟁에 차질을 낳을 염려도 없지 않다. ‘후지모리 없는 페루’와 ‘후지모리의 페루’를 놓고 볼 때, 적어도 현재로선 후자가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경제위기의 지뢰를 밟지 말아야
(사진/인파가 북적거리는 리마의 한 시장.또다시 경제위기가 닥쳐올 경우 불만요소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올 가능성이 높다)
후지모리 철권통치 10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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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 7월 92년 4월 9월 11월 95년 4월 96년 8월 96년 12월 97년 4월 2000년 4월 5월 7월28일 |
후지모리 대통령 취임 후지모리 친위 쿠데타로 헌법 정지,국회 해산 좌익게릴라 '빛나는 길'지도자 아비마엘 구스만 체포 제헌의회 총선 후지모리,유효표의 64.2%지지 얻어 재선 국회,후지모리의 3선 출마 법적 장치 마련 좌익게릴라 MRTA가 페루 일본대사관저 점거 특공대,일본대사관저 기습작전으로 72명 인질 구출 성공 대통령 선거 1차부료,후지모리49.89%,야당후보 톨레도 40.15% 투개표 컴퓨터조작설로 톨레도후보는 2차투표 보이콧,후지모리51.2%득표로 3선 대통령 취임식 당일 대규모데모로 국립은행 경비원 6명 사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