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정착지의 유대 주민이 팔레스타인 주민의 집에 화염병을 던졌다. 불길에 18개월 아기 알리 사아드 다와브샤가 숨졌다. 들것에 놓인 아기의 주검은 작기만 하다. REUTERS
인구 3천 명 남짓한 조용한 시골마을인 두마의 주민 대부분은 이스라엘 쪽에서 건설노동자로 일한다. 주변엔 유대 정착촌 마알레 에프라임과 쉴로가 있다. 1967년 6월 제3차 중동전쟁 이후 요르단강 서안과 동예루살렘, 골란고원 일대를 점령한 이스라엘은 이후 그 땅에 유대인을 이주시키고 있다.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세계대전’이라는, 인류 역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참극을 두 차례나 겪으면서, 인류는 ‘최소한의 양심’을 위한 행동기준을 만들어냈다. 바로 ‘제네바협약’이다. 육상과 해상에서 전투가 벌어진 경우 부상자 등에 대한 처우를 밝혀 적은 제1, 제2협약과 포로의 처우에 관한 제3협약과 함께 전시 민간인 보호 규정을 적시한 게 제4협약이다. 추방·이송·철거 등 점령지에 대한 규정을 밝혀놓은 제네바 제4협약 49조의 마지막 조항은 이렇게 규정돼 있다. “점령국은 자국의 민간인 주민 일부를 점령지역으로 추방하거나, 또는 이동시켜서는 안 된다.” 이미 1970년대 말부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지속적으로 유대 정착촌 건설의 불법성을 지적해왔지만, 이스라엘 당국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두마의 학살극이 벌어진 7월에도 네타냐후 총리는 팔레스타인 땅 예루살렘의 라모트·길로 등 4개 지역에서 정착촌 수백 채를 추가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갓난아기가 불에 타 숨지는 사건이 벌어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인권단체 ‘점령지 인권정보센터’(베첼렘)는 7월31일 성명을 내어 “작금의 사태는 팔레스타인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해하는 유대 정착민에 대한 법적 심판을 피해온 당국의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로 인해 증오범죄는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범법자들이 폭력 행위를 지속할 수 있도록 부추겼다. 오늘 아침 참극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고 강조했다. 불법 정착지의 유대 주민들이 팔레스타인 주민을 산 채로 불태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7월2일 이른 아침 동예루살렘 지역에서 팔레스타인 청소년 무함마드 아부 카데이르(16)가 괴한들에게 납치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이스라엘 경찰은 예루살렘 외곽 기바트 사울 지역에서 불에 탄 채 숨져 있는 소년의 주검을 발견했다. 부검 결과, 소년은 뭇매를 맞은 뒤 숨지기 전에 불태워진 것으로 드러났다. 납치 현장 주변의 폐회로텔레비전(CCTV)에 용의자들의 모습이 잡혔다. 범행에 사용된 차량도 찍혔다. 그럼에도 경찰은 시간을 끌다가, 한참 만에야 유대 정착민 유세프 벤 다비드(30)와 10대 2명을 용의자로 체포했다. 붙잡힌 10대 2명은 “벤 다비드가 시키는 대로 납치와 폭행에만 가담했다”고 주장한다. 벤 다비드는 ‘정신이상에 따른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재판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12년 8월16일에도 팔레스타인 일가족이 화염병 공격의 표적이 됐다. 자말리아 하산과 남편 아이만, 딸 이맘(4)과 무함마드(6) 일가족은 그날 택시를 타고 요르단강 서안지구 베들레헴 남부를 지나고 있었다. 차 안에는 다른 승객 1명과 운전기사 등 모두 6명이 타고 있었다. 어디선가 화염병이 날아들었고, 택시는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아이만과 두 아이는 심한 화상을 입었다. 특히 무함마드는 온몸에 중화상을 입어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아야 했다. 자말리아는 사건 발생 2주 뒤 <마안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모든 것을 잃었다. 삶이 뒤죽박죽이 됐다. 남편과 아들, 딸은 여전히 치료 중이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이다. 비참하다”고 말했다. 이때도 이스라엘 당국은 ‘정의’를 입에 올렸다. 얼마 뒤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지문을 증거로 인근 유대 정착촌에 사는 청소년 3명을 체포했다. 하지만 2013년 1월 예루살렘검찰청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이들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폭력은 있지만, 처벌은 없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의 자료를 보면, 올 들어 7월 말까지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 지역에서 팔레스타인 주민과 그들의 재산을 노린 유대 정착민의 폭력 사건은 모두 120건이나 발생했다. 하지만 누군가 처벌받았다는 소식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이스라엘 인권단체 ‘예쉬딘’이 지난 7월 내놓은 자료를 보면, 팔레스타인 주민을 겨냥한 유대 정착민의 폭력 사건 가운데 85% 이상은 경찰 수사 단계에서 증거 불충분 등의 이유로 종결 처리된다. “최근 2년 새 유대 정착민이 저지르는 폭력의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책을 불태운 정착민은 언젠가는 같은 장소에서 사람도 불태운다.” 현지 인권단체 알하크의 샤완 자바린 사무총장은 8월1일 <알자지라>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유대 정착민은 일종의 면책특권이 있다고 생각한다. 매일이다시피 팔레스타인 주민을 공격하고, 총질을 하고, 불을 지르지만 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과 유사한 사건은 앞으로도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생후 18개월, ‘잘 웃던 아기’ 알리의 옆집도 반나마 불탔다. 그날 움 무스타파 부부와 다섯 자녀는 천행으로 집을 비운 터였다. 무스타파는 8월1일 <알자지라>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집안 꼴을 보고도 치울 생각이 나지 않는다. 여기선 더 이상 안전하다고 느낄 수 없다. 마을을 떠나 나블루스로 아예 이사를 갈까 생각 중이다. 팔레스타인 주민은 무기를 소지할 수 없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주민에겐 안전이란 건 없다. 나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운 좋게도 불이 났을 때 집에 없었던 것뿐이다.” 정인환 <한겨레> 영상센터 기자 inhwan@hani.co.kr