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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요시모토가를 떠난 요시모토

요시모토흥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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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8-17 18:17 수정 : 2015-08-2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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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흥업(吉本興業)은 일본 최고의 연예기획사다. 1912년 창업했으니 100년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일본 예능은 요시모토가 없으면 방송이 안 된다고 할 정도다. 그 정도로 대단한 요시모토흥업이 얼마 전 갑작스레 감자(減資)를 발표했다.

오는 9월1일, 125억엔의 자본금을 1억엔으로 줄인다고 한다. 일본 법령에 따라 중소기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자본금의 최대치인 1억엔으로 감자하면, 대기업에 적용되는 법인세율도 덩달아 내려가 세금 부담을 덜 수 있다. 올해 초 일본의 또 다른 기업 샤프(SHARP)도 비슷한 형식으로 감자를 선언했지만, 세금을 기피하는 대기업이라는 뭇매를 맞고 계획을 철회한 바 있다. 하지만 요시모토는 감자를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창업자인 요시모토 기치베(吉本 吉兵衛)는 일본식 전통 만담인 라쿠고(樂語) 공연가였다. 그는 다른 라쿠고가(라쿠고 공연자)들을 규합해 라쿠고에 비해 부수적인 것으로 취급되던 만자이(漫才·만담)를 앞세워 공연을 펼치다가, 1912년 오사카의 작은 공연장을 사들였다. 이게 요시모토흥업의 시작이다. 오사카에서 시작한 사업은 교토, 고베, 나고야, 요코하마에 이어 도쿄까지 진출하게 됐다.

1924년 창업자인 기치베는 요절하고 그의 아내인 요시모토 세이(吉本せい)가 회사를 이끌게 된다. 세이는 남동생인 하야시 쇼노스케(林正之助)에게 실무를 맡긴다. 부침은 있었지만 요시모토흥업은 순조롭게 성장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군대를 따라 위문공연을 다니며 명맥을 이어갔다. 1949년에는 연예기획사로서는 처음으로 주식시장 상장을 이뤄낸다. 원래는 극장 공연 중심으로 활동했지만, 1980년대 이후 방송 프로그램에 소속 연예인들을 진출시키면서 일본 최대의 코미디언 매니지먼트 회사로 성장했다.

요시모토에 암운이 드리운 것은 2005년부터였다. 쇼노스케의 사위 하야시 히로아키(林裕章)가 회장에 취임한 지 5개월 만에 사망한 것이다. 자연스레 경영권은 창업주 가문에서 전문경영진에게 넘어갔다. 그런데 쇼노스케의 딸이자 히로아키의 처인 마사는 경영권을 다시 자신의 아들에게 넘기려고 했다. 일설에 따르면 야쿠자를 앞세워 당시 사장을 협박하기도 했다. 그럴수록 전문경영진의 반발은 거세졌다.

전문경영진은 2009년 요시모토흥업 주식의 공개 매수를 통해 상장폐지를 결심한다. 명목상으로는 투명한 경영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실은 대주주였던 창업주 가문의 영향력을 제거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공개 매수는 웃돈을 얹어 시장의 주식을 사들이는 것이다. 이때 발생한 추가 비용을 요시모토흥업이 부담하게 되면서 요시모토는 최근 몇 년간 적자를 피할 수 없었고,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감자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인 것으로 보인다. 창업 가문의 경영권 침해를 막고 회사를 지키려는 경영진의 노력이 요시모토흥업을 다시 반석 위에 올려놓을 수 있을까. 창업 가문의 다툼으로 회사가 휘청거리는 국내 재벌들과 비교된다.


코모레비(필명) 일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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